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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진실규명',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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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진실규명', 이제부터 시작이다

〈기고〉 중앙정보부가 인혁당을 '창당'한 경위는?

흐느껴우는 유족들의 소리가 법정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다.

"원통하다. 원통하다."

이른바 인혁당 사건으로 여덟 분이 서대문교도소의 형장에서 낙엽처럼 스러져 민주주의의 밑거름으로 가신 지 30년만에 법원이 27일 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여정남 선생 등 여덟 분의 재심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재판이라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사치스러웠다. '인혁당'이라는 말만 해도 처벌 받아야 했던 시절, 인혁당이라는 말이 공포의 대상이었던 세월을 지나 이제 강산이 세 번 바꿔고야 겨우 모기소리를 내야 하는 허망한 세상이 된 것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우리의 선생 여덟 분은 서대문교도소의 형장에서 많은 유언을 남겼다.

'열 살 난 아들이 보고싶다.'
'가족을 두고 책임을 못하고 가는 것이 미안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젊어서 죽는 것이 서럽다.'
'조국의 통일을 못 보고 가는 것이 아쉽다.'
'조국의 통일을 기원한다.'
'우리는 억울하다. 민족민주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우리의 억울함을 알려 달라.'
'세상은 바꿜 것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1974년 '유신헌법 폐기하고 민주헌법 제정하라'는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전국을 휩쓸고 다니던 시절, 전국의 청년학생, 정치인, 종교인, 재야민주인사, 진보적 민주인사 등 모두가 하나 되어 반독재 민주화운동 대열에 참여했다. 소위 인혁당 사건으로 재판받은 진보적 민주인사들도 반유신 투쟁 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4.19 이후 진보적 민주인사들은 북진통일을 반대하고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굴욕적 한일회담을 반대하고 민족 자주적 입장에서 한일관계 정립을 주장했다. 박정희가 3선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할 때 3선개헌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 자살하자 민중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주창했다. 박정희가 개엄령을 선포하고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을 획책하자 유신반대투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박정희는 이같은 전국민적인 유신반대투쟁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민주화운동을 조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독재정권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북한의 사주를 받고 김일성의 사주를 받아 정부를 전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를 전복하려고 반국가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는 상투적 방법을 사용했다.

박정희정권과 중앙정보부는 이것을 만들기 위해, 지금은 잘 알려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사건을 조작했다.

첫째. 대북 첩보요원으로 군 첩보부대에서 북파했던 사람을 남파간첩이라 하여 인혁당과 연계시켰다. 이 대목은 최근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가 발표한 민청학련 인혁당 조사보고서에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둘째. 중앙정보부는 지금까지 북파요원이라는 진실을 알면서 밝히지 않은 채 계속 간첩과 접선하여 김일성의 지시를 받았다고 인혁당을 몰아세웠다.

셋째. 인혁당(인민혁명당)은 중앙정보부가 '창당'한 것이다. 없는 인혁당을 만들기 위해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관계자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다. 나도 모진 고문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넷째. 고문을 통해 인혁당을 조작했다. 인혁당사건의 관계자들은 64년 1차 인혁당 사건 때에도 서로 연락관계를 가지고 활동하였으나 인혁당은 결성하지 않았으며, 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도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위해 전국적인 인맥은 있었으나 인혁당은 물론 없었다. 민청학련의 청년학생들도 반유신투쟁의 전국적인 연락체계는 가졌지만 반국가 단체는 구성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국정원의 과거사 진실위원회에서 사실이 밝혀진 이상 당연히 법원은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자기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진실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과 짝짝궁이 되여 국민을 탄압하고 처형한 역사적 과오를 사법부가 인정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고통을 거쳐야 한다.

아직까지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저지른 죄악은 다 밝혀지지 않고 있다. 폭압정권을 유지했던 권력기관들은 지금도 과거의 잘못을 은폐하려고 폭압의 증거를 감추고 있다. 폭압기관의 당시 집행자들은 진실을 고백하지 않고 있으며 이들과 내통된 현재 폭압기관의 당사자들도 은폐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진실을 밝힐 것이다.

1. 민청학련 인혁당사건의 조작과정과 조작행위 및 조작행위자
2. 조작 프로젝트 내용
3. 박정희의 구체적 지시내용
4. 이용택 당시 중앙정보부 6국장과 윤종원의 진실고백
5. 고문을 한 당사자들의 고문 경위
6. 유언내용과 유언 조작과정 및 조작유언 내용
7. 시신의 강제 화장과 관련된 사건배경, 시신 강제화장 지시자 및 지시기관 관련내용
8. 유가족 탄압 내용 및 탄압 지시 관련 일체
9. 비석 훼손 및 경북대 추모비 훼손 내용과 지시관계
10. 경찰 검찰 국방부 중앙정보부의 민청학련 인혁당 관련자 파일 확인 및 탄압내용
11. 기타 국가기관의 반민주 행위로 인한 탄압내용

우리는 이런 내용들을 밝히면서 민청학련 인혁당 사건의 정신을 밝히고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민족통일 민족자주 민주주의의 대의를 실현하는 일에 미력이나마 노력을 다고자 한다. 국민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발전된 조국의 미래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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