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1일 22시 59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박인규
inkyu@pressian.com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독일, 지난 100년간 세 번째 미국에 패배하다
[해외 시각] 미 대외정책을 장악한 세 과두세력 : 무기, 석유, 금융 산업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국의 독립, 또는 안보를 위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재래식 전쟁, 그리고 미래의 세계 경제 패권을 둘러싼 미국/유럽 대 러시아/중국의 지정학적 경제 전쟁이다. 운용자산 10조 달러인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코로나19에 이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지난
박인규 편집인(=번역·정리)
"푸틴의 오판, 미국의 아프간 철수 의미를 잘못 해석했다"
[해외시각] 미국의 '과도한 자신감' 역시 '푸틴의 오판' 따라갈 수 있다
예상을 뛰어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또한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우크라이나의 선전과 러시아의 고전으로 세계는 신냉전(New Cold War)의 초입에 들어섰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군사 대결 및 경제 제재에 나섰으며, 러시아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미국의 에너지
"세계화는 끝났다. 미래의 승자는 중국/러시아다"
[해외시각] 미국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 인터뷰
우크라이나전쟁은 1차 대전과 비견될(즉 세계 패권의 교체를 가져온) 세계사적 전환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이냐 아니면 러시아의 안보냐를 결정짓는 지역 전쟁으로 시작됐지만, 미국의 러시아 경제제재로 미국/유럽 대 중국/러시아 간의 거대한 경제 전쟁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가혹한 경제제재로 우선 러시아
세계3차대전, 이지 스톤 마이크 잡다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 9 이지 스톤
김구학회(대표 한동우)의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 중 10편을 골라 주 2회(수, 토요일) 연재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김구, 조봉암 등 선열들이 오늘의 시대 상황을 직시하며 나라의 진정한 자주독립과 민족의 존엄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겨레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독백 형식의 글이다. 모든 글은 선열들이 남긴 기록들, 행적들, 역사적 사실들 등을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중동에서 유럽으로 번진 '끝없는 전쟁'
[해외 시각] '평화 회복'에 집중해야, 그 이상을 추구하면 핵전쟁 가능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형식상이나마)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들 간에는 전쟁이 없다는 이른바 '민주평화론'의 비극적 반증이었다. 러시아는 그간 과거 소련 소속이었던 국가들의 분쟁에 개입해 왔고, 그 국가들의 독립 과정에서 발생한 숱한 국지적 전쟁을 치러왔던 나라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있었던 지난 1월의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 당시 러시아는 평화유지군
박인규 편집인(=번역정리)
우크라이나, 모든 계획은 3년 전 랜드연구소 보고서에 있었다
[해외시각]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원'을 찾아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특히 러시아와 미국을 위시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두고 '전선'을 뚜렷히 하고 있다는 데에서 '신냉전'의 징후를 읽어내는 전문가들이 많다. 미 국방부 등의 자금을 지원받으며 과거 '냉전 전략'을 연구해 왔던 '랜드연구소'의 3년 전 보고서 내용과 현재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놀랍도
"아랍 석유 빼앗기"...미국은 새로운 전쟁, 새로운 적이 필요했다
[전쟁국가 미국] 1차 이라크전쟁 (하) 석유를 위한 전쟁 : 미국의 대응
걸프지역 군사 점령이라는 '미국인의 꿈' 1973년 10월 1차 석유파동 이후 미국인의 정치적 무의식 속에는 '군사력에 의한 걸프지역 유전 점령'이라는 꿈이 잠재해 있었다. 일례로 1975년 1월, 정치학자 로버트 터커(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네오콘 잡지 <코멘타리>에 실린 글 "석유와 미국의 개입"을 통해 아랍세계에 대한 미국의 무력 개입을 촉
'검은 황금' 위한 미국의 중동 전쟁, 그리고 사담 후세인의 두 얼굴
[전쟁국가 미국] 1차 이라크전쟁(1990.8-1991.2) (중)
흔히 1차 이라크전쟁은 지역 평화를 위한 전쟁, 2차 이라크전쟁(2003년)은 석유 통제권을 둘러싼 전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1차 이라크 전쟁부터가 석유전쟁이었다. 왜 그런가. 1979년부터 2003년까지 이라크를 통치했던 사담 후세인(1937-2006년)은 오늘날 이웃나라인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불법 점령한 침략자, 제 나라 국민을 독가스로 살
"미국은 15년간 이 전쟁을 준비해 왔다"...美 군사주의 부활하다
[전쟁국가 미국] 1차 이라크전쟁(1990.8-1991.2) (상)
1차 이라크전쟁(걸프전쟁)은 탈냉전 후 미국이 치른 첫 번째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의 압도적 승리로 미국의 군사주의는 화려하게 부활한다. 베트남전쟁 패배 이후 사용을 자제했던 군사력이 대외정책의 핵심수단으로 재부상한 것이다. 또한 역사상 처음으로 미군이 중동지역(사우디아라비아)에 상시 주둔하게 된다. 그러나 아프간전쟁에서 군사적 실력을 닦은 이슬람 무장세력
미국의 이중플레이 이란·이라크 전쟁, 사담 후세인을 키워내다
[전쟁국가 미국] 이란·이라크전쟁(1980-88)
1차 아프간전쟁(1979-89)이 계속되는 동안, 서쪽 이웃에서는 이란과 이라크가 8년간 전쟁을 벌였다. 1980년 9월 22일 이라크의 선공으로 시작된 이란·이라크전쟁은 1988년 7월 18일 이란의 호메이니가 강화협상을 요청하면서 이라크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 승리로 아랍의 군사적 맹주로 떠오른 이라크의 후세인은 2년 후인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