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도요다 나오미(豊田直巳)씨는 대지진 직후 1년 동안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참상을 취재했습니다. 원전 반경 20~30Km의 지역을 중심으로 지진과 쓰나미의 재앙이 덮친 처참한 광경부터 방사능에 오염돼 '죽음의 땅'으로 변해 버린 마을과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공포에 떨면서도 쉽게 고향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록했습니다.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의 3중고에 노출된 후쿠시마현 사람들의 지난 1년은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 기록을 전합니다.
도요다 나오미 사진가는 이 기록으로 서울에서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3월 20일부터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서 보다 많은 사진과 생생한 증언을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
"미안합니다. 일 할 기력을 잃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원전만 없었다면...... 남아 있는 낙농가는 원전에 지지 말고 힘내길 바랍니다. (중략) 제가 먼저 불행을 지고 갑니다. 2011년 6월 10일 오후 1시 30분"
2011년 6월 10일 후쿠시마현 소마시에서 낙농업을 하던 스게자와(가명)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낙농업을 물려받은 스게자와씨는 불과 6개월 전에 퇴비를 쌓아두는 오두막을 새로 지을만큼 일에 의욕에 차 있었지만,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는 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지은 두엄간에서 목을 매달았다. 벽에는 하얀 분필로 쓴 유언만 남았다.
▲ "원전만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못난 아버지였습니다. 누나에게 큰 신세를 지었습니다. 부모님께도 죄송합니다. 남아 있는 낙농가는 원전에 지지 말고 힘내길 바랍니다" 자살한 스게자와씨의 유서가 벽에 적혀 있다. ⓒ도요다 나오미 |
원전 폭발은 후쿠시마현의 낙농업에 치명적인 피해를 안겼다.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상당수의 소들이 긴급히 도축됐고 우유는 출하하지 못해 버려졌다. 낙농업 뿐 아니었다. 상추, 시금치 등의 밭작물 역시 출하할 수 없어 밭에서 썪거나 갈아 엎어졌다. 농가들은 도산하거나 폐업했다.
피난 행렬이 줄을 이었고 마을은 공동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처음부터 피난길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피난이 강제되지 않은 지역의 주민 중 상당수는 원전 사태에서도 생활 터전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농업과 낙농업이 대부분인 이 지역에서 출하하지 못하는 농산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돼 버리자 농민들은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임시 주택에서 슬픔과 외로움에 떨다 고독사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현 등 3개 지역에서 고독사한 사람만 18명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는 65세이상의 노인이다. 아직도 임시 주택에서 지내는 이재민은 4만 8194가구, 11만 5794명에 이른다.
핵발전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생계 수단을 잃었고 끔찍한 대지진의 트라우마와 방사능의 공포 속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다. 주민들에게 온전한 생활은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 핵발전에 대한 불신과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는 언제쯤 걷힐까?
▲ 동료 낙농가의 폐업 위기 소식을 접하고 낙심한 낙농인. 2011년 5월 2일.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 ⓒ도요다 나오미 |
▲ 출하할 수 없게 된 밭작물을 갈아 엎는 주민. ⓒ도요다 나오미 |
▲ 젖소 50마리를 키우던던 하세가와씨는 2개월 이상이나 계속 원유를 버리고 있다. 5월 19일 이이다테무라 ⓒ도요다 나오미 |
▲ 방사능오염지역의 가축 출하 금지 조치로 술만 늘어가는 낙농가. 2011년 5월 1일.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 ⓒ도요다 나오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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