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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영훈 위원장, '뻥파업' 관행부터 버려라"

[기고] 새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바란다

1월 29일 상당수 언론은 김영훈 6기 민주노총 위원장 선출에 대하여 '최연소 민주노총 위원장 선출'을 제목으로 뽑았다. 오보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38세의 나이에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김영훈 위원장은 42세이다.

또 상당수는 '온건파인 국민파의 지지를 받은'으로 표현했다. 국민파가 상대적으로 온건한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나름이겠으나 김영훈은 오히려 범국민파로 분류되는 일부 의견그룹이 '공개적인 반대'를 했었다.

세대교체라는 표현도 부분적으로는 맞고 부분적으로는 틀렸다. 지금까지의 민주노총 지도부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이끌었던 세대들이 주도해왔다. 연배로는 50세 전후의 인사들이다. 김영훈 위원장은 94년에 철도청에 입사하여 노동운동을 시작했으니 경력으로도 이들 세대의 한참 후배다. 나이로도 띠동갑 차이가 나니 일면 맞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교체'라고 볼 수는 없다.

민주노총의 조직구조상, 1세대라고 칭할 수 있는 87년 세대는 여전히 주요 산별연맹이나 상급단체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의 영향력도 절대적이다. 따라서 인적 교체는 당장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처음으로 1세대 이후의 세대가 위원장이 되었으니 새로운 세대의 진출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김영훈 호의 민주노총은 1.5세대쯤이라고 할 것이다. 어쨌든 다수 언론의 보도태도는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무성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치권의 반응이 이채롭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공식적인 언급이 확인되지 않았고 오히려 민주당이 반응을 내놓았다. 지난달 29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확대간부회의에서 "선거무산을 우려했는데 다행이다. 김영훈 위원장 선출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도 축하의 의미로 난을 보냈다고 한다.

무효표 10%의 의미는?

<한겨레>는 사설에서 새 지도부에 바라는 것들 중 하나로 '정파구도의 변화'를 촉구했다. 애초 과반득표 실패로 선거무산까지 점쳐진 선거에서 52%대 38%는 액면가로는 압승이라 할만하다. 혹자는 정파조직들의 대의원 장악 구조상 당연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정파구도가 고착된 것인지 아니면 균열이 생긴 것인지를 살펴볼 일이다. 민주노총 대의원 구성은 아무리 정파의 압도적 영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대의원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모든 선거운동 진영은 이들 부동층을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기존의 정파 구도만으로 보면 김영훈이 당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1차에서 52%의 득표로 당선된 것을 놓고 많은 이들이 정파와 관계없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말할 정도다."ⓒ프레시안(여정민)

현장파는 일찌감치 허영구 후보를 낙점했고 선거중반에 중앙파의 일부는 허영구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했으며 앞서 말한바와 같이 국민파 일부는 김영훈 후보 반대를 천명했다. 일부 정파는 비공식적으로 무효표 조직을 호소했다. 기존의 정파 구도만으로 보면 김영훈이 당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1차에서 52%의 득표로 당선된 것을 놓고 많은 이들이 정파와 관계없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말할 정도다.

투표성향 모두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필자가 보기에 오히려 이번선거는 '전통적인 정파구도'에 일정한 균열이 난 것으로 본다. 특히 유력 의견그룹의 지도부임이 다 알려진 부위원장 후보에게는 56%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이고 김영훈 후보조에게는 52%라는 일종의 견제를 한 것 역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중앙파의 배신'이라고 주장하지만 과연 모든 대의원을 그렇게 정파적으로 줄 세우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고 유효한 것이지 되짚어 볼일이다.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10%에 달하는 '무효표'가 시사하는 바도 크다. '선거무산'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무효표 행사 주장에 상당한 대의원들이 호응했다는 것은 이번 선거에 대한 강한 비판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예측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바람대로 선거가 무산되었다면 민주노총은 산별대표자들이 주축이 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계로 운영되고 '노조법 개악저지'등 당면투쟁을 명분으로 비대위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고 산별연맹대표자들의 영향력이 강해졌을 것이다.

촛불이 나설 때 '움찔'했던 민주노총, 1.5라도 되자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확대로 표현되는 87년 체제는 정치적으로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치적으로는 종언을 고했고 1997년 외환위기로 경제침체가 장기화되고 2009년 세계경제위기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도 파탄에 직면했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 보수 세력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은 후퇴하거나 정체했다.

시민사회가 촛불로 진출할 때 민주노총은 움찔거릴 뿐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대공장 노조들은 자기들의 임금인상에는 주저 없이 파업을 결의하지만 정치사회적 문제는 외면했다.

다중의 쌍방향 소통이 일반화된 웹 2.0 시대에 민주노총은 단선적인 의결과 일방향의 지시인 1.0의 방식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87년 이후 세대'인 민주노총 지도부의 출범은 환영할 일이다. 민주노조운동 1.5가 될 6기 민주노총이 단번에 1.0에서 2.0으로 업그레이드하자는 과욕을 버리고 오히려 1.0 혹은 그 이하의 버전을 1.5로 업그레이드시켜 2.0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닦았으면 좋겠다.

흉내 내기 수준의 혁신은 버려라

민주노총 1.5의 김영훈호는 무기력과 관성에 대한 결별을 선언했다. 어떤 무기력과 관성일까?

단적인 예가 선거가 있던 대의원대회에서 벌어진 '성폭력 문제' 처리였다. 임성규 집행부는 민주노총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한 이 문제를, 대의원대회 공식결정과 위원장 스스로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왔다. 그리고 심지어 성원미달이 뻔히 예상되는 임원선거 다음 안건으로 돌리려 시도했다. 이는 '잡음 없는 통합적 지도부'를 자임해온 지난 보궐집행부의 안이함의 반영이다.

하필 또 그날이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 집행부의 일에 대한 우선순위 인식이 부족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도덕성 회복이 가장 첫손가락에 꼽을 과제라면 이는 정면 돌파해야 한다. 그러나 '성폭력 보고서' 채택 안건의 순서를 선거 뒤로 미뤄 은근슬쩍 넘어가려 한 이 같은 '실리적인 접근'이 혹 선거 과정과 맥이 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 볼일이다.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허영구 후보를 무시한 채 '통합지도부'를 위해 불출마선언을 한 임성규 전위원장을 다시 추대한 그 사건 말이다.

어쨌든 차기 대의원대회 1호 안건으로 채택하고 모든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하기로 하고 당선자들이 이를 재확인하였으니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도덕성과 헌신성은 마냥 강조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민주노총, 민주노조운동이 우리 사회역사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고 그 조직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때, 그리고 설사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을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자기정화능력이 조직적 기풍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가능해 진다.

따라서 운동문화의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대 모든 지도부가 '뻥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어느 지도부도 '뻥파업'에 자유롭지 못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15년 동안 1년에 9.3회의 총파업을 '결의'하고 연평균 13.5회의 총파업을 '선언'했다고 한다. 끝이 뻔히 보이는데도 선언하고 그 책임은 몇몇 대공장노조들에게 돌린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이러한 관행이 악순환이 되어 관성으로 자리잡고 민주노총은 무기력하게 되어버렸다. 혁신이란 가죽을 벗기는 아픔을 동반한다. 새 집행부가 때밀이 수준의 흉내 내기 혁신일랑 잊어버리고 새로운 세대답게 참신한 발상으로 정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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