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13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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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가스도 끊긴 공장 안에서 그들은 살고 있다"
[포토스케치]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을 가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물과 가스가 끊긴 지 24일로 나흘째다. 음식물과 의료품의 반입이 중단된 지는 그보다 더 오래다. 지난 23일 새벽부터 해가 진 늦은 밤까지 평택공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손문상 기자
노랗게 물든 서울 도심…이날은 눈물도 '盧란색'
[포토 스케치] 슬픈 29일…경복궁에서 서울역까지
29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경'을 기다리는 시민들은 아침부터 광화문 네거리에 나와 노란 풍선을 불었다. 경찰이 시민들을 통제하고자 광화문 네거리에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둘렀지만, 시민들은 고맙다는 듯 폴리스라인에 노란 풍선을 매달았다. 노제가 열리는 시청 앞 서울광장부터 광화문까지는 이내 노랗게 물들었다. 노란색 모자, 노란색 스카프, 노란색 리본,
손문상 기자, 최형락 기자
부시 방한 앞서 경찰기동대 첫 투입…<한겨레> 기자 연행
[현장] 87차 촛불 집회 명동에서 경찰과 대치 후 해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경찰기동대가 처음으로 투입되었다. 그러나 강경 진압 우려와는 달리 87번째 촛불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다만 집회 참가자 수 명은 명동역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도중 호송 차량으로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한겨레 기자도 연행돼 현장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와 경찰 간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찰, 청계광장 원
손문상 기자, 이대희 기자
지금 이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할까?
[포토] 서울을 환하게 밝힌 50만 촛불
50만의 촛불이 다시 타올랐다. 지난 6월 10일 이후 한 달 만에 다시 타오른 대규모 촛불이었다. 그 사이 정부는 추가 협상을 국민들 앞에 "90점 짜리"라며 내놓았고, 대통령은 "많은 생각을 했다"고 자기 고백을 했다. 그러나 곧 이명박 정부는 촛불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이제 시민이 그 자리에 다시 모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또 청와대 뒷산에 올
손문상 기자, 여정민 기자
"국민이 준 힘으로 누구를 지키는가?"
[포토]소화기와 물대포, 동시에 쏟아내던 경찰
28일 밤 서울 도심은 아수라장이었다. 경찰은 물대포와 소화기를 동시에 쏟아냈고, 돌멩이와 쇠파이프까지 휘둘렀다. 시민들도 만만치 않았다. 근처 건물에서 소방 호스를 끌어 와 경찰에 맞섰다. 일명 '맞물 작전'이다. 시위대의 '맞물 작전'에 경찰은 선무 방송을 통해 "시민 여러분은 일부 시위대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고 말했지만, 지켜보는 시민들은 경찰의 '
'명박산성' 찢어지던 날
[포토] 시민들은 '명박산성'도 찢고 넘었다
'명박산성'은 지난 10일 광화문 네거리에 등장한 컨테이너 바리케이트의 별칭이다. 오로지 청와대를 사수하기 위한 어청수 경찰청장의 충성심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을 이 컨테이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명박산성'이라고 부르며 조롱했고, 외신들도 대대적으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 등장한 컨테이너를 보도해 국제적 망신을 샀다. 그날 이후 컨
28일 촛불, 큰 충돌없이 새벽 넘기나
시민, 조선일보 사옥 앞 쓰레기 치우기도
28일 새벽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경찰과 시민 간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새벽 3시 30분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는 1000여 명의 시민들은 도로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광우병대책위원회가 튼 '대한민국 헌법1조', '짜라짜짜' 등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등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했다. 일부 시민들은 시민들이 조선일보 사옥 앞에 버
손문상 기자, 채은하 기자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짧지만 먼 길'
[현장] 촛불이 두려운 경찰이 나눈 세종로
21일, 서울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서 열린 촛불 집회는 약 10만 명(시민단체 추산)이 참석했다. 경찰은 컨테이너로 '명박산성'을 쌓지 않았다. 그러나 어김없이 경찰 버스를 동원해 청와대로 향하는 광화문 사거리를 철저하게 봉쇄했다. 토요일 오후, 세종로는 경찰
거대한 광장에 홀로 고립된 섬, 청와대
[현장]밤만 되면 거대한 광장으로 변하는 광화문
지난 2002 월드컵 이후 가장 많은 시민이 광화문 일대를 자유롭게 누볐다. 경찰은 여론의 드센 반발을 크게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양 측은 또 다시 신경전을 벌였다. 광화문 네거리는 거대한 광장 바리케이트로 이용된 경찰 차량만 있었다. 움직이는 차는 없었다. 태평로와 신문로, 을지로 일대는 모두 시민들이 차지했다. 6
"안 때렸다고?"…"이 상처는 뭐냐?"
경찰, 광화문에서 강제진압
▲ 하론소화기를 발사하며, 시민을 연행하고 있는 경찰. ⓒ프레시안 ▲ 끌려가는 시민. ⓒ프레시안 ▲ ⓒ프레시안 ▲ 끌려가는 시민과 취재하는 기자. ⓒ프레시안 ▲ 전경도 지쳤다. ⓒ프레시안 ▲ 집회가 끝난 뒤, 시민들은 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프레시안 좁고 가파른 골목길이라는 특성 탓에 대형 사고 위험을 안고 있었던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근처
손문상 기자, 이대희 기자, 성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