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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바지 사장'일 수 없는 이유는?"

[해외시각] 러시아 전문가 "北 지도부, 카다피 같은 환상 없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례가 끝나면서 관심은 북한의 앞날에 쏠린다. 과거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일부 고위당국자들이 김정일 사후 북한이 "2~3년 내"로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알렉산더 보론초프 러시아과학원 교수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싱크탱크인 전략문화재단(Strategic Culture Foundation) 홈페이지 기고문에서 "이같은 예측은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보론초프 교수는 외부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상태에서 북한 지도부가 내분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는 북한의 정치 엘리트들이 이념적으로 잘 무장돼 있어서라기보다는 정권이 무너졌을 때 자신들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실질적인 우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보론초프 교수는 김정은이 이른바 '바지 사장'으로 남고 실권은 김정일의 측근들이 나눠 가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지도자의 유일적 지위와, 최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집단주의의 결합은 북한의 오랜 전통"이라며 반박했다.

그는 북한이 김정일 사후에도 중국, 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들과의 협력관계나 6자회담에 대한 태도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지금이 한국과 미국 등 모든 관련국들에게 대북정책을 전환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고문의 주요 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어떤 행보를 취할까? ⓒ연합뉴스


김정일 이후의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70세 생일을 두 달 남겨놓고 사망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가 사망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북한의 역사를 보면 지도자의 죽음은 다른 시대가 시작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시나리오에 따라 예고된 전환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예상된다. 북한에 대한 비우호적 관점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명제가 중요하게 제기된다.

첫째, 28세의 후계자 김정은이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며 정신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북한의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이고 주민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며 가족 내 연장자들에 의해 조종되리라는 것이다.

둘째, 그 결과 북한 내에서는 정치 엘리트들 간의 대립이 일어날 것이고 이들은 단지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르려 할 뿐 아니라 완전한 권력을 추구하면서 쿠데타 등 혼란이 벌어지리라는 것이다.

셋째, 위의 두 항목을 고려할 때 북한에 대한 한국과 미국, 중국 또는 다른 세력의 개입이 일어날 것이고 독재에 신물난 북한 주민들은 이들을 해방자로 환영하리라는 것이다. 북한이 뿌리에서부터 무너져 정권 교체(레짐 체인지)가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상황을 현실적으로 분석해 예측하기 위해서는 고려돼야 할 것들이 있다. 김정은의 능력과 정신 건강에 대한 문제가 계속 되풀이돼 제기되더라도, 그는 현재 '위대한 계승자'로 불리고 있고 이미 북한에서 확고한 위치에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이 최고권력자가 될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김정일이 아무리 해도 아버지 김일성만 못할 것이란 관측은 서방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됐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김대중 대통령을 따라 북한을 찾은 기자들은 김정일이 건강하고 정력적이며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현재 북한이 보이고 있는 엄청난 슬픔은 외국인이 보기엔 충격적이겠지만 이것이 진심이 아니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물론 겹겹으로 조직화한 북한에서는 집단주의가 널리 퍼져 있고, 그같은 상황은 감정의 표현에도 영향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유교적인 전통에 따라 국가의 지도자를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든가, 북한 주민들이 진심으로 김정일을 추모하고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국가의 지도자에게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는 북한 정치문화의 이러한 경향은 김정은의 권력 장악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준다. 김정은은 매우 젊고 국정 경험이 거의 없고 공식적인 후계자 지위도 단지 일 년여의 기간 동안만 누렸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그 기간 동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대과(大過)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실제로 김정은을 후계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필자가 보통 북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그들은 김정은이 김일성 주석과 매우 닮은 외모를 가졌다는데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과 북한이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것은 명백하다. 지금부터 많은 것은 김정은의 역량과 의지 같은 것들에 달려 있다. 김정일의 측근이었던 원로들은 처음부터 김정은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이같은 방식의 상호작용을 '김정은은 이름뿐인 지도자'라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의 유일적 지위와 최고 수준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집단주의가 결합하는 것은, 두 요소의 규형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북한의 오랜 전통이다.

