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등록금 투쟁'이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입력된 검색어 1위가 되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이 문제에 그 만큼 관심이 큰 것이다. 각 대학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단체들은 등록금 인상을 막기 위해 학생총회 개최, 본관 점거, 등록금 현물납부, 단식, 삭발, 농성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정치권, 3당3색의 해법
물론 각 대학 본부의 대응도 이에 못지 않다. 학기 초에 학부모들에게 등록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해설하는 편지를 발송(연세대, 건국대)하거나 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에 대해 예년보다 훨씬 강도 높은 징계위협(항공대, 연세대)을 하는 등 대학 측도 회유책과 강경책을 골고루 사용한다.
이런 극단적인 대립은 사실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다. 일부 사립대에서 등록금이 연 1000만 원에 달하는 학과가 나왔다. 평균적으로도 인문계열의 경우 연 600만 원, 이공계의 경우 연 700만 원을 넘어섰다. 서민 가계에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런데 각 대학이 제시한 올해의 등록금 인상률은 예년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다. 학생들이 선선히 물러날 리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정당들이 대학등록금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3월 3일 민주노동당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최순영 의원)'를 구성하고 학생들과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도 '先 무상교육 제도(등록금 후불제. 일단 대학에 등록을 하고, 학점을 이수한 뒤에 등록금을 낼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주장하고 나섰다. 한나라당도 이주호 의원을 팀장으로 하는 '교육비 부담 반으로 줄이기 팀'을 꾸렸다.
기여입학제는 실효성 없고 양극화만 심화시킬 뿐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한나라당의 공약이다. 대학등록금을 절반으로 내리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들고 나왔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파트 반값'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제시한 등록금 반값 공약의 속 내용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한나라당의 정책을 하나씩 뜯어보자. 우선 대학 측에 각종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해 대학의 재정부담을 줄이겠다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나라당의 정책답지 않다. 세액을 공제하면 부족한 세수를 조달하기 위해 증세를 해야하는데 기존에 한나라당이 주장해온 정책과 모순된다. 또 군인 사병 월급을 예치해 대학등록금으로 활용하겠다는 내용도 있는데, 황당하기만할 뿐 진지하게 다룰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
한나라당의 등록금 반값 공약의 핵심은 '기여입학제의 도입'이다. 일부 유명 사립대학이 기여입학제의 도입을 강력하게 희망해 왔지만 워낙 민감한 문제라서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았는데, 드디어 이슈가 된 것이다.
우선 기여입학제를 도입하여 대학등록금을 인하하는 게 가능한지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불가능하다. 발상부터 잘못되었다.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하려는 의사가 깨끗한 메스가 아닌 오염된 메스를 집어든 형국이다. 오염된 메스로 수술을 해서는 병을 고칠 수 없다. 엉뚱한 합병증만 생길 뿐이다.
기여입학제가 법제화되었을 때, 수십억 원의 기부금을 조건으로 내걸고 입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대학은 일부 사립대학들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성적만 되면 20억 원, 30억 원을 내고 소위 명문 사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데 거액의 돈을 내고 지방의 사립대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지방의 사립대에 들어가는 일은 현재와 같은 학벌사회가 지속되는 한 기대하기 힘들다. 기여입학제의 도입은 대학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화시킨다.
흔히 지방의 대학보다 서울의 사립대학 등록금이 더 비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방 사립대학의 평균 등록금이 더 비싸다. 정부가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이 적다보니 학교 재정을 학생들에게서 걷는 등록금에만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는 실제로 더 큰 등록금 부담을 지고 있는 학생들을 외면한 정책이다.
기여입학제 도입 전에 적립금부터 제대로 쓰게 해야
그렇다면 기여입학제를 활발하게 활용하는 대학의 학생들만이라도 등록금 부담이 경감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미 지금도 서울 소재 사립대학들은 수천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다. 대학들이 쌓아놓은 적립금의 총액은 무려 5조3천억 원에 이른다. 등록금 총액은 약 11조 원이니, 현재의 적립금만 잘 사용해도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은 크게 줄일 수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대학들은 자신들이 쌓아놓은 적립금은 항목별로 사용할 곳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등록금을 낮추는 데 쓸 돈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기여입학제가 도입되어 거액의 기부금이 들어왔을 때 그 돈이 반드시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는 데 쓰이리라는 보장이 없다.
