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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영향평가, 과기부의 '시민참여 기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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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술영향평가, 과기부의 '시민참여 기만극'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20> 박호군 과기부 장관이 답해야

지난 ‘과학기술@사회’에서 우리는 참여정부 들어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시민참여 제도가 기형적인 형태로 도입돼, ‘시작하기도 전에 더럽혀지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대통령이 ‘참여정부’를 말로 떠든다고 하더라도, 장관 이하 관료들이 똘똘 뭉쳐 시민참여를 적대시하는 이런 행태를 보이는 한 한국 사회에서 ‘참여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과학기술부가 마지못해 그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과학기술 영역의 시민참여 제도인 기술영향평가는 그 대표적 예이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의 연장선상에서 특히 기술영향평가에 초점을 맞춰 그것이 얼마나 엉터리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특히 기술영향평가는 그 동안 정치ㆍ사회 영역에 한정돼 왔던 시민들의 참여를 과학기술의 영역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이 정부가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단순한 ‘절차적 민주주의’에 그칠지 정치ㆍ경제ㆍ사회ㆍ과학기술 등 사회 전 영역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갈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과기부 박호군 장관의 책임있는 답변을 기대한다.

이 글은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에서 발행하는 <시민과학> 11~12월호에도 실릴 예정이다. - Citisci Group.

올해 우리나라에서 기술영향평가 시범사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다. 기술영향평가는 여러 선진국에서 7, 80년대부터 기술발전에 따른 사회, 환경에 대한 영향과 부작용 등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대응하기 위해 제도화해 시행하고 있는 시민참여 제도이다.

1972년 미국에서 시작된 기술영향평가는 현재 유럽의 거의 대부분 국가에서 제도화될 정도로 국가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로 포함돼 있다.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사회와 과학기술의 갈등을 줄여나가기 위한 방법으로서 그 중요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시민ㆍ사회단체 10여년 바람으로 시행되긴 했지만…**

우리나라도 2001년부터 시행된 과학기술기본법 14조에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면서 기술영향평가를 위한 기초가 확립되었다. 2002년에는 기술영향평가 전담기관으로 지정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서 기술영향평가 실시 방안에 대한 연구를 시행했고, 이에 기반해 올해 KISTEP에서는 나노-바이오-정보기술의 융합기술, 이른바 NBIT기술에 대해 시범사업을 주관했다.

우리나라에서 기술영향평가가 도입된 맥락은 서구에서 도입된 상황과 유사하다. 과거 맹목적인 성장중심사회에서 이제 환경, 안전, 건강 등 삶의 질과 관련된 가치를 중요시해야 하며 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우려에 대해 과학기술계에서도 책임 있게 대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민ㆍ사회단체들은 기술영향평가를 10여 년 전부터 요구했고, 이런 바람이 수용되어 2001년에 과학기술기본법에 반영된 것이다. 게다가 올해부터 시행된 나노기술개발촉진법에서도 나노기술영향평가에 대한 구절이 포함되는 등,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렇게 시민ㆍ사회단체들이 바랐던 기술영향평가지만 올해 실시된 시범사업의 결과는, 아직 최종결과가 나오지 않아 단정 지을 수 없지만 현재까지 상황으로만 보면 절망적이다.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과기부, “평가 결과 전면적으로 수정하라”**

우선, 기술영향평가의 중립성과 객관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10월 23일 전문가 간담회가 끝나고 나서 연구자들로 구성된 기술영향평가위원회와 전문분과의 활동은 중지되었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보고하는 자료를 만드는 책임은 KISTEP과 과기부로 넘어갔다. 보고 자료를 만드는 과정이 연구자들의 손을 떠나면서 그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은 이미 짐작되었던 바였으나 실제 일이 진행되는 상황은 예상을 초월했다.

KISTEP에서 작성한 보고용 초안에 대해 전문분과에 참여한 연구자들이 “실제로 분과에서 수행한 내용을 성실하게 반영할 것”을 요구하자 KISTEP에서는 “과기부에서 전면적으로 수정을 요구했다”며 곤란하다는 내색을 하기도 했다. 원래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평가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는 KISTEP이 실제로는 평가를 새로 하고 있는 격이다.

당초 올 12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연 3회 개최)에 안건으로 제출될 예정이었던 기술영향평가 시범사업에 대한 결과 보고가 내년으로 연기돼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최종 정리 작업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과기부와 KISTEP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변질될 우려가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자료는 “전문가 및 시민단체를 포함한 각계각층의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여 도출한” 평가 결과라고 포장될 것이다. 늘 그렇듯이 이번 기술영향평가위원회도 공무원들의 관료 독재를 형식적으로 정당화해주는 ‘한국적’ 위원회로 전락하고 말 것 같은 상황이다.

과기부의 산하기관인 KISTEP이 기술영향평가 전담기관으로 갖춰야할 객관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과학기술기본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시민ㆍ사회단체로부터 제기되었던 대목이다. 당시 시민ㆍ사회단체는 “기술영향평가제도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 및 의견서를 여러 차례 제출했지만 법안은 원래 계획대로 추진되어 결국에는 과기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인 KISTEP이 기술영향평가 전담기관이 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시민ㆍ사회단체의 예측은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시민들에게 어렵고 관심 없는 주제 선정 의혹**

둘째, 기술영향평가의 주제선정에도 문제가 있다. 제기된 맥락과 취지를 생각하면 기술영향평가는 과학기술의 사회ㆍ환경ㆍ보건의 영향에 초점을 맞추는 게 정상이고, 실제로 외국에서는 대체로 ‘항공운송과 환경’, ‘정보기술과 프라이버시’,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처럼 시민들이 관심을 갖거나 우려할 만한 주제에 대해 기술영향평가를 수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애초 기술영향평가의 의도와는 달리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 과학과 시민, 환경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주제가 선정됐다. 이번에 과기부와 KISTEP이 기술영향평가 주제로 선정한 NBIT 융합기술은 평가 당사자인 KISTEP 스스로도 모호한 개념으로 인해 곤란을 겪은 그 실체가 모호한 기술이다. 도대체 전문가들도 무슨 기술인지조차 모호한 상태에서 어떻게 기술의 영향을 평가하고, 시민들을 참여시킨다는 말인가?

