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국제화'를 위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만든 미국 야구의 운명은 박찬호의 손끝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16일 펼쳐지는 일본과의 경기에 선발 투수로 확정된 박찬호가 호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자력으로 4강 진출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아주 간단하다. 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것이다. 이럴 경우 미국은 17일 멕시코만 제압하면 한국과 함께 4강 진출을 확정짓는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에 패하고 미국이 멕시코를 누를 경우엔 한국, 일본, 미국이 모두 2승1패의 동률이 된다. 이 때는 세 팀 간 실점을 따져 4강 진출 팀을 결정한다. 한국은 현재 3실점, 일본은 4실점이며 미국은 10실점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일본에 패하더라도 6점 이내의 실점을 허용하면 무조건 4강에 진출한다. 하지만 미국은 멕시코 전에서 실점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일본이 한국을 '아주 큰 점수차이'로 이겨주기를 기대해야 한다.
문제는 한일 전에서 두 팀이 모두 마운드 총력전을 펼 태세라 적은 점수대에서 승부가 갈릴 확률이 매우 크다는 것. 한 마디로 한일 전이 투수전의 양상을 띌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국이 4강에 오를 수 있는 경우는 사실상 한일 전에서 한국이 승리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WBC에서 마무리 투수로 나와 3세이브를 기록 중인 박찬호는 일본 전에 처음 선발 투수로 출격한다. 김인식 감독은 15일 "일본 전에 박찬호를 선발로 기용할 것이다. 지난 13일 멕시코전이 끝난 뒤 본인에게 통보했다. 박찬호가 4~5회까지만 막아주면 계투조를 투입해 일본 공격을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 팀 투수 가운데 가장 빠른 스피드의 직구를 뿌리고 있는 박찬호가 경기 초반 마운드의 안정을 가져온다면 일본에 비해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는 한국이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반대로 박찬호가 경기 초반에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하면 한국의 투수 로테이션이 꼬일 수도 있다. 한국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는 미국이 박찬호의 투구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이유다.
미국 야구계는 텍사스로 이적한 뒤 부상과 부진에 시달렸던 박찬호를 두고 FA(자유계약)로 거액의 돈만 챙기고 실력은 형편없는 선수라고 평가해 왔다. 지난 시즌 도중 샌디에이고로 이적한 박찬호는 12승을 거둬 부활의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여전히 박찬호를 한국 투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106승을 거둔 투수로 보기 보다는 그저 '먹튀(돈만 많이 받고 이적한 뒤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하는 선수)'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일본의 이치로는 1라운드에서 한국에 패한 뒤 "미국에서 고독한 싸움을 했던 한국의 메이저리거들이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큰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한국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메이저리거들에게 상징적 존재다. 박찬호는 대표팀의 국내파와 메이저리거 간의 가교 역할까지 잘 수행하며 팀 분위기를 좋게 이끌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미국 언론으로부터 끊임없이 비난의 화살을 맞아 왔던 박찬호의 투구에 미국 야구의 운명이 달렸다는 점은 한일 전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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