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열린우리당 의원 워크숍에서 우상호 대변인은 당 출입기자들에게 "다음 주는 '강금실 주간'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난 지금, 우 대변인의 예고는 120% 실현됐다.
***상장 이후 5일 연속 상한가 기록한 강금실 주**
한 편의 연극을 방불케 했던 지난 5일 정동극장에서의 출마선언, 지도부와 의원들이 총출동한 6일 입당식, 이명박 시장의 전유물인 청계천 한가운데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포옹한 7일 청계천 방문, 공개리에 네티즌 인기몰이에 나선 8일의 사이월드 일촌맺기, 카페 분위기의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열린 9일 기자간담회까지.
이 한 주 동안 강금실 전 장관의 언어도 보라색 스카프만큼이나 화려했다.
출마선언을 하는 도중 그는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 박사를 유혹하며 던진 대사를 차용하는가 하면 "희망은 제2의 영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뒤에도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도 꽃이 된다는 것을"이라는 김용택 시인의 싯구가 나왔고, "차별적 구도를 극복하고 뛰어넘는 원형(圓形)과 순환의 도시플랜"이라는 선거기조까지 화려한 레토릭은 끊일 줄을 몰랐다.
'비상장 우량주' 시절부터 기대를 한 몸에 안았던 '강금실 주'가 높은 공모가에서 출발한 상황을 훌쩍 넘어서서 상장 5일 동안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시장을 뒤흔든 데에는 이처럼 '격조'있어 보이는 언술들이 큰 역할을 했다.
마침내 '강금실 열풍'은 야당의 선거구도까지 완전히 뒤흔들었다. "강금실은 이미지 정치에 불과"하다고 맹공을 퍼부었던 한나라당에서도 '이미지'가 강점인 오세훈 전 의원의 주가가 급등한 것이다.
요컨대 적어도 서울시장 경선 판도 만큼은 '강금실 대 비강금실' 구도로 굳혔다는 얘기다.
***이명박의 청계천과 전태일의 청계천이 공존…그 내용은?**
하지만 빨강과 파랑이 적절하게 혼합돼 아름다운 색을 연출한다는 그 보랏빛의 정체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까지 감이 안 잡힌다.
출마선언 당시 '왜 보라색이냐'는 질문에 강 전 장관은 대중을 사로잡기 위한 혁신전략에 관한 마케팅 개념인 퍼플 카우(purple cow)를 내세우는 한편 기존의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립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답했었다.
좀 더 구체화된 언어로는 "경계 허물기"라는 표현이 나왔다. 또한 '이명박의 청계천'과 '전태일의 청계천'이 동시에 그려졌다.
청계천 전태일 다리를 방문하기에 앞서서는 자신의 블로그에 미국계 프랜차이즈 스무디 킹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는 사진도 올려놓았다. 적어도 강 전 장관과 강금실 지지자들 사이에선 전태일과 아메리카노 커피의 공존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는 걸 반증했다.
386 운동권들을 중심으로 그어진 조잡한 민주-반민주 구도, 보수와 진보 구도에 비해선 분명히 세련미가 넘친다. 그러나 파랑과 빨강의 융화, 이명박과 전태일이 융화하는 방법론은 아직까지 기대에 못 미친다. '어떻게' 가 여전히 나오지 않아서인 듯싶다.
실제로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이미지 정치'의 장을 여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한 강 전 장관과 캠프 관계자들이 정작 '패러다임 전환'의 알맹이에 대한 질문에는 또다시 추상적 수준으로 에두르거나 "좀 있다가…", "차후에…"라는 말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우리는 '수용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다른 후보들의 좋은 공약은 모두 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야를 떠나 서울을 위해 '바람직한 것'은 모두 받아 안겠다는 올바른 자세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난마 같이 얽혀 있는 부동산 문제, 교통 문제, 환경 문제, 교육 문제 등에 대해 보랏빛처럼 고차원적인 해법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안개속이다.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네모난 원'에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처럼 강 전 장관의 보랏빛이 모순의 기계적 결합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다.
금주부터 본격적으로 그에 대한 답을 내겠다고 했으니 당분간은 지켜봐야 하겠다. 강 전 장관이 그리는 '퍼플 카우'에 평가도 그때가 되면 구체화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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