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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프 "일본은 서서히 그리스가 되고 있다"

'골병 든' 일본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이유는?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경제위기가 곧 닥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예측이 많다. 하지만 이런 예측은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 논리가 설혹 어설픈 것이라도 앞날을 안다고 누구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위기라면 어떤가? 그런 예측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또한 이런 예측은 반박당하기 쉽다. 지금 멀쩡하기만 한데, 왜 악담하느냐는 핀잔을 받기 쉽상이다.

마찬가지로 현재는 '아주 잘 사는 나라'에 대해 "서서히 위기가 진행되고 있으며, 종국에는 큰 일이 날 것"이라고 예측을 하면 믿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이 10년 내에 거품 붕괴로 큰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예측한 국제금융학계의 석학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일본 경제의 위기의 성격에 대해서는 '슬로 모션 위기'라고 차별화된 진단을 내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미 일본은 많은 나라들이 '나라 경제가 저런 꼴이 되면 안된다'는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경제다. 로고프 교수는 'Japan's Slow-Motion Crisis'라는 칼럼(☞
원문보기)을 통해, 겉으로는 알아차리기 힘든 이 나라의 '골병'이 무엇인지 간결하게 전해준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내용이다. <편집자>


▲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국민 설득용 논리가 된 "일본처럼 된다"는 경고

미국, 유럽, 심지어 중국 지도자들조차 이런 말을 한다. 일본 경제처럼 되어서는 안된다고. 이 말은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은행 구제금융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논리에도 동원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10년 넘도록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본처럼 된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뚜렷하게 저평가된 위안화를 상당폭 절상되도록 허용할 수 없다는 가장 주된 이유로 일본을 들먹인다. "서구 지도자들이 1980년대 후반 엔화의 평가절상을 강요했는데, 이후 초래된 재앙을 보라"는 것이다.

사실 누구도 일본처럼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3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지속하던 나라가 18년 넘게 바닥을 기는 침체에 빠진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이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의 악몽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일본 정부의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감안하더라도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훨씬 넘는 정부부채가 초래할 위험을 자청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존재에서 경기침체의 상징적 존재가 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1인당 소득 4만 달러의 나라가 위기라니...

그렇지만 막상 도쿄에 가보면 지금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상점과 사무실은 활기차게 북적이고, 음식점에는 뉴욕이나 파리에서 보통 볼 수 있는 옷차림보다 더 잘 차려 입은 사람들로 꽉 차있다.

20년 가까운 '경기침체'를 거치고도 일본의 1인당 소득은 4만 달러(시장 교환 비율)가 넘는다.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잃어버린 10년' 대부분의 기간에 실업률도 낮았다. 최근 실업률이 증가했다고 하지만 겨우 5%다.

어찌된 일일까? 홋카이도처럼 도쿄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교외에 가보면 상황은 상당히 음울해진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런 교외 지역은 공공사업에 고용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상황이 악화되면서 일자리는 훨씬 줄어들었다.

곳곳에 아름답게 포장된 도로들이 있지만, 건설을 위한 건설로 지어진 것이다. 노인들은 촌락에서 자급자족을 하고 있고, 자식들은 도시로 떠났다.

사실 도쿄가 멀쩡하게 보이는 것도 오해다. 20년 전 일본 노동자들은 연봉의 3분의 1 이상이 될 정도로 풍족한 연말 보너스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곤 했다. 지금은 연말 보너스는 언감생심이다.

물가하락 덕분에 노동자의 구매력은 그럭저럭 유지된 편이다. 하지만 구매력도 10% 이상 감소했다. 기업들이 '종신고용'을 제공하는 대신 임시직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고용 안정성은 어느 때보다 떨어졌다.

아직 위기가 실감난다고 할 수 없지만, 일본의 재정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놀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막대한 빚을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었다. 장기 채권조차 보잘 것 없는 금리를 제공하고서도 말이다.

일본 국민은 국채의 95% 가량을 저축한 돈으로 사들였다. 놀라운 일인데, 아마도 1980년대 거품 붕괴로 증시와 부동산이 무너져 큰 손해를 본 경험 탓에, 물가하락 기조에서 안전한 채권 같은 것을 선호하게 됐을 것이다.

"그리스 같은 비극을 맞게 될 것"

일본은 지금까지 그런대로 버텼지만, 중대한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력 공급이 감소하고 있다. 출산율이 극도로 낮고 외국인 이민에 뿌리 깊은 저항감을 갖고 있는 탓이다.(☞관련 기사:"일본은 사라질 것이다")

또한 일본은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농업, 소매업, 정부 분야의 비효율성은 악명 높다. 일본의 세계적인 수출기업들에서도 수익성이 낮은 생산 분야를 정리하기 어렵다. 기존세력의 끈끈한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인구 노령화와 인구 감소 속에 은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정부 채권을 매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때가 되면 일본은 채권 발행에 급등한 금리를 요구받게 되면서 그리스와 같은 비극을 맞게 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세수를 급격히 늘릴 방안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유럽 기준보다 훨씬 낮은 현행 5%인 부가가치세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속적인 저성장 국면에서 세금 인상이 가능할까?

과거 일본의 하향세에 걸었던 투자자들은 일본 국민의 놀라운 유연성과 탄력을 과소평가해 큰 손해를 봤다. 하지만 재정 문제는 갈수록 위태로워 보인다. 최근 정치적 난맥상을 보이는 것도 이런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엄청난 곤경에 처하고도 버텨나가는 일본의 능력은 찬사를 받을 만 하다. 하지만 일본의 앞날에 놓인 리스크들은 채권 시장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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