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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대학 등록금, 그 세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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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삐 풀린 대학 등록금, 그 세 가지 이유

인상 압력의 근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

  대학 등록금을 둘러싼 갈등이 심상치 않다. 학년 초가 되면 총학생회와 대학 본부가 연례행사처럼 줄다리기를 벌이다 마무리되곤 하던 등록금 투쟁이 올해는 예년보다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많은 사립대학의 의·약학 계열 학과 일년 등록금이 천만 원에 근접한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대학 등록금 수준이 학생과 학부모의 심리적 저항선을 넘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대학 졸업자의 사회적 지위는 계속 하락하고 있는데 등록금만 올라가니 불만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향배에 예민해진 정치권이 이런 불만을 놓칠 리 없다.
  
  한나라당 "대학 등록금 부담 반으로 줄이겠다"
  
  열린우리당이 미처 입장을 못 낸 상태에서 한나라당이 발 빠르게 나섰다. 한나라당은 '교육비 부담 반으로 줄이기 팀'을 꾸렸다. 팀장을 맡고 있는 이주호 의원은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5일 아침 이 의원은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방안의 일부를 소개했다. 사립대 기부금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주어 기부를 활성화하는 것, 연구비의 30%를 간접경비로 인정해 세금부담을 줄여주는 것, 대학의 수도요금과 전기요금을 보다 저렴한 산업용 요금으로 부과하는 것 등이다. 이런 방법으로 대학의 재정을 확충해 대학 재정의 등록금 의존도를 낮추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처방은 한계가 명확하다.
  
  대학들이 1년에 거둬들이는 등록금 규모는 모두 11조 원에 달한다. 이 중 3조 원은 장학금으로 지원되고 있어 학생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금액은 8조 원이다.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한나라당의 공약이 실현되려면 8조 원의 절반인 4조 원의 재원 조달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주호 의원이 방송에서 소개한 방법으로 4조 원을 확보할 수 있을까? 어림잡아 계산해도 무리다. 이 의원도 무리임을 인정했다. 그는 "앞에 말한 방법으로 모을 수 있는 자금은 최대 2조 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나머지 2조 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일까? 이주호 의원이 제시한 해법은 기여입학제의 도입이다. 대학 입학정원의 1%를 정원 외로 뽑고, 이들에게 기부금을 내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신입생이 4천 명인 경우 40명의 기여입학생을 받게 된다. 1인 당 25억을 받는다고 치면 1000억 원이 모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이 기여입학제를 주장할 경우 부유층을 대변하는 정당의 이미지만 고착시킬 가능성이 크다. 선거를 앞둔 정당이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
  
  어차피 기여입학제는 온전한 해결책이 아니다. 도입된다 해도 그 제도를 이용해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대학은 일부 유명 사립대학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재정이 어려운 다른 대학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대학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화된다.
  
  한나라당이 어떤 방법으로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학 등록금이 왜 이렇게 올랐을까?
  
  1990년대 이후 대학 등록금은 계속 상승해 왔다. 1993~1996년의 물가인상률이 4~5%였던 데 비해 대학 등록금은 매년 10% 이상씩 급등했다. IMF 외환위기 때는 한동안 등록금이 동결됐지만 2000년부터 다시 고율인상이 시작됐다. 물가상승률보다 2~3배 높은 수준으로 등록금이 인상돼 왔다.
  
  그 결과가 현재의 1000만 원 대의 등록금이다. 물론 이 정도의 등록금은 비싼 게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은 지난 2월 연세대 동문회보에 게재된 '인상할 수밖에 없는 등록금'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선진국의 일류 사립대학 등록금은 그 나라의 개인당 국민소득과 비슷하다"면서 한국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연 1000만 원은 훨씬 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어윤대 고려대 총장도 "연 1500만 원의 등록금은 받아야 대학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들 사립대학 총장이 모델로 삼고 있는 선진국 대학은 공공성이 강한 유럽의 대학이 아니라 미국의 사립대학에 가깝다. 미국의 비영리 교육단체인 〈칼리지 보드(College Board)〉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봄 학기를 기준으로 미국 사립대학의 평균 일년 등록금은 2만1235달러다. 우리 돈으로 2033만 원가량이다. 하버드, 예일 등과 같은 유명 사립대학들은 이보다 훨씬 비싸 3만 달러에 가깝다.
  
  미국의 대학을 모델로 삼는다면, 고려대와 연세대 총장의 발언은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소(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가 2005년 9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대학생들은 졸업일을 기준으로 평균 1만7600달러의 부채를 진 상태로 사회에 나온다. 부채가 없는 상태로 졸업하는 학생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리고 빚을 진 졸업생의 비율과 빚의 액수는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한국의 사립대학들이 추구하는 등록금 정책을 따른다면 우리도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졸업생들을 빚더미에 앉히면서까지 대학 등록금을 계속 올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등록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때가 됐다. 대학교육 재정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의 출발점은 현재의 대학 등록금이 왜 이렇게 비싸졌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등록금 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있다. 등록금은 왜 이렇게 오른 것일까?
  
