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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광장에 홀로 고립된 섬,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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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광장에 홀로 고립된 섬, 청와대

[현장]밤만 되면 거대한 광장으로 변하는 광화문

지난 2002 월드컵 이후 가장 많은 시민이 광화문 일대를 자유롭게 누볐다. 경찰은 여론의 드센 반발을 크게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양 측은 또 다시 신경전을 벌였다.

광화문 네거리는 거대한 광장

바리케이트로 이용된 경찰 차량만 있었다. 움직이는 차는 없었다. 태평로와 신문로, 을지로 일대는 모두 시민들이 차지했다.

6일 밤, 촛불 집회 사상 가장 많은 시민(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측 추산 20만 명, 경찰 추산 5만 6000명)이 모였다. 밤이 돼도 사람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일부는 텐트를 치고 72시간 이어지는 집회를 즐길 준비에 들어갔다.
▲ 촛불집회는 세대의 벽을 녹이는 거대한 용광로였다. ⓒ프레시안

사람들은 그동안 차들에게 내줬던 거리를 마음껏 누볐다. 산책하듯 손을 잡고 도로를 누비는 연인이 많았다. 곳곳에서 촛불을 조명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도로를 포함한 광화문 일대가 거대한 광장이었다. 시청 앞 광장은 그저 휴식공간일 뿐이었다.
▲ 촛불을 든 연인 ⓒ프레시안

낮부터 시청에 나와 각종 문화행사를 즐겼다는 유모 씨(26·대학교 4학년)는 "분한 마음에 나왔지만 지금은 그저 자유를 즐기는 것만으로 즐겁다"며 "시민들이 이제 광장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밤공기를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 프로축구팀 서포터들은 경기장 밖에서 머플러를 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생들이 깃발을 나부꼈다. 즉석 공연이 이어지는가 하면 밤늦도록 자유발언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 온라인 공간을 통해 만난 소녀들이 거리에서 뭉쳤다. ⓒ프레시안

이제껏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하지만 광장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다양한 모습이 이날 밤 펼쳐졌다. 보통의 광장과 다른 점은 사람들의 얘기 소재가 바로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전남 해남에서 올라온 한 농부는 "지금은 임시정부 체제나 다름 없다. 여러분이 바로 대통령"이라며 "여러분이 대통령이 될 10일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 휴대전화 대리점 주인도 마음으로 촛불집회에 동참했다. 87년 6월 항쟁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프레시안

▲ 조선일보사 앞을 지나는 촛불 행렬. 시민들은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에 대한 강한 경멸감을 드러냈다. ⓒ프레시안

경찰의 바다, 외로운 섬 하나 '청와대'

이날도 길은 막혀있었다. 밤 10시 50분경 광화문 앞에 모인 시민들이 "청와대로 가자"고 외쳤으나 경찰은 일찌감치 길목 곳곳을 모두 막아놓았다. 시민들은 청계천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는 길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 촛불 행렬을 가로막은 전경버스에 시민들은 "불법주차" 표시를 했다. ⓒ프레시안

대신 시민들은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 된 곳은 새문안교회 뒷길이었다. 교회 뒷골목과 교육관을 낀 길을 통해 시민 5000여 명이 청와대로 이동하려 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새문안교회 뒤 좁은 골목길이 최전선이 됐다.

경찰 차량이 앞을 가로막자 시민들은 7일 새벽을 기해 밧줄로 차량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경찰은 전·의경을 차에 탑승시켜 차량 이동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 소화기를 발사하며, 시민을 연행하고 있는 경찰. 보건 전문가들은 소화기를 사람에게 직접 분사하면 질실사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프레시안

충돌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은 경찰 차량을 훼손시키기도 했다. 유리창이 깨지자 차량 내부에 있던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도 잦아졌다. 유해성 논란이 돼 사용을 자제할 것으로 예상됐던 분말 소화기를 경찰은 다시 뿌렸다.

