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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밀로셰비치에게 戰犯 수사 맡긴 꼴"

키신저 '9.11조사위원장' 인선에 희생자가족 등 강력 반발

"차라리 밀로셰비치에게 전범 수사를 맡겨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9.11테러 조사를 위한 독립적 조사위원회의 책임자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임명하자 미국의 진보세력들과 9.11 희생자 가족 일부 등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가테러범이 테러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네이션을 비롯한 미국의 진보언론들은 키신저는 공직 시절 캄보디아 비밀폭격, 칠레 아옌데정권 전복, 동티모르 학살 등 국가테러를 저지르거나 사주한 장본인이라고 지적하면서 그에게 9.11테러 조사를 맡기는 것은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해 9.11테러가 발생한 직후부터 희생자 가족들은 9.11테러의 원인과 배경은 물론 미 정부기관이 테러위협에 제대로 대처했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독립적 조사위원회의 구성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같은 요구를 거부해 왔다.

결국 사건 발생 1년 2개월이 지난 최근에 와서야 부시 대통령은 독립조사위원회의 출범에 동의했다. 단 위원장은 자신이 임명한다는 조건부 동의였다. 뉴욕타임스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올해 79세의 키신저를 위원장으로 천거한 사람은 현 부시행정부 강경파의 수뇌인 체니 부통령이다. 체니는 포드행정부 말년에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와 개인적 친분이 있다.

1년여의 반대끝에 부시 대통령이 27일 9.11 조사위원회 설립법안에 서명함으로써 공화ㆍ민주 양당에서 각각 5명씩 10명으로 구성되는 조사위원회는 오는 12월 15일 출범하게 된다. 이 위원회는 향후 18개월간 9.11테러에 관한 모든 진실을 밝혀내 미 국민 앞에 공포하도록 돼 있다. 이를 위해 과반수의 투표로 현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관련당사자들을 위원회에 소환할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키신저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내 진보세력은 물론 일부 9.11희생자 가족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진보적 시사주간지인 네이션은 즉각 인터넷에 '돌아온 키신저(Kissenger's Back...As 9/11 Truth-Seeker for Bush)' 제하의 기사를 띄워 키신저의 과거 '죄상'을 낱낱이 고발했다. 또 호주에서 발행되는 세계사회주의자웹사이트(www.wsws.org)도 부시대통령이 키신저를 위원자으로 임명한 것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영국 BBC방송의 인터넷 뉴스에 따르면 9.11테러로 남편을 잃은 모니카 가브리엘은 "키신저는 분명 우리가 기대했던 인물이 아니다. 때묻지 않은 인물은 없단 말인가?"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9.11 바로 다음 날에 구성됐어야 할 위원회를 출범시키기 위해 희생자 가족들이 그동안 고생해 온 것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며 부시행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미 과학자협회(FAS)의 정부정보공개 전문가인 스티븐 애프터굿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표현을 부드럽게 한다면, 키신저는 정부의 잘못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데 적임자라고 볼 수 없다"면서 "그는 정부자료의 공개를 요구하는 의회나 법원, 민간연구자들에게 언제나 완고하게 저항해 왔다."고 지적했다.

네이션 등이 지적한 키신저가 저지른 국가테러범죄는 열 손가락으로 세도 모자랄 정도다.

1970년 캄보디아 및 라오스 비밀폭격 지시.

1971년 파키스탄 아야 칸 장군의 쿠데타 및 민간인 학살 묵인.

1973년 칠레 피노체트 장군의 아옌데정권 전복 쿠데타 지원.

19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학살 묵인.

1976년 아르헨티나 정권의 자국민에 대한 '더러운 전쟁' 묵인ㆍ지원.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7년에 걸쳐 국내 반체제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9천-3만명의 아르헨티나인이 실종.

70년대 후반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 군사정부 등에 의한 좌파쳑결 작전, '콘도르 작전' 묵인 등.

이같은 키신저의 과거 전력 때문에 그는 현재 미 국내에서 2건의 법정소송에 휘말려 있으며 칠레, 스페인, 프랑스 사법당국으로부터 전범 혐의와 관련된 소환요구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그는 올해초부터는 유럽이나 남미로의 여행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지난 1970년 칠레 쿠데타세력에게 암살당한 르네 슈나이더 장군의 유족들은 지난해 키신저를 상대로 미국법원에 소송을 냈다. 키신저가 슈나이더 암살에 깊이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암살범에게 금전적 보상(3만5천 달러)까지 했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사회주의자 아옌데의 대통령 당선자 시절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슈나이더 장군은 아옌데 취임 이전에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일부 군 세력의 계획에 반대, 사흘 뒤 암살당했다.

이 소송건은 지난해 9.11 발생 이틀전인 9월 9일 유명 TV프로그램인 '60분(60 Minutes)'에 방영돼 키신저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한편 이달초 11명의 칠레인이 키신저를 상대로 미국법원에 소송을 냈다. 피노체트의 인권유린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피노체트 정권을 지원, 고무했다는 것이다. 키신저와 함께 피소된 마이클 타운리는 1976년 당시 워싱턴에서 활동하고 있던 칠레의 반체제인사 올란도 레텔리어(아옌데 정권 시절 주미 칠레 대사)의 차량에 폭탄을 장착, 암살한 인물이다.

또 칠레 대법원은 지난 여름 미 국무부에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발생한 찰스 호만 피살사건에 키신저가 개입됐는지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보냈으며, 콘도르작전을 수사하고 있는 칠레의 한 검사는 키신저 소환을 요구하고 있다. 또 스페인과 프랑스 검찰당국도 1970년대 남미에서 벌어진 인권유린과 관련, 키신전에 대한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파리를 방문했던 키신저는 프랑스 검찰로부터 소환 요구를 받기도 했다. 키신저는 지난 2월 브라질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을 에정이었으나 현지의 반발을 우려, 결국 브라질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

이처럼 키신저의 과거 '죄상'을 낱낱이 고발한 네이션의 데이비드 콘 기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키신저는 미국의 오만과 힘의 남용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공직에 있는 동안 그는 인권과 정부의 투명성보다는 미국의 위신과 지정학적 실리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솔직한 대답을 회피해 왔으며 정부자료의 공개를 막기 위해 애써왔다.

키신저는 소환의 대상이 돼야 할 사람이지, 소환권을 가진 인물이 돼서는 안된다. 그는 조사대상이지, 조사관이 돼서는 안된다."

이와 함께 그는 민주당에 대해 조사위 구성에 참여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클린턴행정부에서 중동특사 및 아일랜드 특사 등을 역임했던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을 조사위 부위원장으로 내정하는 등 부시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또 뉴욕타임스 등 제도권 언론들도 키신저가 '논쟁적인(controversial)' 인물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인선을 문제삼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일례로 뉴욕타임스는 28일자 기사를 보면 "9.11 희생자 가족들이 이번 인선에 경악했다"는 귀절이 있다. 키신저가 비밀작전을 일삼고 아옌데정권 전복과 같은 사태에 개입됐다는 악명 등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기사 말미에 "우리는 이번 인선에 만족한다"는 희생자 가족 단체 대변인의 말도 나온다. 조사위 설치를 위해 로비를 벌여온 스티븐 푸시라는 한 희생자 가족은 당초 워런 루드만 전 공화당 상원의원을 위원장으로 희망했으나 키신저도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네이션 등 미국내 진보언론이나 BBC,로이터 등 외국 언론이 이번 인선의 문제점을 지적한 반면 미국의 제도권 언론들은 대체로 눈감아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인선은 미국이 국제여론에 등을 돌리고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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