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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의 쾌거인가, 생명윤리의 파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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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과학기술의 쾌거인가, 생명윤리의 파탄인가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22> 인간배아복제 성공의 의미

국내 연구진이 인간배아복제를 통해 줄기세포를 만들어 낸 실험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 동안 국내에서 진행됐던 다른 복제 실험과 달리 이번 실험은 권위 있는 과학잡지 <사이언스> 인터넷판에 게재돼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인간배아복제가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의학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큰 줄기세포를 얻는 유력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는 파킨슨씨병, 척수 손상, 뇌졸중, 심장질환, 당뇨병 등의 치료에 이용되는 대체 세포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난치병 치료의 획기적 방법으로 기대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의학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의 출처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어왔다. 줄기세포는 배아복제, 인공수태 시술 후 남은 잔여배아, 탯줄, 태아조직, 성체(成體) 조직 등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분화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줄기세포는 주로 수정란에서 분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초기 배아에서 얻을 수 있어 논란이 되어온 것이다.

국내에서 배아복제 성공은 이미 몇 차례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실험은 몇 가지 점에서 기존의 실험과 다르다. 기존의 체세포 복제는 소의 난자에 사람의 핵을 이식하는 이종간 핵이식 실험이었던 반면에 이번 실험에서는 사람의 난자에 사람의 핵을 집어넣었다. 사람의 난자를 사용한 것이 이번 실험의 핵심이자 기술적 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동안의 이종간 핵이식 기법은 창출된 배아에 동물의 유전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임상에서 사용이 어렵고,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섞는 윤리적 문제로 인해 비판을 받아왔다.

***황 교수 연구, 생명윤리와 사회적 논란 함께 제기해**

이번 실험은 기술적 성과뿐만 아니라 생명윤리와 사회적 논란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우선 '인간배아 연구는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온 주장이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복제나 불임클리닉에서 만들어진 인간배아의 파괴가 필수적인데 초기 배아를 단순한 세포덩어리가 아닌 인간으로 보는 가톨릭과 같은 종교계의 입장에서 보면 용납하기 힘든 실험이다. 물론 복제된 배아와 잔여배아 사이에도 윤리적 차이점은 있다. 복제는 연구를 위해 인간배아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것이고 잔여배아는 불임클리닉 후 남은 그래서 언젠가는 폐기할 배아를 이용하는 차이가 있다.

또 대중의 관심을 끄는 복제인간의 탄생 가능성도 더 한층 높아졌다. 복제를 통해 생성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면 복제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 이번 실험은 인간 난자를 통해서도 체세포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기술적으로 증명시켜 준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인간 개체 복제를 추진하고 있는 유사종교 집단의 주장이 이제는 단순한 주장만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연구가 어론에 대서특필되자마자 인간 복제를 추진하고 있는 유사종교 집단은 "왜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국가가 지원하면서 똑같은 자기들의 연구는 규제하느냐"는 의미심장한 이의를 제기했다.

***연구 위해 여성의 몸 대상화·상품화되는 것도 큰 문제**

이번 실험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는 인간 난자 사용은 여성의 몸을 대상화·상품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받고 있다.

배아복제를 통해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다량의 난자가 필요하다. 이번 실험에서는 16명의 여성으로부터 얻은 2백42개의 난자가 사용되어 한 개의 줄기세포주를 얻었다. 그런데 다량의 난자를 얻기 위해서는 여성의 몸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 불가피하다. 여성은 많은 난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과배란제를 맞아야 하고 그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한다.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고, 난자는 단순한 실험 재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배아복제 실험이 활성화 된다면 인간 난자에 대한 수요는 급증할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 난자 매매가 진행되고 있고, 불임클리닉에 냉동 보관중인 잔여 배아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현실을 생각해 보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일부 외신은 인간 난자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한국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실험과정에서 생명윤리 고려 안 한 것도 큰 문제**

일부 시민단체는 실험과정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실험이 진행된 2003년은 생명윤리법 제정 논쟁이 한창이었고, 인간배아복제의 허용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논쟁의 핵심 당사자이기도 한 연구진들이 실험을 강행한 것은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진들은 이번 실험이 기관심사위원회의 윤리적 평가를 받은 후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윤리적 고려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귀국하자마자 황우석 교수는 "생명윤리를 고려해 난자를 이용한 연구는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황 교수가 앞에서 언급한 생명윤리법 제정 논쟁에 깊숙히 참여해온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연구는 명백한 '반칙'이고 귀국 후 발언은 '반칙'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황 교수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균형 감각을 높이 샀던 사람들로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언론의 편향적 보도도 큰 문제, 과학보도 문제점 여실히 드러내**

이번 실험을 다루는 언론의 편향적 보도 방향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배아복제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된 지난 몇 년 동안 논쟁의 이면에는 배아를 바라보는 상이한 관점, 체세포 복제의 문제점, 성체 줄기세포의 가능성, 난자를 제공해야 하는 여성의 입장, 과학자 내부의 이견, 불임클리닉 문제, 부처간 이해관계 등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들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번 실험과 관련해 대부분의 언론들은 배아복제의 가능성만을 과도하게 보도했고 기껏해야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만 다루었다.

대중에게 배아연구와 관련된 다양한 측면들을 제공해 종합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찬반 갈등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려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이번 실험 발표 후 필자는 많은 외국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한결 같이 한국 언론의 일방적 보도 태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그 이유를 물었다. 그때의 씁쓸한 마음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세계최초'라는 의미는 기술적 인정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선진국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 가능성을 우리가 먼저 겪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한 준비를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제는 일방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인간배아복제가 국내에서 성공한 이유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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