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3년을 민주노총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김영훈 위원장이 맡았다. 지난해 5월까지도 열차를 타는 철도 기관사로 "KTX만 빼고 다 몰았다"는 그를 29일 만났다. 컨테이너 열차와 무궁화, 통일호 등 '서민적인 열차'를 주도 운전하면서 동해남부선과 경전선, 경부선을 타고 다녔던 그가 서울 영등포의 민주노총에서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임성규 전 위원장의 사퇴까지 불러왔던 선거 초반 그는 "정말 마음이 어지러웠다"고 했다. 그런데 "20여 일의 선거 기간 현장을 돌면서 오히려 길을 보게 됐다"는 김영훈 위원장은 "반드시 올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안팎의 위기 속에도 그는 자신이 있는 듯 보였다. 선거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김영훈 위원장은 노조법과 지방선거 등 길거리 투쟁과 내부 혁신을 통해 추락한 민주노총의 위상을 높여보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민주노총이 배드민턴 동아리냐"
▲ 새 위원장으로 당선된 김영훈 위원장. 2004년 철도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프레시안(여정민) |
김영훈 : 통합지도부는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객관적 조건이 그만큼 어려우니 통합지도부를 만들어 당면한 과제에서 승리하자는 것이 핵심 아닌가? 논의 초기에는 나도 동의했었다. 특히 제 정파들 사이의 합종연횡이 아니라, 산별 대표자들이 모였다는 것이 유의미했다. 대중조직을 움직이는 사단장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론이 이상하게 났다.
산별 대표자들의 충정에도 불구하고 불출마 선언을 한 사람의 출마는 아니었다.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이명박 정부 아래 3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추미애에게,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추-한 야합'을 비판할 수조차 없다. 민주노총의 위기가 다른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뻥파업'이야 노력했지만 안 됐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자기 입으로 한 불출마 선언을 뒤집을 명분은 없다. 허영구 후보가 이미 등록한 상태에서 진짜 통합도 아니었다. 제일 힘들었을 사람은 임성규 전 위원장이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통합지도력에 대한 고민은 불가피하다. 당선된 뒤에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부터 읽겠다'고 했다.
김영훈 : 산별 대표자들과 소통하겠다. 현장 조합원들과도 일상적으로 소통하겠다. 이미 있는 블로그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트위터도 배울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정파들에게 호소한다. 물론 정파의 해악은 분명히 존재하며 극복해야 하지만, 정파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파가 모든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은 '붕당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식민 사대주의적 인식과 다를 바 없다. 민주노총이 배드민턴 동아리도 아니고, 당연한 정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차이를 놓고 건강하게 토론하면 된다. 단, 정파들도 파당적이고 패권적, 패거리 행동을 일소하고 간부 육성과 같은 현장 조직으로 돌아가면 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야 진정한 통합 지도력이 구축된다.
"4월 총파업은 솔직히 거짓말…철도, 금속은 파업할 수 있을 것"
프레시안 : 아무래도 당장 닥친 현안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에 대한 대응이다. 지난해 개정된 법에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김영훈 : 통과된 새 노조법은 현장의 혼란을 오히려 더 부추길 것이 분명하다. '건전한 노사관계'라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문구가 법률에 있다. 위헌 요소도 다분하다. 그들은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런 점에서 날치기의 명분도 말이 안 된다. 다시 논의해야 한다.
노조법 개정 뿐 아니라 완전한 노동3권을 찾는 투쟁을 6기 집행부의 집중 사업으로 하겠다. 그런 점에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 민주노총이 참여할지 여부는 지엽적인 문제다. 물론 이런 점은 분명하다.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악법이긴 하지만 무조건 거부하고 다 필요 없다고 할 순 없다. 그 공간을 파고들어가 그를 통해 새로운 투쟁을 만들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합법주의자냐'고 하는데, 합법적 공간을 통해 조합원이 자신감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비합법, 반합법 투쟁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참여 여부는 산별 대표자 등과 논의하겠지만 원칙은 이렇다. 교섭은 투쟁이 준비됐을 때 들어가는 것이다. 우선 민주노총이 투쟁을 준비한 뒤에 들어갈 지 말지는 결정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전임 집행부에서 4월 총파업을 얘기했었다.
김영훈 : 노조법이 핵심 쟁점이던 지난해 연말에도 총파업을 못 했는데 봄이 온다고 총파업이 될까? 그 얘기를 하려면 12월에는 왜 못 했는지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한다. '결의한다'고 하지만 사실 민주노총의 결의는 과잉이다. 그런 점에서 솔직히 4월 총파업은 거짓말이다. 중앙위원회에서 다시 검토해야겠지만 80만이 모두 참여하는 총파업은 아니다.
그러나 4월에 분명히 총력 투쟁은 벌인다. 또 철도노조나 금속노조 등 준비된 곳은 최전선에서 파업을 할 것이다. 철도도 지금 상태로는 3차 파업이 불가피하다. 금속은 이미 4월 말~5월 초에 특별단체교섭을 하기로 했다. 주력 부대는 있는 셈이다.
"쌍용차, 한진중공업…정리해고 투쟁은 지역 중심으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 : 지난해 쌍용차가 77일을 싸우기도 했지만, 경제 위기를 빌미로 구조조정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 때문에 시끄럽다.