아마 과기부와 KISTEP은 기술분류표를 펼쳐 놓은 후, 가능한 한 각 부처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에게 파장이 최대한 적으면서도, 경제ㆍ산업적 전망은 장밋빛으로 포장할 수 있는 사업을 골랐을 것이다. 물론 가능한 한 시민들의 관심을 덜 받을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야 했을 테고.

***시민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아**

셋째,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당연하게도!) 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기술영향평가를 이미 20여 년 정도 시행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기술영향평가를 일종의 사회적 학습과정으로 활용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술영향평가를 더 참여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하면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높아지고 그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갖는 극단적인 우려를 줄일 수 있어 오히려 첨예한 갈등상황에 이르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주관하는 KISTEP의 계획을 보면 “공청회 등 일반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방안의 마련”과 “관계 부처와 관련 분야 전문가를 비롯한 이해당사자와 시민단체 및 일반국민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여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이해도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범사업을 사회에 알리고 관련 이해당사자를 참여시키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미지수다. 하나씩 짚어보자.

실질적인 영향력을 떠나서 상징적인 지표로 기술영향평가 위원회 및 3개 전문분과위원회에 시민단체의 참여를 보자. 전체 49명의 위원 (실제 참여 위원은 25명에 불과했다고 한다.)중 시민단체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은 이덕승 녹색소비자연대 사무총장과 김동광 과학세대 대표, 유의선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 등 3명이 고작이다. 여기에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한 이영희 시민과학센터 前대표를 포함하더라도 4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전문가로 참여한 대학교수 및 연구자들로 채워졌다.

공청회도 개최하지 않았다. 애초에 계획되어 있었던 공청회는 전문가 간담회로 축소되었고 전문가 간담회에 참여한 토론자마저 과학기술자 및 생명공학벤처회사의 사장들이었다. 보도 자료로는 각 전문가들이 보건복지부, 교육부, 산업자원부 등의 추천을 받았다면서 애써 범부처 사업인 척하려 했지만, 이 역시 기술영향평가를 하면서 애초에 내걸었던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홈페이지의 활용도도 아주 저조했다. KISTEP의 담당부서에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초기에는 내부용 게시판 정도로 운영하는 수준이었고 대외용 홈페이지라고 할 만한 것은 실제 기술영향평가위원회의 활동이 거의 종료되는 10월 중에나 만들어졌다. 그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도 매우 찾기가 어려워서 기술영향평가를 KISTEP에서 수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KISTEP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아야 찾아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홈페이지를 홍보하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아 구글, 네이버, 엠파스, 다음, 야후 등의 포털사이트에서도 ‘기술영향평가’로 검색할 경우 해당 사이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홈페이지에 대한 접근이 용이할 리가 없다. 현재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10월 14일에 올린 게시물 1건이 전부이며 55명만이 읽었다. 게다가 게시판의 쓰기기능은 관리자에게만 허용돼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상황이다.

***과기부, “기술영향평가가 과학기술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돼”**

이렇게 맘대로 휘둘리고 있는 기술영향평가에 대해서 과기부나 KISTEP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뿌리 깊은 성장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는 과기부나 KISTEP은 기술영향평가도 결국 연구개발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있다. 과기부에서 평가는 대개 좁은 의미의 효율성, 경제성을 따지는 것인데 여기에 사회ㆍ문화ㆍ환경ㆍ보건 등을 얘기해야 하는 기술영향평가가 과기부 공무원들에게는 공포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일부 과기부 공무원들이 기술영향평가를 “과학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는 ‘부정적인 요소’로 이해한다”는 얘기가 들려오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이런 과기부 공무원들의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공포와 부정적 인식은 법으로 시행하게 돼 있는 나노기술에 대한 기술영향평가를 6개월이 지날 때까지 실시하지 않는 어이없는 초법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되물어보자. 기술발전을 위해 개인의 프라이버시, 안전, 건강, 환경을 희생해도 된다는 것인지. 더구나 그 희생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도 모르면서.

기술영향평가 같은 작업이 기술발전에 저해요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연합에서는 기술영향평가를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럽 각국의 보고서를 보면 기술이 점차 사회적으로 중요해질 뿐만 아니라 기술적 위험이 고조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기술영향평가와 같은 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통해 정부의 정책과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신뢰가 기술발전에 필수적이다.

***박호군 장관이 나서서 ‘시민참여 기만극’ 중단해야**

이번에 ‘부안 사태’로 윤진식 산자부 장관이 사임하면서, 동료들과 만약 핵폐기물처리장 업무가 산자부로 안 넘어갔다면 저 자리에는 박호군 과기부 장관이 서 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산자부나 과기부나 1년 동안 해온 행태가 거의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참여정부’ 장관들이 있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 일단 시범사업의 최종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또 과학기술기본법이 있는 한 기술영향평가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박호군 과기부 장관과 KISTEP 원장이 ‘책임있게’ 대답해야 할 때다. 제발 똑바로 해라. 이런 ‘시민참여 기만극’은 때려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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