물론 기여입학제를 통해 거둬들인 기부금은 반드시 다른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만 써야 한다는 조건을 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대학들이 받아들일 리 없다.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마련하려고 대학들이 기여입학제를 주장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줄이기를 원한다면 기여입학제를 도입하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 교육부에 대해 대학들이 쌓아놓고 있는 적립금을 건물 신축이 아닌 학생들의 학비부담 경감을 위해 쓰도록 유도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어차피 대학들도 한나라당의 공약에 대해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고려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의 등록금 반값 인하 공약은) 좋은 취지의 제안이지만 정부가 현재의 교육재정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대학 측에서도 한나라당의 공약이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각 대학이 학생들의 등록금에만 의존하여 살림을 꾸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수익자 부담 원칙'을 재검토해야
등록금 문제의 핵심은 부실한 교육재정이다. 현재 한국의 고등교육 재정 규모는 OECD 국가 평균인 GDP 대비 1.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0.4%에 불과하다. 이렇게 부실한 고등교육 재정이 사립대학들의 등록금 인상, 국립대학들의 기성회비 인상에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부실한 교육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대한 재검토가 필수적이다. 한국사회에서는 대학교육을 받는 것이 교육을 받는 개인의 이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정말 대학교육의 혜택이 개인의 이익으로만 환원되는 것일까? 대학교육을 받을 경우 개인은 분명히 더 많은 소득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개인에게만 머무르는 게 아니다. 신기술 개발, 인적자원의 질 향상 등의 측면에서 사회적 자산으로 남는 측면도 만만치 않다.
2005년 OECD가 발표한 자료 중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 대비 수익률을 다시 개인에게 귀속되는 부분(사적 수익률)과 사회적 자산으로 이어진 부분(사회적 수익률)으로 나누어 분석한 게 있다. 안타깝게도 이 자료에 한국의 사례는 빠져 있지만, 여기에 소개된 외국의 사례만으로도 소개할 만한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교육의 시장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미국의 경우도 대학교육의 사적 수익률과 사회적 수익률이 비슷하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사회적 수익률이 훨씬 높다.
한국의 사정도 이 자료에 소개된 나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교육재정 확보와 등록금 문제 해결은 학생 개개인에 대한 시혜적 대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한 투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재정의 확보는 개인에게 떠맡길 문제가 아니다.
교육재정 지출은 가장 효과적인 소득재분배 수단
또 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 확보가 결국 소득재분배로 이어진다는 점 역시 정부가 교육재정을 확충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최근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낸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정부가 재정지출을 하는 다양한 항목 중에서 교육비에 대한 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부분(의료, 주거 등)에 대한 지출에서 나타나는 소득재분배 효과보다 교육부문에 대한 지출에서 나타나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2~3배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교육재정 확보가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낳아서 사회적 양극화의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액수 면에서 서민 가계에 가장 큰 부담이 되는 대학 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참여의 시대라고? 대학은 예외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최근 각 대학에서 진행되는 등록금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안타까운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대학은 아직 사회의 민주화 수준에도 크게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참여라는 말이 일상화된 시대이지만, 대학의 운영이나 등록금 책정의 과정에 학생이 참여할 여지는 아예 없는 게 보통이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등록금 책정 과정은 과거 군사독재 시대를 떠올리게 할 만큼 매우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4년제 대학의 약 절반 이상이 등록금 책정과 관련된 공식적 협의체조차 구성되어 있지 않다. 2년제 대학의 경우 21%의 학교들만이 공식적인 협의체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대학의 한 구성원인 학생들과 민주적 합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등록금을 책정하고 있다. 더구나 그나마 있는 학생과의 협의기구도 대부분 교수들이 일방적으로 통고하는 자리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개정된 사립학교법 시행령이 대학 평의원회의 구성을 명문화하고 있지만, 정작 등록금 문제의 핵심 사안인 예결산에 대한 심의의결권은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등록금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은 점거농성과 같은 과격한 방법뿐이다.
많은 언론매체가 등록금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립의 극단적이고 과격한 측면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학생과 대학본부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모색할 때다.
대학등록금 문제는 이미 학생들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최근의 등록금 갈등이 한국의 고등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조성준/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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