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6년 03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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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부대 엄마와 참교육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시청 앞 촛불 때 유모차를 밀고나온 엄마들을 처벌한답시고 경찰이 대활약 중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비판 여론이 물 끓듯 한다.소탐대실(小貪大失), '긁어 부스럼'이다.불교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 수색으로 엄청난 불교 반발을 불러 거대한 문명사 변동의 물결을 촉발시킨 경찰이다.혀를 차서나 웃음이 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기이한 느낌이다.경찰의 행동은 윗전의 분위
김지하 시인
기독교 이야기
종교계, 특히 불교와 함께 카톨릭과 생명평화 애호 개신교의 평화의 대 문명사 창조의 보호막인 소쿠리를 메고 어린이, 청소년, 여성을 주체로 하여 가난하고 쓸쓸한 다수대중과 함께 한 사람을 위해 여럿이 힘을 몰아주는 생명가치의 구체적 실현인 여러 형태의 품앗이, 한
마당과 일원상(一圓相)
개벽을 목표로 하는 문화 운동의 중심 흐름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살아 생동하는 '사은'의 '판'이 이미 그 판을 모시는 자리로서 성화(聖化)된 '둥글고 빈 마당' 즉 '일원상' 안에서 참으로 감동적이게 뛰어 노는 것. 나는 바로 이 유
촛불 모심
촛불. 광장의 촛불. 이제 산에 오릅니다. 한반도의 어머니 산들이시여! 우리네 삶의 한(恨) 많은 신명(神明), 쓰라린 중력으로부터만 켜지는 조그마한 초월의 빛을 산이시여! 이 흰 그늘을 받아주시옵소서. 지난 날 쓰라린 고통과 안타까운 희망으로 당신 앞
새로운 생명운동의 길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촛불과 농업
나는 농부가 아닙니다. 농업에 관한 특강을 할 만큼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오늘 특강의 제목이 농업이 아니라 생명운동인 것이 바로 그 증거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습니다.독일의 신비주의자 루돌프-슈타이너는 결코 농부가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춧불과 탈춤 (하)
새 마당굿은 이미 지적하였지만 '그늘'을 가장 중요한 핵심적 미학원리들의 하나로 강조해야 하는데 (도노소리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깊은 한(恨)의 작동 원리이며 그것의 수련과 표현을 위한 '삭힘', 즉 '시김새'라는 이름의 미의식, 미학으로서 그
횃불에서 촛불로!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춧불과 탈춤 (중)
'생명과 평화'라는 방향을 문명·문화·생활·생명·종교와 일상의 문제로 나누고 다시 연결시키며 검토해야 한다. '혼돈과 질서', '혼돈적 질서'에 관한 공부, 또한 대화를 자주 나눠야 한다. '한(恨)'과 신명(神明)'의 문제 또
운하에서 바다로!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춧불과 탈춤 (상)
다만 한 가지 끝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촛불과 탈춤이 똑같이 먹는 음식이나 매일매일의 삶을 중심으로 한 생활가치를 기본 테마로 한다는 것과 그래서 혼돈을 포함한, 혼돈 그 자체인 생명과 그 생명의 표현과 요구의 진행을 어떠한 적대나 갈등이나 풍자에도 불구하고 근본
촛불정신을 어떻게 계승·확대할 것인가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육임제의 의미와 세 번 숨고 세 번 드러남
육임제의 의미와 세 번 숨고 세 번 드러남(六任制와 三隱三顯) 촛불은 이제 꺼지려 합니다. 시청 앞의 집단적 촛불은 이제 꺼지려 하고 있습니다. 계속 켜자는 강경 주장과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는 온건 주장이 맞서고 그 절충으로서 일주일 만에 한 번씩 켜고 그와 함께
"소쿠리 메고 품앗이 하러 갑시다"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생명과 평화, 그리고 촛불
이 글은 지난 7월 30일 오후 6시 30분, 조계사 '촛불의 생명과 평화ㆍ대중공사' 1회 행사에서 김지하 시인이 '생명과 평화'를 주제로 행한 강연 전문입니다. 편집자 생명과 평화 지난 4월 말부터 지금까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촛불의 광장집회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