결국 부상으로 이어졌다. 많은 전·의경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시민 한 명은 허리 부위를 크게 다쳐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안 그래도 좁은 데다 가파른 골목이라 조금만 힘싸움이 이어져도 크게 다치는 부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다.
▲ 새문안교회 근처 골목에는 이날 밤 내내 위험이 감돌았다. 좁고 가파른 골목에서 시민과 전경이 팽팽하게 대치했다. 사진 상단을 보면, 사복을 입은 형사가 캠코더를 들고 시위 참가자를 상대로 채증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프레시안

이 와중에도 신문로 일대에 모인 시민들은 결국 경찰 차량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사람과 경찰차의 줄다리기는 4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결국 경찰 차 한 대가 도로로 빠져나왔다. 경찰 차량이 한 대씩 달려 나올 때마다 시민들은 큰 호응을 보냈다. 4대 이상의 경찰 차량이 도로로 끌려나왔다.

대다수 시민들은 차량 당기기에 나서는 남성들을 향해 큰 호응을 보냈다. 대전시 동구에서 올라온 대전 시티즌의 서포터 이 모 씨(24·구성작가)는 "우리 말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으니 청와대로 직접 가려는 것이 아니냐"며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전·의경들에 미안하지만 우리는 대통령을 만나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 밧줄로 경찰 차량을 잡아당기는 시민들. 이런 식의 차량 치우기는 밤새 이뤄졌다. ⓒ프레시안

하지만 현장에 나온 모든 시민이 경찰 차량 치우기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회사원은 "솔직히 경찰차가 청와대로 가는 일대 곳곳을 막은 것은 못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의 재산을 훼손시키셔야 되겠나"고 따져물었다.

시민과 대치하는 경찰의 표정은 언제나 그렇듯 경직됐다. 이날 이곳에서 경찰만이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각 관료들과 여당 당직자들 역시 이날 집회를 보고 착잡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수많은 경찰의 보호선 안에 있는 청와대는 완전히 서울과 동떨어진 섬처럼 느껴졌다.
▲ 경찰의 강제진압이 시작되기 직전, 광화문 풍경. ⓒ프레시안

▲ 전경도 지쳤다. ⓒ프레시안

▲ 경찰도, 시민도 목이 탔다. 한 온라인 모임에서 마련한 생수를 시민과 경찰이 나눠 마셨다. ⓒ프레시안

슬슬 국민 눈치보는 경찰…하지만 여전한 폭력

오랜 기간 지속된 집회 때문에 경찰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듯했다. 하지만 전과 같은 노골적인 폭행을 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여론이 워낙 나쁜 탓인 듯 보였다.
▲ 서울 종로구 새문앞교회 근처에는 6일 자정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민과 경찰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진 곳이기도 했다. ⓒ프레시안

▲ 경찰도 괴롭다. 시민과 경찰은 언제까지 이런 괴로움을 견뎌야 하나. ⓒ프레시안

경찰의 육성 녹음 방송부터가 그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던 방송 내용이 "시민 여러분, 평화로운 집회를 위해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전·의경을 해치지 말아 주십시오"로 바뀌었다.

경찰 지휘관의 말투 역시 달랐다. 새문안교회 뒷골목에서 시민을 막고 있던 지휘관은 새벽 5시경이 되자 "버스를 파괴하고, 도로를 불법점거하고…이래서는 안 됩니다"고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날이 밝았으니 이제 그만 해산하세요"라고 시민들에게 읍소했다.

그는 또 "전경들도 여러분의 동생입니다. 자 빨리 좀 집에 갑시다"고 정중히 시민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미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행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상태였다. 지휘관의 요청에 시민들은 "군홧발로 왜 밟았냐"고 따졌고 "어청수를 구속하라"고 외쳤다.
▲ 끌려가는 시민. ⓒ프레시안

▲ 신발이 벗겨진 채 끌려가는 시민. ⓒ프레시안

양측의 대치가 6시간이 넘게 이어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지휘관의 말에 이어 진압 준비를 한 경찰이 행렬 앞으로 나서자 시민들은 "비폭력"을 크게 외쳤다.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워낙 많은 언론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데다 최근 극도로 나빠진 경찰에 대한 여론도 경찰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오전 6시가 넘어 시민들이 자진 해산을 하자 양측은 충돌 없이 물러섰다.
▲ 끌려가는 시민과 취재하는 기자. ⓒ프레시안

