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28일 저녁 서울 강서구 KBS88체육관에서 제49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6기 임원 선거를 치렀다.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으로 중도 하차한 이석행 집행부에 이은 임기 3년의 정식 집행부를 맡은 김영훈 당선자는 "침몰하는 민주노총을 전진하는 핵잠수함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3년이라는 새 집행부의 임기는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와 똑같이 겹쳐 있다. 김 당선자는 "이명박 대통령보다 단 하루라도 더 오래 위원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파 계열의 김영훈 후보 52% 찬성으로 당선
투표 결과, 전체 대의원 951명 가운데 723명이 투표에 참여해 김영훈-강승철 조가 376표를 얻었다. 찬성율은 52%로 한 번의 투표로 당선자가 가려진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민주노총을 책임질 새 집행부에 범 국민파 계열로 분류되는 김영훈(42) 전 철도노조 위원장이 당선됐다. 역대 최연소 위원장이다. ⓒ프레시안 |
강한 민주노총을 내세우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 철회'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호 2번의 허영구-이정행 조는 275표를 얻어 38.0%의 찬성율에 그쳤다. 무효표는 10%였다.
두 후보가 각각 일명 국민파와 현장파의 지지를 얻고 나왔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기존의 '정파 선거 구도'가 다소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범 국민파 가운데서도 '현장연대'라는 조직은 국민파 성향의 후보를 찍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고 심지어 김영훈 당선자와 함께 러닝메이트로 나온 강승철 사무총장 당선자를 자기 조직에서 제명했다.
또 좌파 진영도 온전히 허영구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현장파보다 더 그 세가 큰 중앙파 조차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때문에 선거 전 민주노총의 많은 관계자들은 "정말 이번 선거는 그 결과를 쉽게 짐작하지 못하겠다"고 고개를 저었었다.
학생운동 출신 40대 위원장 탄생 "국민의 지지 받는 민주노총으로"
새 위원장이 된 김영훈 당선자는 1968년 생으로 2004년 철도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학생운동 경력을 가진 김 당선자는 철도공사에 기관사로 입사해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철도노조 직선제' 등 철도노조 민주화 과정을 몸으로 경험했다는 그는 철도노조 위원장이던 지난 2006년, 철도 파업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김영훈 당선자는 비교적 온건한 성향으로 분류되는 범 국민파 진영의 지지를 업고 나왔다. 김 당선자는 이날 정견발표에서도 "국민의 지지를 받는 민주노총"을 강조했다.
김 당선자는 "촛불소녀에게 우리 민주노총은 거대한 보수 집단"이라며 "권위는 떨어지는데 발걸음은 무겁고, 죽도록 투쟁했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현실을 바꾸고 타파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상대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는 것으로 분류되나, 현재 민주노총이 마주하고 있는 조건이 조건인지라 김 당선자 역시 투쟁을 강조했다. 김 당선자는 "이명박 정권은 이성을 잃은 파쇼"라며 "나의 당선은 무기력과의 결별이며 이명박에 대한 민주노총의 선전포고"라고 강조했다.
'MB 3년' 대정부 투쟁 외에 내부 단결도 과제
민주노총의 새 집행부는 '반 노조 정책' 기조를 가지고 온갖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응과 함께 점점 왜소화되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두 가지 과제를 함께 갖게 됐다.
지난해 말 통과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과 관련해 전 집행부가 공언한 '4월 총파업'에 대해서 김 당선자는 "중앙위원회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노조법 투쟁은 불가피하다. 또 노조 전임자의 유급 업무 범위를 정하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참여 여부 등 노조법 시행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오는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도 앞두고 있다. 김 당선자는 "분명한 것은 현장 조합원은 분당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6월 전에 진보정당이 통합을 하든 선거 연합을 하든 다시 만날 불씨를 살려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새 집행부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다소 틀어진 산별대표자들과의 관계 복원이라는 숙제도 풀어야 한다. 후보 등록 전에 산별 대표자들이 여러 차례 논의를 통해 '통합 지도부'로 민 인물은 임성규 전 위원장이었다.
이에 임 전 위원장은 자신의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면서까지 후보 등록을 했으나, 김영훈 당선자의 후보 등록으로 "이유야 어찌됐든, 지지도야 어찌됐든 3파전이라는 조건 속에 한 조의 후보라는 것은 결코 '진정한 통합'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며 후보직과 위원장직을 모두 사퇴했다.
임 전 위원장에 이어 같은 집행부의 구성원으로 이번 선거에 재출마했던 김경자, 반명자 전 부위원장이 후보를 사퇴했고, 손영태 전 공무원노조 위원장과 홍광표 전 금속연맹 사무처장도 비슷한 이유로 사퇴했다.
이 때문에 일부 산별 대표자들은 김영훈 당선자에 대한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나온 무려 10%의 기권 및 무효표도 이런 심리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총 8명이 나선 부위원장 선거에서 무려 4명이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도 마찬가지다.
김영훈 당선자도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문제를 치유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본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가 이런 위기를 넘어 어떻게 산별 대표자들의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낼지, 그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3년 동안 민주노총의 영향력을 얼마만큼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30대 정승호의 '민주노총 임원 도전'은 실패…부위원장 4명만 선출 한편, "작은 파도가 되고 싶다"던 33세 정승호 씨의 '민주노총 임원'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부위원장 전체 후보자들 가운데 가장 낮은 250표밖에 받지 못했다. 34.6%의 찬성율로 과반을 넘지 못했다.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인 부산일반노조 조합원으로 특별한 직책도 없는 그는 역대 민주노총 임원 선거 후보자 가운데 최연소 도전자다. 민주노총이 출범하던 지난 1995년, 그는 고등학생이었다. 그가 민주노총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었다.
그는 출마에 앞서 "민주노총 위원장은 '무슨 정파 소속이거나 혹은 그와 친한 대의원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로 당선이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파의 추대를 받지 않은 후보는 당선되기 어려운 구조에 작은 파도라도 치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정견 발표 시간에도 그는 "자기 사업장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비정규직 철폐'를 얘기하지는 말자"고 민주노총의 관성을 지적했다. "노동운동의 관료"들이 존재하는 민주노총의 임원이 되어 그 관성을 바꾸겠다던 그의 '도전'은 일단 좌절한 셈이다. 김영훈 당선자와 함께 할 부위원장으로는 정희성 전 광전지역본부장, 정의헌 전 위원장 직무대행, 정혜경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노우정 서비스연맹 조직부장이 당선됐다. 회계감사로는 조준성, 최동식, 현정희 씨가 선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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