김영훈 : 제조업이든 공공부문이든 양태는 똑같다. 공공부문은 단협해지를 통해 파업을 유도하고 기획한다면, 제조업은 기획 적자를 빌미로 정리해고를 밀어붙인다. 사실 정리해고 투쟁은 명단 통보되면 끝이다. 그런 점에서 쌍용차 투쟁은 '손 따라두는 바둑'이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또 하나, 정리해고 투쟁은 지역중심이 되어야 한다. 쌍용차도 한진중공업도 산별노조이긴 하나, 보다 중요한 것이 지역이다. 한진중공업에게 금속노조의 파업은 별로 안 무섭다. 더 무서운 것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때문에 지역 경제 박살나겠다'는 지역 여론이다. 제조업 구조조정의 최종판은 해외 이전이기에 더 그렇다. 지역 주민과의 연대가 대단히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지역본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 "고통 받는 민중에게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촛불 소녀에게 민주노총은 거대한 보수집단이다." ⓒ프레시안(여정민) |
프레시안 : 밖에서는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이 위기라고 얘기한다. 위기라고 느끼나?
김영훈 :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근본적인 위기는 민주노총의 권위와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데 있다. 고통 받는 민중에게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촛불 소녀에게 민주노총은 거대한 보수집단이다. 대중조직은 관료화 돼 있고 중앙은 분파로 나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전임자 임금이 금지됐다고 위기다? 악법임은 분명하지만 그 때문에 노동운동이 죽지는 않는다. 전임자는 꿈도 못 꾸는 미조직 노동자가 훨씬 많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싸울 것인가가 고민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런 의제를 선점하지 못했다. 열심히 싸웠지만 늘 부족했다.
민주노총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을 만들고 싶다. 예를 들면, 2010년은 '진보정당 통합'을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 위기의 제일 큰 원인은 무엇일까?
김영훈 : 간부들이다. 헌신적인 간부들은 많은데 조합원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그것이 위기를 심화시켰다. 그래서 간부들의 혁신, 특히 사무총국의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투표 이틀을 앞두고 사이버 토론이 있더라. 선거 초반에 해야 선거 기간에 쟁점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하러 갔더니 1시에 하기로 한 토론회가 준비가 덜 됐다며 늦어졌다. 조합원에게 공지도 안 하고.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해결되지 않은 성폭력 사건, 첫 대의원대회에서 반드시 마무리한다"
프레시안 : 대의원대회에서도 논란이 됐지만, 성폭력 사건이 1년이 넘도록 최종 정리가 안 되고 있다. 심지어 집행부가 보고서도 만들지 못했다. 당선된 뒤에 이에 대해 '세세하게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얘기했는데?
김영훈 : 왜 보고서가 만들어지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사실 임성규 집행부에서 마무리 했어야 했다. 임성규 집행부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비대위로 출범했기 때문에 그 사건 해결이 1차 과제다. 물론 쌍용차 투쟁도 있었고, 노조법 투쟁도 있었지만 일의 경중을 몰라서 벌어진 일이다. 1년 동안 사실 무엇을 한 것인가?
제때 치료하지 못하니 피해자의 고통이 살을 파고들고 곪아 세세만년 간다. 이미 시기를 놓쳤지만, 제대로 치유하도록 하겠다. 대의원대회에서 안건이 두 번, 세 번 올라가게 만드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대의원대회 당일 날 통과시키려 하니 싸움이 나는 것이다. 그 전에 공을 들여 만들어내야 한다.
대의원대회에서 차기 대대에서 1호 안건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한 만큼 다음 대의원대회에서는 반드시 한다. 일각에서는 임원 선출이 완전히 안 되서 빨리 임시 대대를 열어야 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폭력 보고서다. 보고서가 준비되지 않으면 대의원대회 열지 않겠다.
"3년 동안, 큰 사고 치고 싶다"
▲ "선거 초반에도 고립무원에 있는 듯 마음이 참 어지러웠는데, 20일의 기간 동안 현장을 다니면서 오히려 길이 보였다."ⓒ프레시안(여정민) |
김영훈 : 반(反) MB 전선에 대한 내용 정리가 필요하다.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진보정당만 얘기하는 것인지. 내 생각에는 당선자를 얼마나 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보 진영의 자신감이 중요하다. 지자체 선거를 통해 단결의 힘을 확인하고 그 힘으로 총선을 치르고 2012년 대선 때 승부를 봐야 한다.
그 과정의 거간꾼 노릇을 할 사람은 민주노총밖에 없다. 반 MB 전선이 우경화되거나, 원칙 없는 선거 연합이 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민주노총이다.
프레시안 : 그러나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민주노동당 외의 정당들에게는 그 점이 거슬릴 수밖에 없다.
김영훈 : 배타적 지지 방침을 가지고 있다고 민주노동당 편은 아니다. 방침이 있다고 80만 조합원이 다 민주노동당을 찍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민노당이 우리에게 서운해 한다면 몰라도, 진보신당이 서운해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진보정당 통합만 하더라도, 민주노총이 당연히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갈라선 이유의 핵심이 종북주의 논란과 패권주의 아닌가. 종북주의 논란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조선일보>를 통해서 상처가 너무 커졌다. 그런 낙인은 안 된다.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다수파가 양보했어야 한다.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심상정 비대위안을 수용했어야 했다. 억울한 거 싫으면 다수파 하지 말아야 한다. 억울해하지 말고 품을 넓게 했어야 한다.
프레시안 :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영훈 : 당선된 뒤에 기쁘지 않았다면 나를 뽑아준 사람들에게 도리가 아니지만, 기쁘다기 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선거 초반에도 고립무원에 있는 듯 마음이 참 어지러웠는데, 20일의 기간 동안 현장을 다니면서 오히려 길이 보였다.
봄은 반드시 온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봄을 맞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지금 몸부림 치고 있지만, 더 큰 몸부림을 쳐야 한다. 3년의 임기 동안 민주노총만이 할 수 있는 '큰 사고'를 좀 치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사고다. 국민 여러분이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