강제 해산은 태평로에서 이어졌다. 오전이 되면서 차량 소통이 많아지자 부담을 느낀 경찰은 오전 6시 30분경 광화문 일대 도로를 차지한 시민들을 인도로 몰아냈다. 경찰은 또 다시 분말소화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화가 난 <연합뉴스> 기자와 경찰이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부근에 있던 타 매체 기자들까지 나서 "왜 방패날을 갈았냐"고 따지자 50중대 김모 중대장은 "경찰은 억울한 점이 없는 줄 아느냐"고 맞섰다. 시민 몇 명이 연행되었지만 우려했던 큰 부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 2005년 농민대회에 참석했던 전용철·홍덕표 씨의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게 '칼날 방패'다. 테두리에 있는 고무 패킹을 제거하고, 끝을 날카롭게 간 방패다. 끝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 방패의 사용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2008년 6월의 거리에서 '칼날 방패'는 여전히 카메라에 잡혔다. ⓒ프레시안

▲ 역시 '칼날 방패'가 눈에 띈다ⓒ프레시안

장기전 준비하는 시민들

도로에서 완전히 밀려난 후에도 시민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여고생 몇 명은 서울시의회 앞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고 시내 곳곳에서 개별적으로 초를 다시 드는 시민도 보였다.

아예 텐트를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시사IN>, 진보신당, 참여연대 등 언론·정당·사회단체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시청 앞 광장에 텐트를 차렸다. 말 그대로 '장기전'에 돌입하는 모양새였다.

일단 6일 집회는 무사히 끝났다. 이전과 달리 큰 불상사가 적었다는 점도 다행이다. 하지만 휴일은 아직 많이 남았다. 여기에 대통령은 "재협상은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시민들은 해산하는 경찰들을 향해 "걱정마라. 푹 쉬고 오늘 밤에 보자"고 크게 외쳤다. 단순히 경찰만을 향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 집회가 끝난 뒤, 시민들은 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프레시안

이 주체할 수 없는 센스쟁이들!

6일 낮부터 열린 집회에서 발휘되는 시민들의 센스는 놀라웠다. 온갖 해학과 풍자가 거리 곳곳에 퍼져나갔다. 특히 경찰은 완전히 시민들의 놀림감이 됐다.

"경찰도 놀아주세요!"

이제 전경들이 워낙 익숙해서일까. 경찰 지휘부를 향한 시민들의 장난질은 이날도 이어졌다. 지휘자가 계속해서 해산을 종용하자 자리에 모였던 시민들은 이날도 역시 "중대장! 노래해!"를 외쳤다.

중대장이 노래할 리가 만무. 대응은 간단하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적어도 새문안교회 뒷골목에서는 착해진 전경. 조심스레 물러나자 기다리고 있던 예비군들이 박수를 치며 그들을 위로한다.

"후배들아, 수고했다!"

"쟤네 뭐라 말하는 거야?"

전경들이 내지르는 구호는 명령 전달 목적도 있지만 사기를 높일 때도 쓰인다. 새문안교회 뒷골목에서 대치가 길어지자 지휘부는 다양한 구호를 외치게 했다. 이날도 전경들의 구호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제 해석을 포기한(?) 시민들. 전경들의 구호가 끝나자 곧바로 웅얼거리며 그들의 구호를 흉내낸다. 이에 질세라 전경들이 더 큰 고함을 질렀다. 시민의 반응.

"앵콜!"

광화문 진압 과정에서 한 중대장이 전경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명령을 전달했다.

"자, 때리지 말고 기자분들 다치지 않게 밀면서 나간다. 5보 앞으로!"

지휘 전달이 이뤄진다. 선임으로 보이는 한 전경이 "때리지 마!" 하고 외쳤다. 뒤이어 따르는 구호.

"OOOO(때리지 마)!"

한 시민, 경찰들을 피하기 위해 숨을 헐떡이며 인도로 도망간 후 한 마디 내뱉었다.

"야, 얘네(전경) 구호 중에 딱 하나 알아먹었다. 때리지 말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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