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의원이 한 발 한 발 서울시장 경선 출마 쪽으로 의중을 굳혀가고 있다. 최근 그를 접촉한 의원들은 "오 전 의원이 출마 의사를 강하게 갖고 있다"고 전했다. 10일 께 최종적인 입장을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까지 당내 움직임, 외부 여론의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결심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 전 의원의 출마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본선보다 어렵다"는 당내 경선에서의 경쟁력이 관심을 끈다. '전략공천' 가능성이 희박한 현 상황에서 오 전 의원이 출마한다면 필연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이다.
'본선 경쟁력'은 객관적으로 가장 높게 평가되면서도 당내 '경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오 전 의원의 '딜레마'인 셈이다.
***남은 시간은 보름, 전폭적인 지지세 없어 고민 **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경선일을 잠정적으로 23일로 잡아뒀다. 오 전 의원이 10일 출마선언을 한다고 해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보름이 채 못 된다.
맹형규ㆍ홍준표 등 다른 주자들이 6개월 전부터 표심을 다져온 것에 비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게임인 셈이다. 오 전 의원이 6일 저녁 자신을 찾은 '수요모임' 의원들에게 "100미터 경주를 하는데 이미 다른 주자들은 80미터를 뛰어간 상태"라고 고민을 털어놓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로 당 내에선 오 전 의원이 짧은 기간동안 공략할 수 있는 '부동층'이 많아야 20%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한다. 게다가 오 전 의원이 단시간에 경쟁력을 확보할 만큼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장파, 초선 의원, 이명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오 전 의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는 하지만, 한 당직자는 이들을 "자기 표 한 장 가진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실질적으로 경선에서 표를 끌어올 만큼 믿을만한 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파 "이미지만 우아하게 가꿔 온 사람이…"**
오 전 의원의 '경선 경쟁력'에 대한 회의는 단지 시간과 조직력의 열세 때문만은 아니다. 당내에 만만치 않은 '비토 세력'이 존재하고, 이로 인한 정서적 거부감도 적지 않다.
7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정훈 의원이 "당 밖에서 이미지만 우아하게 가꿔 온 사람이 당내에서 고생한 후보들을 제치고 무혈입성하려는 것은 당내에서 고생하고 있는 많은 당원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오 전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 소장파 의원조차 "오 전 의원이 2004년 총선에서 불출마 한 것을 두고 당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혼자 빠져나갔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비토 분위기를 걱정했다.
특히 '오세훈 선거법'으로 칭해지는, 지난 16대 국회 말 정치자금의 입구를 대폭 줄인 선거법에 대한 의원들의 노골적인 불만은 오 전 의원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한 당직자는 "'선거법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혼자 독야청청인 척 하느냐'는 식의 불만이 쌓여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내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들의 여론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도 "오 전 의원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야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지만 대의원들에게는 먹힐지가 문제"란 말이 새어 나왔다.
이에 따라 오 전 의원이 경선 분위기만 띄우고 자신은 주저앉게 되는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바람'만 분다면…**
반면, 오 전 의원이 바람몰이를 통해 '홈런 타자'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크게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오세훈 카드'에 대한 당 내 절박감의 고조다. 이는 열린우리당 예비후보인 강금실 전 장관의 바람이 거세질수록 오 전 의원의 당내 경선 지형이 유리하게 전개되는 함수관계에 있다.
경선 규정이 당원(50%) 투표 외에 일반국민(30%) 투표와 여론조사(20%)를 반영토록 돼 있어, 절반에 이르는 '당 밖 여론'이 우호적으로 돌아서면 선발주자들의 조직력을 상쇄할 틈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선 8~9일로 예정된 초선의원 워크숍이 중요한 분수령이다. 이들이 집단적 결의를 통해 '오세훈 띄우기'에 발 벗고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오 전 의원이 최종적인 입장 발표를 내주 초로 명시한 것은 초선의원 워크숍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지도부의 입장 변화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일단 '오세훈 카드'가 처음 거론됐을 때 지극히 부정적이던 지도부가 "경선은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누그러진 태도로 바뀌어 왔다.
소장파 의원들은 이에 한 발 나아가 박근혜 대표 등 당 지도부와 이명박 서울시장 쪽에서 오 전 의원에게 쏟아지는 비토 세력의 노골적인 반대론을 물밑에서 제어해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패배 감수한다면? "정계복귀 수순 밟기"**
'경선 경쟁력'에 대한 이 같은 관측 속에 일각에선 오 전 의원이 패배 위험을 무릅쓰고 경선에 나선다면 서울시장 자체가 아닌 '다른 곳'에 뜻을 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6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뒤 재출마를 포기했던 오 전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를 계기로 정치권에 복귀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풀이다.
서울지역 한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으로서는 오 전 의원의 출마로 시들해진 서울시장 경선에 불을 붙이고, 오 전 의원으로서는 당을 위해 희생을 무릅쓴 '애당동지'로 거듭날 수 있는 '윈윈'의 기회 아니냐"며 "오 전 의원도 쉴 만큼 쉬었으니 돌아올 궁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지금 분위기로는 오 전 의원이 패배를 무릅쓰고 선거판에 뛰어들어도 건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오 전 의원 입장에서는 지더라도 '아름다운 패배' 혹은 '당을 위한 헌신'이란 명분을 남길 수 있어야 하는데 선거판이 오 전 의원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전망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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