  수는 늘었지만, 속은 부실한 사립대학
  
  첫 번째 이유는 부실한 사립대학이 늘어난 데 있다. 재정이 부실한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통해 재정을 보완하면서 전체 대학 등록금이 함께 상승했다. 1990년대 이후 등록금이 꾸준히 오른 것은 바로 이런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1995년의 5.31 교육개혁은 부실한 사립대학이 늘어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이 조치의 일환으로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도입됐다. 대학설립 인가제가 적용되던 과거에 비해 대학의 설립이 쉬워지면서 신설 대학이 크게 늘었다. 또 전문대학이 학교의 명칭에 '전문'이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되게 되면서 전문대학의 설립도 크게 늘었다. 또 대학 운영의 다양화. 특성화 원칙에 따라 정원과 학사운영이 자율화됐다. 이 조치가 취해진 후 10년 간 사립대학의 수는 1.5배, 대학생 수는 2배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교육의 대중화, 다양화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부실한 사립대학도 크게 늘었다.
  
  3월 28일 한국사학진흥재단과 교육인적자원부가 19개 사립대학의 재정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5년에 대학의 총수입 중 재단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4~34%로 나타났다. 특히 전문대학의 경우가 심각하다. 2003년을 기준으로 전문대 총수입 중 재단전입금이 차지하는 평균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재단전입금이 부족하니 결국 대학이 등록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사립대학들이 재정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3월 15일 한국대학교육연구소(소장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수도권 지역 25개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학교 중 19개 대학이 예산공개와 관련된 법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해 교육부는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및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대한 특례규칙'을 개정했다. 이 법령에 따르면 올해부터 모든 사립대학은 학교와 재단법인, 부속병원, 산학협력단의 예산과 산출근거 및 부속명세서를 홈페이지에 1년 간 공개해야 한다. 사립대학의 재정을 놓고 학교 안팎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자 교육부가 사립대학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법령을 통해 강제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대학교육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2006년도 예산의 '예산총칙, 산출근거, 부속명세서'를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한 대학은 가톨릭대, 건국대, 서강대, 숭실대, 한국외대, 홍익대 등 6곳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립대학이 예산을 공개하도록 규정한 법령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코 앞에 다가온 정원미달 사태…"일단 적립금부터 쌓아두고 보자"
  
  등록금이 많이 오른 두 번째 이유는 대학 구조조정이 임박한 것이다. 생존의 위기를 앞둔 대학들이 등록금을 필요 이상으로 거두어 적립금으로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등록금 급등은 이것으로 상당부분 설명된다.
  
  1980년대 이후 대학의 수와 정원이 크게 늘었다. 우선 1980년의 7.30 교육개혁을 통해 대학의 정원이 크게 늘었다. 대학별 본고사 폐지, 과외 금지 등의 내용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이 조치에는 대학정원의 확대라는 또 하나의 중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한 전두환 정권이 고등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려고 취한 정책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더해 1995년의 5.31 교육개혁을 계기로 대학 신설이 늘어나면서 전체 대학 입학정원이 확대됐다.
  
  정원은 늘어났지만 전체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20일에 열린 '2006년 국가재정운용계획 교육분야 공개토론회'에서 서병훈 기획예산처 사회재정기획단장은 2020년이면 전국 대학 정원의 30% 이상이 미달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도 이미 고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이 82%를 넘는다. 대학들이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위기를 느낀 대학들이 택한 방법은 적립금을 넉넉하게 쌓아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은 예산을 짤 때 지출 항목에 실제 써야 할 액수보다 더 많은 금액을 책정하고, 수입 항목에는 실제로 들어올 금액보다 더 적은 금액을 책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필요 이상의 등록금을 거둔다. 그리고 남은 금액을 적립금으로 쌓아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쌓인 금액이 2004년 한 해에만 총 1조253억 원에 이른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이같은 적립금을 모두 합치면 총 5조 원에 달한다며, 이것을 무상교육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학생들도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학생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은 2월 동문회보에 게재한 글을 통해 "대부분의 적립금은 회계기간과 사용시기가 맞지 않아 이월된 것일 뿐"이며 "이월된 자금도 정해진 용도가 있어서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등록금 인상의 또 다른 변수, 교육개방
  
  등록금 급등의 세 번째 이유는 교육개방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되면 교육개방이 급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FTA의 일반적인 원칙인 '차별 금지 원칙'과 '이행의무 부과 금지 원칙'이 국내 교육분야에도 적용될 것이다.
  
  '차별 금지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은 외국의 교육기관이 한국에 들어와 경쟁을 할 때 차별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대학에 대한 정부 보조금의 지원을 철회하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의 대학이 받게 될 타격은 크다.
  
  한국의 사립대학 재정에서 정부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4년 기준으로 3.3%(3286억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등록금이나 재단전입금이 주로 경상비용으로 지출되는 까닭에 연구활동에 필요한 재정은 BK21 지원금을 비롯한 정부 보조금으로 메워지는 비율이 높다. 교육개방이 현실화될 경우 대학 경쟁력의 핵심인 연구기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많은 사립대학들은 '교육개방에 대비한 경쟁력 강화'를 등록금을 인상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교육개방은 또 다른 측면에서 등록금 인상의 잠재적인 요인이 된다. 국내 대학들이 외국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영리법인화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이 영리 목적의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대학의 고객인 학생들의 부담이 훨씬 더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런데 대학 등록금 급등을 초래하는 위와 같은 세 가지 주요 원인들을 해소하는 해법이 쉽게 찾아질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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