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0일 19시 17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청소노동자 800여명이 홍대 앞에 모인 까닭?
[포토] 제3회 청소노동자 행진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
청소노동자 800여 명이 15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일대에서 대규모 행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개선, 고용불안 해소, 휴게 공간 마련, '모욕당하지 않고 일할 권리' 등을 요구했다.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라는
최형락 기자
80년 광주, 알맹이는 어디가고 껍데기만 남았을까?
[전시] 노순택의 <망각기계> 6월 10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80년 광주는 온전히 기억되고 있을까? 사진가 노순택은 그의 작업 <망각기계>를 통해 이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그는 역사적 사건이 기록에 의해 훼손, 변형,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억은 망각의 다른 의미'라는 니체의 말처럼, 피상적이
반쪽이 된 김용민, 바람과 선거
[포토스케치] 국회의원과 바람
김용민의 얼굴이 반쪽이 됐다. 저 육중한 몸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오래전 내뱉은 말까지 부메랑이 돼 선거 막판 '막말 역풍'의 주인공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경쟁자라고 마냥 좋을 리 없다. 여당 현역불출마에 야당 유력 주자의 수감으로 맞은 호기를 '나꼼
국회의원과 바람
김용민의 얼굴이 반쪽이 됐다. 육중한 몸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오래전 내뱉은 말까지 부메랑이 돼 선거 막판 '막말 역풍'의 주인공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경쟁자라고 마냥 좋을 리 없다. 여당 현역 불출마에 야당 유력 주자의 수감으로 맞은 호기를 '나꼼수' 바람에 날려 버리게 생겼을 때의 놀란 가슴이 가라앉질 않는다. 둘 모두 바람에 쩔쩔 맨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거래하지 마라"
15일 발효된 한미 FTA와 반대의 목소리들
한미 FTA가 15일 발효됐다. 뿌리 깊은 찬반은 한미자유무역 시대에 각각의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 의미는 정권과 야권이 달랐고, 대기업과 농업계가 달랐다. 하나가 글로벌시대에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찬탄했다면, 다른 쪽은 급속한 경제종속화와 1차산업, 사회보험 붕괴를 근거로 우려했다. 양측이 그리는 미래는 정 반대였다. 지난
이 아이에게 핵을 물려줄 텐가?
[포토] 후쿠시마 1년, 서울 도심서 대규모 반원전 집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도 대규모 반원전, 탈핵 집회가 열렸다.'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 시민문화행사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을 열고 반핵, 탈원전을 촉구하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벌였다.2000여명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도 대규모 반원전, 탈핵 집회가 열렸다.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 시민문화행사 '아이들에
"원전만 없었다면…", 한 일본인이 벽에 쓴 유언
[이미지프레시안] '죽음의 땅' 후쿠시마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
"미안합니다. 일 할 기력을 잃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원전만 없었다면...... 남아 있는 낙농가는 원전에 지지 말고 힘내길 바랍니다. (중략) 제가 먼저 불행을 지고 갑니다. 2011년 6월 10일 오후 1시 30분" 2011년 6월 10일 후쿠시마현 소마시에서 낙농업
어느 중년 여성의 '눈물의 삭발식'
[포토] 한일병원 해고자 복직투쟁 60일째, 고정화씨 삭발하던 날
한일병원 식당에서 일하다 해고된 고정화(52)씨가 복직투쟁 60일째인 2월 29일 병원 앞에서 해고에 항의하며 머리를 삭발했다.고씨는 1993년부터 한일병원 식당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병원 소속으로 자녀 학자금까지 받을 수 있는 나쁘지 않은 직장이었다. 그러나 1999년 병원이 식당 직원들을 외주업체에 넘겨 간접고용으로 바꾸면서 근무 환경은 달라지기 시작했
한일병원 식당에서 일하다 해고된 고정화(52)씨가 복직투쟁 60일째인 2월 29일 병원 앞에서 해고에 항의하며 머리를 삭발했다. 고씨는 1993년부터 한일병원 식당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병원 소속으로 자녀 학자금까지 받을 수 있는 나쁘지 않은 직장이었다. 그러나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