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2월 24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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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8>
김매는 한충과 김인찬을 만나다
우왕 8년(1382) 7월, 이성계는 동북면 도지휘사가 됐습니다. 이때 여진 사람 호발도(胡拔都)가 동북면 인민을 사로잡아 갔는데, 이성계가 대대로 그 지방의 군사 업무를 맡아 지역 사정에 밝으므로 그를 보낸 것이었습니다.이듬해 8월에 호발도가 다시 와서 단주(端州, 단천)
이재황 실록연구가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7>
‘아기 용사’를 사로잡아라
우왕 6년(1380) 8월, 왜적의 배 5백 척이 진포(鎭浦)에 머물면서 남부 3 도(道)를 노략질했습니다. 바닷가 고을을 도륙하고 불태워 쑥밭이 됐으며, 사람을 얼마나 죽이고 잡아갔는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시체가 산과 들을 덮었고, 쌀을 배로 운반하다가 떨어뜨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6>
겁난 왜구들 “이성계는 피하라”
기(奇)황후의 조카 기새인첩목아(奇賽因帖木兒)는 원나라가 망한 뒤 요동의 동녕부(東寧府)를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공민왕 18년(1369)에 고려는 그 정벌에 나섰습니다. 이성계는 동북면 원수, 지용수 양백연(楊伯淵)은 서북면 원수를 맡았습니다.이듬해 1월에 이성계는 기병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5>
납합출을 물리쳐 운명을 바꾸다
실록<이야기 5> 이성계는 스물두 살 때인 공민왕 5년(1356)에 처음 벼슬을 했습니다. 그 아버지 이자춘이 이미 절반쯤 중앙 무대에 발을 들여 놓은 상태라 이성계도 중앙군에 편입돼 외적 토벌 등에 자주 나갔습니다. 1361년에 서북면(평안도)의 독로강(禿魯江) 만호 박의(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4>
화살을 쏘는 대로 맞히다
자, 이제 드디어 이성계의 차례입니다.이성계는 1335년 함흥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이자춘이 최한기(崔閑奇)라는 사람의 딸에게 장가들어 낳았죠.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이원계(李元桂)라는 배다른 형의 존재입니다. 실록은 이원계가 서자라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지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3>
아들 건국기반 아버지가 닦아주다
아들 건국기반 아버지가 닦아주다이행리가 의주에 사는 동안 두 아들을 낳은 먼저 부인 손(孫)씨가 죽자, 등주(登州, 安邊) 호장(戶長) 최기열(崔基烈)의 딸을 후처로 맞아들였습니다. 아들이 없었던 이들은 지금의 강원도 양양(襄陽)에 있는 낙산(洛山) 관음굴(觀音窟)에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2>
전주 이씨가 함경도로 간 까닭은
조선(朝鮮)이라는 새 나라를 연 것은 다 알다시피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입니다. 그는 임금이 되고 난 뒤 이름을 단(旦)으로 고쳤습니다. ‘아침’이라는 뜻인데, 재미있게도 나라 이름 ‘조선’에도 ‘아침’이 들어 있군요. 옛날에 어른이 된 뒤에는 이름을 함부로 부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1>
왕조실록과 놀겠다고?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조선왕조실록을 국보 1호 감이라고 했습니다. 남대문이 국보 1호라는 것은 물론 단순히 지정 순서를 표시하는 데 불과합니다. 그러나 선생의 이 말은 적어도 ‘국보 1호’만큼은 우리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성을 지녀야 했던 것 아니냐는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