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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리 메고 품앗이 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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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리 메고 품앗이 하러 갑시다"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생명과 평화, 그리고 촛불

이 글은 지난 7월 30일 오후 6시 30분, 조계사 '촛불의 생명과 평화ㆍ대중공사' 1회 행사에서 김지하 시인이 '생명과 평화'를 주제로 행한 강연 전문입니다. 편집자
  
  생명과 평화
  
  지난 4월 말부터 지금까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촛불의 광장집회는 한마디로 해서 생명과 평화로 집약된다.
  
  나는 1980년 한겨울 6년여의 독방살이를 접고 감옥을 나온 뒤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이른바 생명과 평화 운동을 해왔다.
  
  불교의 종지는 한마디로 생명과 평화다. 오늘은 이 세 갈래 물이 만나는 자리다.
  
  이 인연이 우리 사회와 세계 인류에 이바지하는 좋은 실마리가 되기를 빈다.
  
  불교 최고최대의 경전은 화엄경이다. 화엄 사상은 현상 세계가 모든 개체들이 상호 교섭 속에 활동하며 무한 연관관계를 갖고 서로 걸림 없이 근본적으로 연기(緣起)한다는 사상이다.
  
  우주는 거대한 그물이며 인간과 모든 존재는 그 속의 수 없는 그물코로서 그 작은 그물코 하나하나는 모두 다 제 안에 그 큰 우주 그물을 담고 서로서로가 끊임없이 그물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생명의 실상이며 이 실상이 파괴되지 않도록 일체의 억압과 폭력을 배제하자는 평화의 실천이 다름 아닌 화엄사상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데, 틀렸는가?
  
  만약 틀리지 않았다면 한 가지 묻겠는데 무언가 가슴에 성큼 와 닿는 게 없는가? '우주 그물', '그물코', '그물운동' 말이다.
  
  촛불의 주체는 네트워크 세대다.
  
  그렇다면 화엄경에서 그 무수한 그물코마다 수많은 보살들이 일어나 우주만큼 장엄하고 영적으로 심오한, 그러나 저마다 각기 개성적인 각도와 표현이 서로 다른 진리를 소리 높이 외치는, 그리하여 서로 공명하는 그 진풍경에 부딪혀서는 어떠한가?
  
  '집단지성' 말이다.
  
  촛불의 전위는 어린이와 청소년과 여성이다.
  
  화엄경 제8회는 선재동자(善才童子)라는 소년이 진리를 배우기 위해 53명의 멘토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보살, 비구, 비구니, 의사와 신과 선인, 그리고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 외에도 자신과 똑같은 소년, 소녀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고통당하는 여성도 있다. 어찌 생각하는가?
  
  진리를 구함에는 계급이나 종교의 차이가 별 문제가 아니고 진리를 실천함에는 우선 자신과 같은 소년과 고민이 있는 여성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명의 진리 공부와 평화 행동의 원칙적 실천 문제가 화엄경 속에 이미 그 윤곽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화엄사상은 우주 생명의 실상에 맞게 세상을 평화적으로 개벽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화엄개벽'이라고 불러보자!
  
  개벽은 마치 태초에 하늘과 땅과 인간이 활짝 열리던 것처럼 인간과 땅과 하늘이 모두 다 위태롭고 파멸과 죽임의 어둠에 갇힌 이 시대의 한계를 다시 한 번 활짝 열어제치는 대전환을 말한다.
  
  불교와 화엄사상은 우주와 인류 보편의 진리다.
  
  보편 진리의 구체적 실천 방법에서는 우리 민족 나름의 역사적 경험을 고려해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만약 보편 진리와의 적합성이 보인다면 말이다.
  
  민족의 고대사상에서는 또한 이런 말들이 보인다.
  
  '이 민족은 산 것을 좋아하고 죽이는 것을 싫어하며 양보하는 것을 좋아하고 다투는 것을 싫어하니 죽지 않는 군자의 나라라고 한다.'
  
  또한 '나라에 그윽하고 오묘한 진리가 있으니 그 이름이 풍류다. 유불선 세 가르침을 애당초 제 안에 담고 있고(포, 包) 뭇 생명을 사랑하여 진화시키고 조화시킨다(접, 接).'
  