김일성조차 초기에는 노동당에서나 정부 내에서 유일적 지위를 차지한 인물은 아니었고, 김일성이나 김정일 모두 최고권력자의 지위에 있을 때에도 당 중앙위원회나 국방위원회 같은 집단주의적 정책 결정 구조를 없애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북한이 단기간 내에 혼란에 빠지고 내분에 휩싸일 것이라는 예측은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이다. 진지한 관찰자라면 북한의 확고한 정치적 안정성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에는 조직된 반대 세력도 없고 대중 시위도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 정부 역시 다른 나라 정부와 마찬가지로 개별 이슈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것은 존재하고 그것은 자연스럽다. 북한에서는 2002년에도 경제개혁의 형태와 속도를 둘러싸고 제한적인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2009년 11월 있었던 북한의 화폐개혁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을 경제개혁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시도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몇달 후 이런 시도는 비생산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시장에 가해진 제한을 빠르게 철폐했다. 이같은 반전은 개혁주의 분파가 보수파들에 비해 우세함을 시사한다.

북한 내부의 분열이 심각한 사태로 확대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북한에 상존하는 외부적 위협은 내부 결속을 더욱 더 단단하게 한다. 북한 정권은 정권 교체에 초점을 둔 '적국'의 전략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으며, 북한의 지도자 사망 등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 연합군의 긴급시 군사 계획을 주시하고 있다.

또 리비아 사태와 카다피의 사망은 북한으로 하여금 서방에 반항한데 대한 보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북한은 카다피의 핵심적 실수가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국제사회가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서방의 약속을 믿은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북한은 카다피 정권이 핵 억지력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 공격받았다면서 자신들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며 핵 능력 등 국방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정치 엘리트들과 정치 집단은 정권 교체(레짐 체인지)가 일어나도 자신들은 살아남을 거라는 환상은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우려는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북한을 내부적으로 뭉치게 하고 지도자에게 충성을 바치게 하며 자칫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떤 움직임도 무자비하게 억누르게 할 것이다.

아버지의 노선을 따를 것임을 강조할 젊은 지도자 아래에서, 북한의 대내외 정책은 최소한 중기적으로는 완전히 (김정일의 노선대로) 계승될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와의 관계나 6자회담 참여 문제 등 핵심 외교 사안에 대한 북한의 접근 방식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김정일의 마지막 외교 행보가 지난 8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러시아 방문이었음은 상징적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은 계속될 것이며 양자 간 주요 경제 프로젝트들이 계획대로 이행될 것임은 거의 확실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6자회담 재개와 경제협력 등 문제를 논의했다. ⓒAP=연합뉴스

북한의 최근 전개 상황이 상대국(opponents)에 새로운 기회를 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기회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공화당의 미트 롬니 대선 예비후보와 같은 미국 보수파들은 경험 없는 김정은이 김정일의 자리를 대신했다며 정권 교체를 최종 목표로 삼아 더 큰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지금은 과거의 분쟁을 넘어서서 북한의 젊은 지도자와 접촉을 시작해야 할 때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형적인 첫 단계 작업은 애도 표시다. 한국 정부는 (민간) 조문단을 보냈고 이는 1994년 김일성 사망시와 대비되는 희망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큰 역할을 맡은 것은 미국이다.

미국 정부의 통상적인 외교 전략은 여러 시나리오들을 준비해 놓고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실제적인 전쟁 가능성이 있던 상황에서 김일성 사망 국면을 거쳐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조인이라는 성과를 얻어낸 것은 이런 유연성의 생생한 사례다. 2007년 조지 부시 행정부도 이와 비슷한 전략을 보여줬다. (대북 강경책을 펴던 부시 행정부가 2006년 중간선거 패배 후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통해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와 2단계 조치, 이른바 2.13 합의와 10.3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말한다 : 옮긴이)

지난 며칠 동안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북한을 둘러싼 인접국들과 긴밀한 논의를 주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클린턴 장관은 러시아, 중국 외무장관과 몇 차례 통화를 했다. 통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미국이 막연한 수준에서나마 북한에서의 정권 교체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나온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노력이 성과를 맺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과의 유대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포함한 9명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모두 주중 북한 대사관을 방문해 김정일을 조문하는 전례 없는 외교 행보를 보였다.

미국이 생각하는 것이 정권 교체가 아니었다면, (미국의 외교적 목표는) 북미 간 진행됐던 논의를 현실화하는 것이었을 수 있다. 클린턴 장관은 미국이 늘상 '불량 국가'라고 비난하던 버마를 방문하는 대담한 시도를 보였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돌파구가 만들어질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그 전례는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북미 간, 남북한 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할 특별한 기회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북한의 상황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현상 유지(status quo)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북한에 압력을 가할 것인지 (별 성과가 없을 것이며 극심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면 자신들의 대북정책을 대폭 수정할 것인지 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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