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일본전 승리로 한국 대표팀이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파죽지세의 6연승을 거뒀다. 공수주는 물론이고 덕아웃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 한국팀의 연승 소식은 성추행, 골프 의혹 등 짜증스러운 정치 소식에 시달리는 국민들로부터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차기 총리 1순위는 '덕장 김인식 감독'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한국팀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대중의 움직임에 본능적으로 민감한 정치권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야구와 관련해 내놓는 말과 행동들이 오히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들어 눈총을 사고 있다.
***여야, '오버 논평'으로 되레 '눈총'**
일본 동경에서 벌어진 예선리그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 정치권의 논평들은 지난 14일 기대하지 않았던 미국전의 완승 이후 브레이크가 고장났다.
첫 오발탄은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이 날렸다. 이 대변인은 "한국야구의 연승은 선린을 중시해야 하는 외교무대에서 매우 우려되는 일로, 일본과 미국을 자극해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기거나 동북아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며 "외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대국만을 골라 꺾은 것이 우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지시였는지 의혹이 있으며, 이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하하"라는 웃음으로 마무리 지어진 이 논평을 진담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한나라당의 평소 주장과 맞물려 묘한 울림을 남겼다. 이 대변인의 논평이 개그라면 '썰렁개그'로 분류가 가능할 듯 했다.
체육통인 우리당 안민석 의원은 발 빠르게 '대표팀 병역혜택'을 주장하고 나섰다. 상무나 경찰청팀으로도 뛸 수 없는 김선우, 최희섭 같은 메이저리거들은 병역 면제 여부에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선수생명이 걸려 있기에 이미 야구팬들 사이에선 이런 주장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여론이 '병역면제'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 여기에 국회의원까지 나설 이유까지 있었나 싶다.
이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도 괴이했다.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은 안 의원의 주장에 대해 "4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에 대한 병역 혜택은 국민정서 및 타 종목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긍정적인 방향에서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리하자면 '신중하게 긍정적'이란 말이다. 진보정당으로 프로선수들의 잔치판에 앞장 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중정당으로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안고 있는 대표팀의 소원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의 어정쩡한 절충이었던 셈이다.
***유력 정치인들의 '선수급 오버'**
이 정도까지는 '간단한 오버' 내지는 호들갑으로 봐줄만 하다고 치자. 고위 직책을 가진 유력 정치인들의 노련한 '야구 정치'는 그야말로 선수급이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15일 확대간부회의를 미국 현지의 최희섭 선수와 전화 통화를 한 얘기로 시작했다. 별 영양가 없는 대화들이 오간 뒤 "홈런 칠 때 컨디션이 어땠냐"는 정 의장의 질문에 최 선수는 "상당히 안 좋았다"는 솔직한 답으로 분위기를 머쓱하게 했다고 한다.
굳이 따지자면 정 의장이 최희섭 선수에게 격려 전화를 하지 못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러나 왠지 지난날 황우석 교수가 '국민적 영웅'이던 시절 정 의장의 행보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도.
김한길 원내대표도 만만치 않았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의 공미(恐美)성 논평이 네티즌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은 것을 의식한 탓인지, 김 원내대표는 야구를 통한 '대미 자주성'을 논했다.
김 대표는 15일, 16일 연거푸 "미국을 격파한 우리 야구에 대해 온 국민이 자부심을 느낀다"며 " 미국에게 맞서서는 힘들다고 생각한 많은 분들에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많은 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말했다.
해석하자면 이계진 대변인을 넘어 최근 방미 중 친미성 발언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그리고 한나라당 전반의 대미노선을 은근히 비꼬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그동안 얼마나 '자주노선'에 충실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실적이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래저래 독일 월드컵이 시작되면 이런 정치인들의 극성은 또 얼마나 극에 달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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