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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등록금과 빚에 찌든 대학생들…우리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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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등록금과 빚에 찌든 대학생들…우리의 미래는?

[기자의 눈] 그들의 젊은 열정과 패기를 시들게 할 건가

3월 30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청계천 광장에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였다. '전국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가 주최한 '등록금 동결, 교육재정 확보! 교육 시장화 정책 철회를 위한 대학생 총회 및 촛불문화제'였다. 이례적인 일이다. 학생운동 단체가 주최한 집회에 수천 명의 학생들이 모인 것은 최근에 보기 힘들던 풍경이다.

***연단 위 '진지한 발언', 연단 아래 '경쾌한 분위기'**

그래서일까? 연단에 선 발언자들은 대부분 들뜬 표정이었다. 발언 도중 "감격스럽다"는 말을 거듭 하기도 했다. 장송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 이주희 민주노동당 학생위원장 등이 발언자로 나왔다. 이들은 주로 대학교육의 공공성 확보에 대해 이야기했다. 단상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대학 총학생회장이 삭발하고 단식하는 모습 등을 내용으로 한 비장한 분위기의 영상물이 상영됐다.

그런데 집회에 참가한 일반 대학생들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단상의 발언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집회 현장의 들뜬 분위기 자체를 그저 즐기는 듯했다. 학생회 깃발 아래 서 있으면서도 학생회장이 누군인지 모른다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집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한다는 생각이 없는 듯했다. 심지어 그냥 혼자 찾아왔다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회 깃발 아래 질서정연하게 앉아 구호를 외치던 과거 대학생 집회와는 사뭇 달랐다.

숙명여대 미술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김모 씨는 이날 집회에서 접하게 된 구호들에 영 낯설어 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도 않고, 학생운동권에 대해서도 그다지 달가와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운동권 후보를 찍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이렇다. "(등록금 문제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생각으로 찍은 거죠. 그 사람들은 아무래도 행동력이 있으니까,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치솟는 등록금, 빚에 주눅든 학생들**

김 씨는 학자금 대출액이 2천만 원을 넘는 친구들이 주위에 여럿 있다고 말했다. 미술대학에는 부유한 학생들이 많은 편인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4학년 때 치르는 졸업전시회를 준비하다 보면 200만~300만 원씩 쓰는 게 보통이다. 미술작업에 필요한 재료비도 만만치 않다. 일년에 100만 원은 든다. 여기에 일년에 80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합치면 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빚을 지는 게 이상하지 않다.

미대생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술대학처럼 실습을 많이 하는 학과가 아니더라도 등록금 이외의 부대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영어나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온라인 리크루팅 업체 잡코리아가 대학생 1775명(2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가 '취업을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또 이들이 지출하는 연평균 사교육비는 4학년 198만 원, 3학년 265만 원, 2학년 103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비용과 일년 간의 등록금을 합치면 천만 원에 가깝다. 대학생 아르바이트로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금액이다. 그런데 기업의 정년이 낮아짐에 따라 자식이 대학을 마칠 나이까지 부모가 직장에 다니며 학비를 대주는 게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게다가 경기가 불안정해지면서 갑작스레 가계가 어려워진 경우도 많아졌다. 대학생이 등록금을 부모에게 의존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빚을 지는 대학생이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발표한 학자금 대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올해 1학기에 25만6226명의 대학생이 8331억 원의 학자금을 대출받았다. 교육부의 학자금 대출 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난해 1학기에는 11만2000여 명이 대출을 받았다. 불과 한 해만에 2.3배로 늘어난 셈이다.

학자금 대출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직전 학기에 12학점 이상을 취득하고, 70점(100점 만점)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신용불량이나 대출연체의 기록이 없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같은 조건을 갖추지 못 해 이 제도를 이용하지 못 하고 다른 대출을 받은 학생들도 상당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대학생 채무자 수는 교육인적자원부의 통계에 나타난 숫자보다 훨씬 클 것이다.

