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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 인도는 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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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 인도는 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까?

[해외 시각] 미국의 '러시아 고립' 작전, 쉽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아나 침공과 관련해 인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협의체)의 일원이고 민주주의 국가이며 인구 14억 명의 대국 인도는 좀처럼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인도는 유엔총회에서 지난 3월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2건의 결의안, 지난 7일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지위를 정지하는 결의안 등 3건의 결의안에 대해 모두 기권표를 던졌다. 이들 결의안은 모두 찬성표가 과반 이상 나와서 가결됐지만 인도는 자신의 '색깔'을 확고히 보였다. '회색지대'에 머물겠다는 것이다. 다만 인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 자행된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 제재에는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그 중 가장 주목받는 국가가 인도다. 미국의 '러시아 고립 작전'은 어떻게 될까. 왜 인도는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역사적 맥락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4월 12일 카운터펀치에 실린국제문제 전문 언론인 존 루엘이의 글이다. 존 루엘은 미국 워싱턴에 거주 호주계 미국인으로 러시아 관련 저서를 준비 중이다. 이 글의 원제는 "인도의 중립은 러시아 고립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India Proves Isolating Russia isn’t Easy)"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러시아-인도 정상회담 현장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지난 3월 말 미국과 영국, 그리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쟁과 관련해 인도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각각 대표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인도는 확고하게 중립을 유지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일련의 유엔 투표(안보리, 총회, 인권이사회)에서도 '기권'을 계속했다. (그리하여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이라는 서방의 기대를 저버리는 대신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전화를 걸어 전투 중단과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 : 편집자)

3월 30-31일 뉴델리를 방문한 미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 달립 싱은 러시아 제재를 "우회하거나 위반하는" 국가는 심각한 결과를 맞을 것이며, 인도의 대러시아 에너지 및 상품 수입이 급증하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경고했다.

일주일 후인 4월 6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의 브라이언 디즈 위원장은 인도가 러시아와 지금보다 "더 노골적인 전략적 관계"를 맺을 경우 그 (부정적) 결과는 "심각하고 장기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초 바이든 행정부는 당연히 인도가 러시아 규탄과 제재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인 데다 21세기 이후 미국 및 유럽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많은 인도계 미국인을 행정부의 고위직에 임명했다.

게다가 인도는 호주, 일본과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4자 안보대화(쿼드)의 일원이며 그 일환으로 이들 국가들과 매년 군사훈련도 해왔다. 2000년대 중반 탄생한 이 4개국 연합체는 중국을 겨냥한, 느슨한 정치 및 안보 블록으로 여겨져 왔으며 최근에는 합동 군사훈련 횟수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모디 총리는 인도의 전통적인 "전략적 자율성" 유지 정책에 따라 미국의 러시아 비판에 동참하지 않았다. 인도 외무장관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는 인도는 강대국들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관여하고, 중국을 관리하며, 유럽과는 돈독하게, 러시아는 안심시키고, 일본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에는 수 세기에 걸친 서방과의 악연도 작용했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의 캘리컷 상륙 이후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서방 강대국들은 처음에는 인도와 평화적 교역을 이어가다가 점차 노골적인 식민주의, 그리고 네덜란드 및 영국 동인도회사에 의한 착취를 자행했다.

1947년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이후 냉전 기간 동안 서방과의 관계는 복잡했다. 서방과의 긴장은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미국이 파키스탄 편을 들어 제7함대를 파견하면서 최고에 달했다(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에 대한 미국의 제재, 2001년 이후 20년간 계속된 아프간전쟁에서 미국과 파키스탄의 협력은 오랫동안 인도를 불편하게 해왔다. 수 세기 동안 유럽에게 착취당해 온 인도로서는 대외정책과 관련해 서방의 설교를 들을 기분이 아닐 것이다.

