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반짝이나마 회복세를 보인 강력한 증거로 제시됐던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크게 부풀려진 수치라는 것이 드러나고, 그나마 곧바로 추락하는 '더블딥' 가능성이 80%라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등 페섹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사실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엉터리 경제성장률로 망신
▲ 하토야마 일본 총리는 일본 경제가 또다시 경기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그런데 지난 9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확정치는 1.3%(연율, 전분기 대비)에 불과했다. 한달 사이에 무려 3% 포인트나 수정된 것이며, 한국처럼 전분기 대비로는 불과 0.7% 증가한 것이다(한국은 지난 3분기 2.9%, 연율로는 12.1% 성장). 망신살이 뻗친 일본 정부는 다음날 "GDP 집계 방식을 바꿀 계획"이라고 밝혀야 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의 GDP 통계가 이처럼 부실한 것에 대해 JP모건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아다치 마사미치는 "GDP 속보치와 수정치가 이렇게 큰 폭으로 수정된다면, 이런 자료를 근거로 이코노미스트가 예측한다는 작업이 우습게 된다"면서 "믿을 수 없는 자동차 속도계를 달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 개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처럼 속보치와 수정치가 큰 차이가 낸 배경에 대해 "일본의 GDP 속보치는 자본지출 항목의 절반만 포함된 상태에서 추정한 것이어서 원래부터 불완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향후 경기전망을 어둡게 본 기업들이 실제 자본지출 계획을 급격히 축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변수만으로는 속보치와 수정치가 이번처럼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 없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데이터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단기 효과 노린 경기부양책이 좀비 경제 만들어"
더 큰 문제는 세계 경제가 내년에 더블딥에 빠질 것이라는 논쟁 속에서 일본은 '최초의 더블딥 경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페섹은 최근 <블룸버그> 칼럼을 통해 "일본은 주요 경제국 가운데 이번 금융위기 이후 최초로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일본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페섹의 전망은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주로 근거한다.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답지 않게 '더블딥' 위협에 취약한 이유는 세계 경제의 경기변동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일본의 경제체질 자체가 외부 요인에 취약한 '좀비 경제'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페섹은 일본 경제가 '좀비 경제'로 변한 주된 요인을 '단기적 효과를 노린 경기부양책이 성장동력을 잃게 하는 장기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페섹에 따르면, 제로금리와 막대한 재정지출, 통화팽창 정책으로 구성된 경기부양책에 중독된 결과, 현재 일본은 GDP 대비 두 배에 달하는 정부부채, 그리고 정부의 지원 없이는 경쟁력이나 독자생존력을 잃은 거대한 좀비기업들이 양산됐다.
또한 일본은 인구 고령화에 시달리는 성숙한 경제이자 수출에 죽고 사는 형편이어서, 이런 구조로는 지금처럼 세계화된 경제에서 퇴행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자본 수익률은 떨어지고, 엔화 강세로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제조업체들은 비용 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임금은 낮아지고, 고용이 줄어들어 디플레이션 현상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JAL과 우정성은 일본이 걸린 중병 보여줘"
페섹은 일본 경제가 이 지경이 된 과정을 알고 싶다면, 흔히 '좀비기업'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망가진 일본항공(JAL)과 일본 우정성을 보라고 말한다.
현재 JAL은 7000억 엔(약 9조원)에 달하는 정부 보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만큼 구제금융으로 연명하는 처지다. 또한 일본 우정성은 무려 3조 4000억 달러의 자산으로 일본 최대의 저축금융기관이자 세계적인 금융공룡으로 불리지만, 방만한 경영으로 민영화 계획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하토야마 정부가 집권한 이후 민영화 계획이 철회되면서 우정성은 일본 금융개혁의 후퇴를 상징하는 한편,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자금줄이 부활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페섹은 "JAL이나 우정성은 경쟁력이나 수익성 강화에 나설 인센티브가 없다"면서 "일본 경제를 중병에 걸리게 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축소판"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매년 새로운 돈을 찍어내 공급함으로써 조지프 슘페터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의 동력을 죽여버렸다. 좀비 경제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면서 "민간 부문에 지속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안주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GDP의 200%에 육박하는 정부부채 못지 않게 중대한 문제는 중국, 인도, 그리고 한국이 추격하는 와중에 일본의 생산성이 정체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페섹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구제금융은 비효율적인 분야에 노동력을 집중시켜 보다 생산적이고 수익성 있는 분야를 고사시켰다. 정부의 노력으로 실업 사태를 일단 저지시켰지만 결국 고질적인 경기침체로 이어졌을 뿐이다.
"리먼브라더스나 두바이 꼴 나지 않으려면..."
페섹은 일본 정부가 지난 2006년 8월 이후 3년여 만에 다시 '디플레이션 진입'을 공식 선언한 것을 '검은 백조(이례적인 현상)' 또는 '충격을 받을 만큼 예상치 못한 사태'로 보는 일각의 인식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다시 빠질 것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상황을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시장의 혼란 못지 않게 일본의 경직된 대응도 디플레이션에 다시 빠지게 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페섹에 따르면, 일본은 비용과 과잉생산 능력을 감축시켜야 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저 경기부양책과 엔화 약세에 의존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제는 이 두 가지 모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글로벌 수요도 경제위기로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페섹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고품질의 제품에서 저렴한 아시아 제품들로 수요가 이동했다. 일본의 산업체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해야 할 때"면서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지만, 조속히 착수할수록 리먼브라더스나 두바이 꼴이 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