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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가타카 한국'을 꿈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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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가타카 한국'을 꿈꾸나

[기자의 눈] 중산층 중심 저출산 정책의 함의는?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가끔 참, 남자다, 싶을 때가 많다. 한국의 가부장적 전통이 가장 많이 남이 있는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과 69세의 나이라는 개인적 한계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다.

오늘(25일) '제1차 저출산 대응 전략회의'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는 참 여자와 아이들의 문제에는 관심 없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애를 낳으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나라에서 (육아를) 맡아서 해야 한다는 게 여성계의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면서 "프랑스가, 독일이, 다른 선진국이 어떻게 했다고는 하지만 사회적·문화적 환경과 여러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대로 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육아에 대한 국가의 책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적이고 동양적 사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한다"며 새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또 이 대통령은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인구 과잉"이라면서 "대한민국은 인구가 줄지만 지구 전체를 보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지구적 과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과거 저소득층 위주의 출산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 중산층의 출산의지를 제고하기 위해 이들의 수요와 필요에 적합한 정책 노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얼마 전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도 저소득층 위주의 출산 지원 정책을 중산층 위주로 방향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출산율이 1.1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현재 4830만 명인 인구는 40년 뒤인 2050년 4410만 명으로 지금보다 410만 명 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저출산 문제는 생산인구가 줄어드는 등 미래 국가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적 과제'를 먼저 생각하자는 범상치 않은 대통령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방향을 튼 이명박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전략이 가진 함의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한국적 보육 정책'과 '국공립 보육예산 55% 삭감'의 상관관계는?

이 대통령은 프랑스, 독일 등 공공보육 시스템을 통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선진국 모델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 "애를 낳으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나라에서 육아를 맡아서 해야 한다는 여성계의 일반적인 생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정부는 이날 보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한 살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한국적이면서 동양적인 사고'를 강조했다. 구체적인 의미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가족이나 친족 공동체 안에서의 육아를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아동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국가 지원을 대폭 늘리지 않는 한 대통령의 얘기는 가족 안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 밖에 안 된다. 지금도 대부분의 직장 여성들이 시부모, 친정부모 등 친인척 관계를 통해 육아를 해결한다.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이 대통령의 생각은 이미 정책에 반영돼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2006년 '새로마지 플랜'을 통해 2012년까지 국·공립보육시설을 전체 보육시설 대비 30%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국·공립보육시설분야 예산은 계속 줄고 있다. 2009년 211억 원에 달했던 예산은 2010년 94억 원이 편성됐다. 국·공립보육시설 설립비용은 국가 50%, 시 25%, 자치구 25% 비율로 충당하게 돼 있다. 국가 예산이 대폭 줄어들면서 가뜩이나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가 보육시설을 늘리기는 어렵게 됐다. 실제로 복지부는 보육시설의 확충 보다는 노후화된 기존 보육시설의 개·보수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2009년 현재 국·공립보육시설은 전체 3만 3000여개 중 5.5%인 1826개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에도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 출범식 축사에서 "옛말에 '아이는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는데, 저 자신도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아이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다 자기 것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육아에 대한 책임을 '개인', 혹은 '개별 가정'의 문제로 치부하는 인식을 드러낸 발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중산층은 누구인가?

이명박 정부는 또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저출산 대책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겠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가정에 우선권을 주고 있는 국·공립보육시설의 예산을 줄인 것도 이 같은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명박 정부가 상정하고 있는 '중산층'이 누구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소득세 인하를 추진하면서 과표 8800만 원 이하를 '중산서민층'으로 분류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과표 8800만 원은 세전 연봉이 1억2000만 원 수준으로 이 정도 연봉을 받는 이들은 7만582명(전체 근로소득자의 0.5%)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가 이날 복수국적 허용, 이민정책 개방 등 해외 우수 인력 유인 방안을 저출산 대책의 중요한 한 축으로 발표한 것도 이런 의구심을 부추긴다. 법무부가 이미 입법예고한 복수국적 허용안을 보면 한국인과 결혼해 이민 온 외국인, 영구 귀국한 65세 이상의 동포, 해외입양인 등 경직된 기존 국적제도의 피해자들도 수혜를 받게 되지만 사실상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층은 출생시 복수국적을 갖게 된 이들이다. 부모의 유학, 해외취업, 원정출산 등으로 외국국적을 갖게 된 자녀들이 만 22세 이전에 외국국적을 '국내'에서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 평생 양쪽 국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복수국적 허용을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가장 먼저 제기했던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는 저출산 대책에 대해 "돈을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소득층 뿐 아니라 중산층 다수가 '돈'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 한다. 조기 교육 열풍에 휩쓸리지 않는다 해도 믿고 맡길 국공립 내지는 직장 보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개별적으로 보육 도우미를 구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한 달에 1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은 상당수 중산층 맞벌이 부부에게 절실한 정책이다.

중산층 위주 정책=저출산 대책 예산 삭감=돈 없으면 애 낳지 말라?

▲ 유전적 우열에 따라 태어날 때 부터 운명이 결정돼 있는 미래사회를 그린 영화 '가타카'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중산층으로 저출산 대책의 중심을 이동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저출산 대책 예산을 삭감하려는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이 대통령이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는 '유럽식 모델'이 "한국에서 그대로 될 수만은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미 한국이 가족정책(가족수당, 육아휴직급여, 보육서비스, 자녀 교육지원 등)으로 쓰는 재정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3%로 OECD 30개국 중 꼴찌다. OECD 평균(2.1%)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번째로 GDP 대비 가족정책 재정지출비율이 적은 미국(0.6%)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 밖에 안된다.

정부가 국공립 보육시설 등 저출산 대책 예산을 대폭 줄이면 결국 개별 가정에서 보육을 해결할 형편이 안 되는 여성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전업 주부가 되거나 ('지구적 과제'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애를 낳지 않거나. 이들이 애를 낳지 않아도 '해외 우수 인력'이 그 자리를 채워주면 되니까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중산층 위주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득 10여년 전에 봤던 '가타카'라는 SF 영화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유전인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미래사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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