반면 인도와 러시아는 냉전 기간 동안 시작된 건설적 관계를 계속 유지해 왔다. 인도는 비동맹운동의 지도 국가였지만, 모스크바-뉴델리 관계는 확고했으며 1971년 8월 인도-소련 평화우호협력조약 체결로 그 정점을 찍었다.

그 몇 달 후 발생한 인도-파키스탄전쟁 당시 현지에 파견된 미 제7함대가 군사력 행사를 자제한 것은 벵골만에 대기 중인 소련의 태평양함대 때문이었다. 소련은 또한 인도에 무기를 제공했고, 인도의 우주개발을 지원했으며, 1987년에는 통합장기협력프로그램(ILTP) 체결을 통해 양국간 협력을 더욱 강화했다.

인도-소련의 건설적 관계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계속됐다. 서방과의 관계 악화에 따라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러시아 측의 다급한 사정 때문이었다.

예컨대 인도는 세계 최대의 무기 수입국인데, 그 인도에 대한 최대의 무기 공급국이 바로 러시아다. 21세기 들어 인도 경제가 급성장하고, 파키스탄 및 중국과의 전통적 갈등 관계에 대한 인도 지도부의 우려가 여전함에 따라 양국 간 무기 거래도 급증해 왔다.

최근 수년간 인도 무기시장에서 러시아의 압도적 비중이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 무기의 유지 보수 및 성능 향상의 필요, 외국산 무기와의 호환 불가능성, 그리고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에 비추어 적어도 중기적으로는 인도-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푸틴과 모디는 작년 12월에 10년 기한의 국방계약을 맺었다.

한편 인도는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외교적 지원을 받아왔다. 예컨대 카슈미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한 유엔 안보리 표결이 있을 경우 러시아는 파키스탄이 아닌 인도 편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인도는 또한 러시아를 중국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보고 있다.

이런 (러시아에 대한) 호감은 인도의 정당 및 유권자들에게도 그대로 반영돼, 어떤 주요 정당도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 비판이나 제재에 찬성하지 않으며, 심지어 소셜미디어에서는 '#나는푸틴과 함께 한다'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한다.

러시아와 인도는 또한 최근 들어 에너지 협력을 강화했다. 2017년 러시아 석유기업 로스네프트는 다른 러시아 기업들과 함께 인도 석유기업 에사르오일을 130억 달러에 인수했고, 2020년 인도는 에너지 공급 다변화 정책의 일환으로 최초의 연 단위 러시아산 석유 수입계약을 맺었다.

지난 3월 스리랑카에서 에너지 부족 등에 따른 폭동이 발생하면서 현재 인도에게는 에너지 안보 문제가 시급한 현안이다. 지난 해 인도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은 1,600만 배럴이었던 반면, 올해 인도는 우크라이나 침공(2월 24일) 이후에만 1,300만 배럴의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했다.

또한 러시아는 상당량의 석탄을 인도에 공급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20년 기한의 공급 계약을 맺은 후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직접 수출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에는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인 로사톰이 인도에서 여섯 번째 원전 공사를 시작했다. 다섯 번째 원전은 지난해 6월 착공했다.

오랫동안 러시아산 에너지에 크게 의존해온 유럽이 이제 겨우 확대되기 시작한 인도의 러시아 에너지 협력을 비판하는 것은 위선에 다름 아니다.

현재 인도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동맹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논의하고 있으며, 러시아 제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양국 화폐(루피-루블)에 의한 결제시스템 가능성도 타진 중이다.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당시 모디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유학 중인 인도 학생 수 천명을 대피시키기 위해 푸틴은 물론 젤렌스키와도 긴밀하게 협력해야 했다. 이런 인도에 대해 분쟁 당사자 중 어느 한 편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라는 것은 인도의 대외정책과 관련한 전략적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인도의 중립 입장 고수는 (미국이 추진 중인) 러시아 고립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나아가 러시아가 인도의 중립을 유지하게 할 정도의 영향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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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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