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전용철 씨와 고 홍덕표 씨 사인(死因) 규명은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6일 그동안 진행한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두 농민의 사인에 대해 경찰의 직접적 책임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한 채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일어났다"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대신했다.
또한 이번 사망사건에 대해 일고 있는 허준영 경찰청장 사퇴문제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며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두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지난달 15일 전국농민대회 당시에 경찰의 과잉진압 존재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며, 경찰청장에게 지휘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 등 경고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 홍덕표·전용철 씨 사인 발표**
인권위는 이날 오후 고 전용철·홍덕표 씨 사망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9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이 두 농민 사망을 야기한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밝혀달라며 진정을 한 끝에 이뤄졌다.
인권위는 먼저 고 전용철 씨 사망과 관련해 "집회 당일(지난달 15일) 오후 6시 17분경 야의도 문화마당내 국기게양대 부근에서 떠밀려 넘어지면서 후두정부(머리 뒤쪽 중앙)에 강한 충격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어 고 홍덕표 씨 사망에 대해서는 "집회 당일 오후 5시 경 여의도 포스코 공사장 부근 도로에서 진입해온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중 경찰의 방패에 뒷목 등을 가격당하여 경추(목뼈) 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요컨대 인권위는 고 전용철 씨의 사망에 대해서는 경찰의 직접적인 가격행위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고 홍덕표 씨 사망에 대해서만 경찰의 가격행위를 인정했다.
***"진상규명 미흡한 부분, 검찰이 조사해야"**
하지만 인권위의 이같은 조사결과는 기존 경찰청등 정부의 발표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9일 홍덕표 씨 사망에 대해서는 "경찰 방패의 가격이 있었다"는 취지로 직접적 가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고 전용철 씨 사망에 대해서는 "인권위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경찰의 직접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권위는 이처럼 미흡한 진상조사 결과를 의식한 듯, "두 농민의 사망이 경찰 기동대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나 행위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우므로 검찰총장에게 수사 의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가 두 농민 사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함으로써 두 농민의 사인은 검찰 수사가 진행된 이후에나 밝혀질 전망이다.
***"경찰청장 거취 문제는 인권위 논의 대상 아니다"**
한편 인권위는 이번 두 농민 사망사건에 대해 비등하게 일고 있는 허준영 경찰청장 사퇴 여부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피했다.
심상돈 인권위 인권침해조사1국 국장은 "허준영 청장 사퇴와 관련된 문제는 정치적인 책임과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에 인권위의 논의대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진상조사 과정과 전원위원회를 거치는 동안 허 청장 거취문제와 관련해 심도있는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라는 심 국장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인권위가 경찰청장 파면 혹은 사퇴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거론하는데 따른 부담이 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과잉진압 존재는 사실"…경찰청장에 지휘계통 책임자 경고 권고**
한편 인권위는 당시 경찰들의 진압과정에서 과잉행위가 있었던 대목은 받아들였다.
인권위에 따르면, 경찰은 진압봉, 방패 등을 사용함에 있어 사용규정을 갖고 있지만, 지난달 15일 농민대회 당시에는 사용규정을 위반하면서 집회 대오를 해산했다.
예컨대 경찰 방패의 날을 세우거나 위에서 내려찍는 행위는 '경찰장비 사용규칙'에서 금지돼 있고, 방패로 밀 때 역시 몸통부위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당일 시위 진압 과정에서는 이같은 '규정'은 외면됐다.
또한 진압봉을 사용할 때도 하퇴부(다리 허벅지 부분)를 위주로 제압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같은 규정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인권위 자체조사 결과다.
이밖에도 집회 해산 검거시 안전수칙 등에는 해산대상 집회라도 주최자에게 종결선언을 요청하고 3회 이상 해산 명령을 내리도록 규정돼 있지만, 당일 집회 해산 과정에서는 이같은 절차가 준수되지 않았던 점도 함께 나타났다.
인권위는 이같은 조사결과에 따라 허준영 경찰청장에게 당일 집회 진압과정에서 지휘 계통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차장을 경고하고, 현장 지휘책임자였던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장을 징계할 것을 권고했다.
이밖에 기동단의 각 격대장, 중대장 등 지휘책임자 및 실제 가혹행위를 행한 부대원들에 대해서는 경찰 자체 조사 후 불법행위 정도에 따라 징계할 것을 권고했다.
***"'허준영 경찰청장 제외한' 문책 권고라니..."**
'고 전용철`홍덕표 농민 살해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이에 바로 서울대병원 빈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권위가 두 농민이 경찰 진압에 의해 사망했다고 결론낸 것은 사필귀정으로 적극 환영한다"면서도 "그러나 문책수준이 허준영 경찰청장이 아닌 서울경찰청장, 기동단장, 경비부장에 그친 것은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가 인권위 발표에 27일 어떤 답을 할지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공개 사과 ▲ 허준영 경찰청장 즉각 파면 ▲ 경찰기동대 해체 및 공격적 시위 진압 금지 명시 ▲ 농업의 근본적 회생 위한 농민, 정부 국회 3자 협의 기구 수립이라는 4가지 요구사항을 말했다.
이들은 "만약 이 요구사항이 수용 되지 않는다면 30일 오후 4시에 계획된 제 4차 범국민대회등 투쟁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며 "내일 정부 반응에 따른 구체적인 대응 계획은 오후 8시에 계획된 범대위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논의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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