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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노무현, 중산층 이탈을 부르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6>] 부동산 정책 혼선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출범하자마자 전임정권의 정책실패로 인한 아파트 투기에 덜미가 잡혀 정신을 차릴 여유가 없었다. 온갖 억제책을 동원해서 투기망령과 힘겹게 싸우는 모습이었다. 주택 관련 세금을 몽땅 올리고 투기과열지구를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김대중의 정책 실패, 노무현의 덜미를 잡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5>] 신용카드 위기
김대중 정권의 주택정책 실패가 투기광풍을 일으켰다. 집값 폭등은 빈부격차를 더욱 벌려 사회갈등을 심화시켰다. 신용카드 위기가 금융불안을 가중시켰다. 김대중 정권의 근시안적인 경기부양책이 심각한 후유증-부작용을 유발하여 국민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김대중
김대중 정권, 벤처광풍에 놀아나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4>] 투기 열풍
2000년 신문철을 뒤져본다. 그것은 정말 광풍이었다. 새 천년을 알리는 요란한 팡파르를 타고 벤처 붐이 터졌다. 어느 날 벤처라는 낯선 영어 단어와 함께 무수한 닷컴이 쏟아지는가 했더니 온통 벼락부자 소식으로 가득 찼다. 2000년 봄은 그야말로 벼락부자 탄생의 시대였
공적자금=공돈? 그 많은 혈세는 어디로 증발했나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3>] 방만한 공적자금 운용
김대중 정권이 IMF 관리체제라는 위난상황을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은 사실이다. 또 그중의 상당액은 손실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마비상태에 빠진 금융체제를 황망하게 복구하다 보니 국민적 부담이 더 증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은 왜 과감하게 개혁을 못했나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2>] 면죄부
경제파탄의 책임을 물어 경제부총리 강경식, 청와대 경제수석 김인호를 외환실상을 축소보고해 외환위기를 초래한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다. 일시적인 외환관리에만 한정한 형사처벌은 처음부터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경제파탄은 1997년 11월 미
'IMF 사태'로 떼돈을 번 사람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1>] 몰락하는 중산층
IMF 사태에 따라 신규채용이 급감하면서 대졸자를 포함한 20대 실업자가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마다 정리해고가 마치 유행병처럼 번져 30-50대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했다. 생산직 못지않게 사무직-전문직의 해고가 늘어나면서 고학력 실업자가 양산되었다. 자녀
김대중 정부, 노동 현장의 불법을 방관하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0>] '살인 자본주의'
김대중 정권의 노동정책을 보면 미국의 잠정해고(lay-off)를 배우는 듯했다. 1990년대 들어 미국의 거대기업들이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니, 규모축소(downsizing)니 해서 경영혁신을 단행했다. 그 핵심은 인력감축이었다. 그 결과 미국기업들은 경쟁력을 확보했고 세계에
"매일 실업자 1만 명씩"…깡패까지 동원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⑨] 불법해고 기승
15세 이상으로서 노동을 제공할 의사와 능력을 가진 사람을 경제활동인구라고 한다. 이들이 하루에 한 시간만 노동하면 고용으로 본다. 그러니 정부통계만 가지고 실업실태를 파악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정부통계만 보더라도 1998년 2월말 현재 실업자가
경제주권 접수한 IMF, 점령군처럼 행세하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⑧] 약탈적 구제금융
IMF 사태에 따라 30년간 이룩한 경제건설이 하루아침에 붕괴했다. 집단도산-대량실업에 따라 많은 가정과 개인이 파산했다. 부실기업 정리와 실업구제 대책으로 엄청난 세금을 냈다. 그런데 국가경제가 파탄 났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경제파탄은 김영삼 정권 5년간의
누구도 IMF 위기를 책임지지 않았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⑦] 국가경제 파탄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불러온 금융-외환위기는 예견된 사건이었다. 1997년 11월 어느 날 갑자기 한두 사람이 잘못해서 터진 사태가 아니었다. 최소한 지난 수년간 집행되어온 경제정책의 실패가 금융위기에 이어 외환위기를 초래했고, 그것이 국가경제를 파탄내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