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기법 중에 '티저(teaser)광고'라는 게 있다. '괴롭히다', '졸리다'는 뜻을 가진 'tease'에서 비롯된 말이다. 정식으로 제품이 출시되기 전까지 제품의 일부만 보여주거나 극히 제한된 정보만 제공해 소비자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높여 최종적으로는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새로 출시될 자동차를 커버로 덮어두고 '모월 모일 이 차가 베일을 벗는다'는 식의 광고를 생각하면 쉽다.
'신제품 강금실' 런칭을 앞둔 여권은 이런 광고 기법에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29일 강 전 법무부장관의 연세대 리더십센터 초청 특강에 몰린 50여 명의 취재진이 1시간 가량 진행된 특강과 그 뒤 짤막하게 허락된 기자들과의 문답 시간에서 얻은 사실상의 소득은 "예"라는 한마디였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서 가까스로 나온 답이다.
강 전 장관은 구체적인 입장 표명은 4월5일로 미루겠다고 했다. 왜 4월5일인지, 그동안 고민한 내용이 무엇인지 등의 설명 대신 "미흡하고 부족한 게 많아서 준비할 게 남아 있다"는 알쏭달쏭한 답변으로 넘어갔다.
결국 이날 특강에서 강 전 장관은 '출마를 하느냐 마느냐'는 원초적인 궁금증에 대해서만 베일을 한거풀 벗었을 뿐이다. 열린우리당에 입당은 할 것인지, 입당하면 경선은 치르겠다는 것인지, 서울 시민들에게 내놓을 컨텐츠는 무엇인지 등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겨뒀다.
이에 대한 답 역시 '티저광고'식 계산에 따라 하나씩 풀어놓지 않을까 싶다. 가급적 오래도록 서울시장 선거판을 '강금실 중심'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수 개월간 진행된 강 전 장관의 '고민'까지도 일종의 정치 전략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지적은 당내에서 이미 나왔다.
또 하나 웃지 못 할 일은 우리당 지도부와 강 전 장관이 '제품 공개'를 자꾸 미루는 것이 꾸준히 발품 팔아 자신의 컨텐츠를 준비해 온 우리당 소속의 이계안 의원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전날 문화정책 발표를 위해 기자회견장에 선 이 의원이 "몇 분이나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실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말문을 연 것을 당 지도부는 아는지 모르겠다.
***무슨 속사정 있길래 '시민후보'?**
여당의 강금실 포장 기법에는 '개별브랜드 전략'도 가동되는 것 같다. 이는 모(母) 브랜드와의 차별화가 절실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과거 조선맥주(주)가 하이트 맥주를 내놓으면서 광고 어디에서도 조선맥주의 제품이라는 단서를 찾을 수 없게 했던 예가 대표적이다.
여당에서 내세우고 있는 '시민후보 강금실' 컨셉은 일종의 개별브랜드 전략이다. 당과 강 전 장관 사이의 '거리두기' 작전이 여당 지지도와 '개인 강금실' 지지도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에서 기인했음은 따져볼 문제도 안 된다. 한마디로 여권은 자기네 당 후보에게 '열린우리당' 딱지를 붙이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춤을 즐기는 자유로운 개인', '문화', '삶의 질' 등 '강금실 신드롬'의 기본 골격을 극대화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이 발상은 주로 당에서 펌프질을 했다. 그동안 정동영 의장이 이런 범주에서 강 전 장관을 묘사한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다.
강 전 장관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다. 그는 '비(非)노무현-비(非)호남' 전략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기획단장인 김혁규 최고위원도 "지방선거는 지방의 일꾼을 뽑는 선거인만큼 정치적인 의미보다 시민들과 함께 호흡을 하면서 시민의 여론에 따르겠다는 후보자의 생각도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당과 강 전 장관이 구사하는 이 같은 두 가지 마케팅 기법이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법무부장관 당시 기존 정치권을 향해 "코미디야 코미디"라고 조롱했던 강 전 장관이 이런 이미지 전략을 앞세워 정치권에 입문하는 수순은 아무래도 역설적이다.
'티저광고'는 소비자들의 맹목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광고가 성공할수록 자칫 소비자들의 비정상적인 구매행위를 유발할 우려도 커진다. 구매 뒤 텅 빈 알맹이에 후회할 수도 있다. '개별브랜드 전략'은 모(母) 브랜드가 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을 때 이를 감추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모두 '눈속임'이 주된 목적이라는 것을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대개 안다.
여권의 '강금실 광고'가 지금까지 대개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런 흐름을 계속 타고 가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베일을 벗은 강금실은 지금까지 거둔 성공의 분량만큼의 위기를 넘어서야 하는 짐을 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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