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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분노가 쌓여가는 농심이 두렵지 않은가?"

[기자의 눈] 대통령과 경찰청장의 대국민 사과를 듣고

지난달 15일 쌀 개방을 막아보겠다며 새벽밥 말아먹고 집을 나선 두 농민, 전용철(44) 홍덕표(68) 씨가 시위 현장에서 깊은 부상을 입었고, 지난달 24일과 이번달 18일에 각각 숨졌다. 농민단체들은 두 농민의 사인(死因)으로 경찰의 과잉진압을 지목했다. 실제로 그날 시위에서 경찰의 과잉진압 탓에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먼저 전용철 씨가 사망하자 "경찰이 폭력으로 농민을 죽였다"는 의혹이 삽시간에 시민사회에 퍼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물론 전국민중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 많은 농민단체, 민중단체, 인권단체들이 곧바로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두 농민의 사인 규명작업에 조직적으로 나서는 한편 정부에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한 시위에서 두 명의 농민이 죽었지만…**

하지만 범대위의 주장은 곧바로 수용되지 않았다. 경찰은 두 농민의 사인이 불분명하다며 즉각적인 입장표명을 거부했다. 그 대신 경찰은 고 전용철 씨의 주검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를 발표하며 "집 앞에서 뒤로 넘어져 생긴 부상으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부검 결과를 '왜곡'한 것이었음이 곧 밝혀졌다.

경찰이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범대위는 경찰청 앞에서 연일 기자회견을 열어 허준영 경찰청장 사퇴를 요구하며 '경찰 문책론'의 공론화에 매진했다. 일부 농민단체 대표들은 청와대 앞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밤샘 노숙농성을 진행했다. 그러는 동안 경찰청 앞 기자회견이 '미신고된 집회'라는 이유로 봉쇄되는 일도 빚어졌다.

끝까지 요지부동일 것 같던 경찰과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또 한 명의 농민 홍덕표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였다. 홍 씨는 바로 고 전용철 씨가 부상당한 지난달 15일 농민대회에서 입은 상처로 하반신이 마비된 채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정부는 이해찬 국무총리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고, 허준영 청장도 유감의 뜻을 표했다. 고 홍덕표 씨가 생전에 "경찰 방패에 머리를 맞았다"는 말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이마저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권위 진상조사…"두 농민을 죽인 건 경찰의 과잉진압"**

그러나 정부와 경찰당국의 유감 표명 정도로는 성난 농심을 달랠 수 없었다. 범대위와 농민들은 과잉진압의 책임을 물어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퇴와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리고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진상조사'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경찰 폭력에 의해 농민이 사망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별도의 조사팀을 꾸려 지난달 15일 농민집회 상황에서부터 두 농민이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면밀히 조사했다. 농민단체와 경찰 당국으로부터 넘겨받은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경찰 기동대를 따로 불러 사건현장인 여의도 일대에서 당일의 집회진압 모습을 재연해보는 성실함도 보였다. 조사는 2주일 남짓 걸렸다.

인권위는 지난 26일 전원위원회 회의를 5시간이나 계속한 끝에 "두 농민의 사인은 경찰의 진압에 의한 것"이라는 요지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시위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규정위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해 시위진압 지휘 책임자들에게 징계 및 경고 처분을 내릴 것을 허준영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인권위의 조사 결과는 물론 농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주장된 내용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것이었다. 더구나 인권위는 경찰청장의 사퇴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하기가 적절치 않다"는 식으로 피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하지만 독립된 국가기관으로서의 무게를 지닌 인권위의 조사 결과 발표는 농민단체들의 주장을 재확인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경찰청장은 사퇴 거부하고, 대통령은 "문책인사 권한 없다"고 하고**

인권위가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날인 27일 허준영 경찰청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허 청장의 사퇴와 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자 경찰청도 청와대도 더이상 모르쇠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 청장과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들이다.

허 청장은 자신의 거취에 대한 질문에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더욱 노력하는 것이 소임"이라며 '사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19일 "진상조사 결과 불법행위가 발견될 경우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호언했던 노 대통령도 "문책인사를 할 권한이 없다"는 말로 허 청장을 경질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농민의 분노를 어떻게 달랠까?**

한 시위에서 두 명의 시민이 죽었다는 이유로 경찰청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애시당초 지나치다고 정부 당국자들은 생각하는 것일까? 어쨌든 경찰과 노 대통령은 분노한 농심을 또 다시 외면했다. 농민들이 과연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허 청장의 약속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지난달 15일 농민대회를 마치고 귀향한 농민들은 쌀시장 개방에 따른 서러운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무던히도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고 한다. 농민들은 두 농민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경찰청장과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를 보고 다시 한번 막걸리 잔을 들어 스스로를, 아니 서로를 위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농민들의 마음 속에 켜켜이 쌓이고 다져지는 분노를 허 청장과 노 대통령은 어떻게 새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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