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지방의 한 검사는 "바빠서 인사청문회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친구로부터 '장자연 사건에서나 듣던 스폰서를 검사도 키우냐'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천 후보자가 낙마 소식을 접한 15일 검찰에 '안타깝다'와 '창피하다'는 분위기가 교차하고 있다. 다만 법조계는 검찰이 더 흔들리기 전에 신속하게 내려진 결정이어서 다행이며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로 위안을 삼는 분위기.
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본 한 변호사는 "올해 초 아파트 사고 고급차 리스한 걸 봐서는 서울중앙지검장을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검사는 사회의 '어퍼 클래스'에 속하는데, 주변의 씀씀이가 큰 변호사 집단과 어울리다보니 항상 재물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고, 또 주변에 돈 있는 사람들도 많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하게 강직하거나 큰 꿈을 키우지 않는 이상, 부장검사를 거치고 나면 자식들이 크고 돈 쓸 일이 많아지며 개업을 마음먹는 순간 집도 사고 외제차도 사는 등 그동안 참아왔던 살림을 키운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도 그런 맥락에서 천 후보자를 비판하며 "(검찰총장보다는) 그냥 변호사를 하라"고 쏘아붙였다. 그만큼 법조계에서는 천 후보자에 대해 검찰총장 준비가 전혀 안 된 '부족한 인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또 다른 검사는 인사청문회에서 천 후보자가 박모 씨와의 골프 여행 의혹에 대해 "같이 간 기억은 없다. 휴가철이어서 비행기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다"는 등의 답변을 듣고 "저런 피의자를 만나면 참 답답하다"며 "검찰총장이 피의자처럼 국회의원들에게 '신문' 당하는 것 같아 검사로서 자괴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민주당에는 친분이 있는 전현직 검사들로부터 "창피하다", "생각보다 심한 것 같다"는 하소연이 많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민주당은 '1700명의 성실한 검사들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검찰 조직의 생채기를 파고 들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전세 보증금이 부담돼 서울 발령을 꺼리는 일선 검사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공격했다.
천 후보자의 발탁이 '정치적 성격'이라는 의구심도 검찰 내부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 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세 기수를 건너 뛴 파격인사라는 점에서 분위기 일신을 기대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천 후보자의 '공안' 경력이 부각되며 정권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의심을 산 것이 사실이다.
특히 생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검찰 조직에 기수 파괴 인사 자체가 부담이었고, '정치 검찰'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 검찰 내부 분위기를 별로 살피지 않은 인사였다는 불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후보자의 평소 인간성과 친화력 등이 높이 평가됐으나,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이에 대한 기대도 허물어졌다는 것.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외부 인사가 발탁된 국세청과 달리 천 후보자 자신도 25년을 검사로 지내온 검찰 가족이기 때문에 자기로 인해 검찰 조직 자체가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당초 천 후보자의 내정에 따라 검사장급의 대거 사퇴로 인해 대대적 인사가 불가피해 술렁이던 검찰은 일단 "다음 후보자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이미 사표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천 후보자의 선배인 권재진 전 서울고검장, 문성우 전 대검 차장 등이 다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외부인사 수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난 2002년 '이용호 게이트' 사건으로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이 퇴임하자 고검장 출신인 이명재 변호사를 총장으로 전격 기용한 선례가 있다. 이 경우 정진규, 고영주, 박상길, 박만 등 검찰 출신의 변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 조직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차기 후보자를 인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수이지만, 섣부른 인사검증으로 천 후보자와 같은 사태가 재발되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어 인사검증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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