***대학생 신분은 이제 기득권이 아니라 부담**

그런데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못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온라인 리크루팅 업체인 잡코리아가 올해 2월에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 17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8.5%만이 '입사가 확정됐다'라고 응답했다. 빚을 잔뜩 진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업을 못 한 이들이 느낄 심리적 부담감은 아찔할 정도일 것이다. 또 취업을 했더라도 한동안은 빚을 갚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다른 데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이 21세기의 대학생들로 하여금 386세대와는 다른 정서를 갖게 한다. 비싼 등록금과 힘겨운 취업난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누려야 할 기득권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부담에 가깝다. 사회적 기득권을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에 호소하는 주장은 이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런 측면은 동년배 중 대학생 비율이 높지 않았고 대학 문을 나서면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던 386세대나 그 윗세대와 지금의 대학생들이 다른 점이다.

***빚에 찌든 대학은 사회의 보수화를 낳는다**

빚에 허덕이고 취업난에 시달리면서 대학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이 만들 미래는 어떤 것일까?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의 박노자 교수는 20세기 후반에 진행된 서구 시민들의 보수화를 개인부채의 증가를 통해 설명한 적이 있다. 이런 그의 설명은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는 데 힌트가 될 수 있다.

박 교수의 설명은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대학 등록금이 비싼 미국 사회에서는 상당한 빚을 진 상태로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졸업한 뒤에 집과 자동차를 마련하기 위해 진 빚까지 더해지면 평생 빚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급여는 적지만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다.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할 때 급여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해직에 따른 부담도 더 크다.

이런 미국 사회에서는 기업에 들어가 경영진의 뜻을 거스르는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소홀해진다. 빚에 움추러든 개인들은 점점 보수화된다. 이런 상황은 미국경제가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던 1980년대에 부쩍 심화됐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대학 등록금이 비싸지면서 빚을 잔뜩 진 상태로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경제의 불안정성이 높아진 사회적인 조건도 미국의 1980년대와 닮았다. 한국도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불안에 주눅든 청년들이 체제를 거스를 용기를 잃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의 열정이 시들지 않게 하려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지난달 30일 대학생 집회의 풍경이 다소 안타깝게 여겨진다. 이날 집회에서 단상에 선 운동권 대학생들의 발언은 차라리 386세대의 감수성에 더 어울렸다. 그들은 천만 원대의 등록금을 내며 대학을 다닌 뒤 비정규직으로 취업해야 하는 요즘 일반 대학생들의 불안감을 제대로 못 읽어낸 느낌이다. 어쩌면 단상에 선 이들이 느꼈다는 '감격'도 과거의 대규모 군중집회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것일지로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집회에 참석한 대학생들은 더 이상 기득권자로서의 지식인이 아니다. 빚에 허덕이고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니 '교육의 공공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단어들을 마음에 담아둘 여유조차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익숙치 않은 운동권 행사에 찾아왔다. 왜 그랬을까?

고작 몇 마디의 딱딱한 구호를 듣기 위해 그들이 꽃샘추위를 무릅쓰고 광장에 모였을 리는 없다. 열정을 발산하고, 서로의 열정을 확인하면서, 불안감을 떨쳐내고 현실에 맞설 용기를 얻고 싶었을 게다. 그들이 용기를 잃는 순간, 우리 사회의 보수화 경향을 견제하고 제어할 장치 하나가 사라진다.

수천 명이 운집한 이날 집회의 풍경만 놓고 보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경제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상과 맞서보겠다는 패기를 잃지는 않았다. 이런 그들의 패기가 시들지 않게 하려면, 그리고 그 패기가 때로는 체제도 거스를 수 있는 용기로 이어지게 하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3월 30일 집회를 준비한 이들, 그리고 이 집회의 일반 참여자들과 함께 기자도 그 대답을 고민해보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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