  이것이 바로 19세기 동학의 포(包)와 접(接)으로 계승된다. 포는 유불선의 양심적인 종교인들로부터 지지와 지혜의 연장을 구해 담는 '소쿠리'를 뜻하고 접은 생활하는 민중들이 서로 힘을 합쳐 노동하고 서로 힘을 빌려주는 사랑으로 생명의 연관을 실천하는 '품앗이'인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동학 농사꾼들은 '소쿠리 메고 품앗이 간다'는 말을 늘 했다고 한다. 동학은 불교의 참선법과 똑같은 '모심'의 진리를 수행하는 개벽 실천의 '살림' 운동이었다.
  
  지금 촛불 세대는 안팎의 형편으로 보아 부득이 국면 전환을 시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틀렸는가?
  
  만약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 바로 이 '소쿠리 메고 품앗이 간다'는 말을 한 번 깊이 생각해보자.
  
  만약 내 말이 진정 틀리지 않았다면 불교, 천주교, 천도교와 생명 평화애호 기독교, 원불교 및 민족종교협의회의 훌륭한 성직자들과 촛불을 사랑하는 수많은 훌륭한 지식인들의 지지와 보호와 지혜를 구해 연장처럼 담은 '소쿠리'를 메고 청소년과 여성들을 전위로 하여 먹을거리(채식과 한우 육식 등 공급 소비)와 물 문제, 환경생태 보호, 건강, 생계, 교육개혁 등 일상 생활의 대안적 자활운동을 생명 가치를 토대로 일상화하여 '품앗이' 가는 실천의 두 가지 방향으로 '화엄개벽'의 이상을 추진하여 삶의 활동이자 새 문명사 창조운동으로써 큰 '깨침'을 이루어 참말 세상을 한번 근본적으로 바꿔 볼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다.
  
  물론 이 활동 안에는 지금 문제되는 쇠고기, 대운하, 인터넷 탄압, 언론 방송 문제, 일본, 남북관계 등 모든 현안의 근본 해결의 길이 함축되어 있다. 참말 그런 생각 없는가? 포접을 통해 의논하고 공부하고 실천해 볼 생각은 있는지 묻는다. 그러나 묻는 나는 모른다. 나 역시 한 그물코일 뿐이다.
  
  또 다시 틀렸는가? 싫다면 내 말 모두 지금 당장 잊어버리시고. 나는 결코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불교 시국법회 촉진자인 수경(收耕) 스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다.
  
  "시청 앞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수십 명의 초등학생들이 '수입 반대' 팻말을 들고 함께 서 있다가 한꺼번에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그곳에 자기들과 똑같은 자그마한 초등학생 한 아이가 '수입 찬성' 팻말을 들고 오똑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누가 말할 사이도 없이 모두 함께 순식간에 그 아이에게로 달려가 둘러쌌습니다. 왕따나 집단 테러를 가하면 어찌하나?
  
  주변의 어른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하하, 이것 보십시오.
  
  수십 명 아이들 입에서 한꺼번에 이런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야아! 너 어떻게 혼자서 그럴 용기가 났어, 응? 너 진짜로 짱이다 짱!'
  
  순식간에 그 아이는 수십 명 아이에게 헹가래에 실리고 무등에 태워져 광장 복판으로 들어왔답니다.
  
  아이들이 흥분 속에 소리소리 지르며 '너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하는거야! 알았어? 우리는 '반대' 팻말을 들고 너는 '찬성' 팻말을 들고! 그래, 그래! 우리 함께 하는 거야!"
  
  때가 왔다고 본다.
  
  정권 퇴진 따위 다급한 소리 말고, 생활 가치를 위한 직접적 화백민주주의와 '화엄 개벽'에 의한 대문명전환의 때가 왔다고 본다.
  
  생명 평화의 깃발을 높이 든 어린이, 청소년, 여성이라는 참으로 신선한 새 주체, 새 인간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선재동자는 사실 그 긴 시간 광장에서 바로 촛불을 켜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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