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 중에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를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 말하자면, 저마다 이야기할 거리가 한가득일 것이다. 아픔의 종류와 정도, 작업 방식, 쉴 수 없었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아플 때 걱정 없이 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마음 편히 쉬기 어려운 커다란 이유 중 하나는 당장의 소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유급병가가 보장된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면, 특히 하루이틀 쉬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면 더 걱정이다.
2022년부터 일부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병수당 제도는 업무와 관련 없는 질병을 앓거나 다쳤을 때 경제적 지원을 함으로써 생계 걱정을 덜어준다. 시범사업의 성과 평가 연구에 따르면, 상병수당 수급자들 사이에서 아파도 생계 때문에 출근하는 비율은 줄었고, 제때 치료를 받게 되는 비율은 늘었으며, 소득이나 실직에 대한 불안도 완화되었다. 이러한 상병수당 제도는 내년 하반기부터 전국에서 본사업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어야 했지만, 지난 정부에서 추진하지 않았던 까닭에 미뤄진 본사업이 이제라도 가시화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시범사업에서 드러난 몇 가지 문제들이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 첫 번째 문제는 상병수당 지급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시범사업에서 배제되었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는 사람과 이주노동자는 본사업에서는 대상으로 포함될 것으로 보이지만, 65세 이상 노동자는 여전히 지급 대상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노인 소득보장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서 대부분의 노인이 일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이면서 노인들의 고용률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 수도 390만 명이 넘으니, 일하는 노인을 지급 대상에서 빼놓는 것은 규모만 놓고 보아도 제도에 커다란 사각지대를 남기는 셈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거기다가 수급을 위한 여러 조건 때문에 소득이 불안정한 영세 자영업자나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등 가장 제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배제될 가능성도 크다.
둘째로 대기기간을 7일로 설정해서 일주일 이상 일을 못 할 정도로 아프지 않은 이상 상병수당 제도 문턱에 닿을 수 없다. 직장의 유급병가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보통 소규모의 열악한 사업장일수록 이러한 제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신청을 위한 절차도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아픈 와중에 부담을 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원하는 금액이 회복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충분치 않다는 점과 국고지원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그간 법에 정한 만큼 건강보험에 국고 지원을 하지 않았던 정부가 상병수당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면서 별도로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촉구하며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서명운동 바로가기). 언급한 문제점이 제도와 관련해 아쉬운 부분의 전부는 아니지만, 더 보편적이고 든든한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필요한 요구들이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아플 때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을 때, 상병수당 제도만으로는 그 한계가 있다. 하나의 제도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연계 제도들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유급병가나 대체인력과 관련한 제도가 없다면 상병수당 제도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아파서 쉴 때 내 동료가 내 업무 부담을 지게 된다면, ‘쉰다’는 것이 더 어려운 선택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서 필요한 연계는 또 다른 제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인식, 분위기, 규범과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도는 만들었지만 목표했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오랜 기간 남성의 육아휴직은 문화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장된 연차휴가도 회사나 주변의 눈치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위험한 현장에서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는 작업중지권도 법으로만 존재하고 실질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제도는 권리를 보장하지만, 그 권리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규범과 일터의 문화이기도 하다. 상병수당 제도가 있어도 "아프면 쉬어도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대했던 효과를 온전히 거두기 어려울 수 있다. 법은 당장의 불이익을 금지할 수 있지만, 승진에서의 불이익, 동료에게 느끼는 미안함,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시선까지 모두 없애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과 휴식, 회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동은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노동은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삶을 꾸려가는 중요한 활동이다. 동시에 우리의 일상 역시 수많은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유지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 이용하는 대중교통, 의료서비스, 돌봄과 택배까지 어느 하나 다른 사람의 노동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노동은 서로를 연결하는 사회적 활동이고, 각자가 좋은 삶을 추구하는 데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노동을 국가 경쟁력이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해하면, 휴식과 회복은 더 오래, 더 많이 일하기 위해 잠시 허용되는 시간으로 밀려나기 쉽다. 또한 노동을 통한 자립만을 '정상'으로 여기고 그렇지 못한 상태를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사회에서는 쉬는 것 자체가 죄책감과 낙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픈데도 참고 일했다"는 이야기가 미담으로 소비될수록, 정작 치료와 회복을 위해 쉬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노동의 목적이 서로의 삶을 지탱하고 각자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 데 있다면, 휴식과 회복 역시 노동의 반대말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국 상병수당은 단순히 소득을 보전하는 제도가 아니라, 아프면 쉬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급 대상과 급여 수준, 국고지원과 같은 제도 개선은 물론이고,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회복을 선택할 수 있는 일터와 사회를 만드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둘은 서로를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다. 제도는 규범과 문화를 바꾸고, 규범과 문화는 다시 제도의 실효성을 결정한다. 상병수당을 둘러싼 지금의 논의가 제도를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