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를 지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미국 닉슨 행정부 관리들과 헨리 A.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피노체트 독재치하의 희생자들로부터 수배를 받고 있다.
칠레에서는 현재 17년간 칠레의 독재자로 군림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장군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다.
이런 와중에 뉴욕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칠레 쿠데타로 수배자가 된 키신저'라는 기사를 통해 칠레와 미국에서는 피노체트 독재치하의 희생자들이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를 지원했던 키신저와 닉슨 행정부 관리들을 상대로 법적투쟁의 수위를 높여 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칠레 좌익정부 전복의 막후주역, 키신저**
키신저와 닉슨행정부는 70년대 초반 당시 칠레 대통령이었던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 고센의 정부를 전복시키는 군사쿠데타를 지원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칠레의 군사쿠데타에 관련된 닉슨 행정부의 관리들중 가장 유명한 인사는 아마 전 국무장관 키신저와 당시 칠레 대사를 역임한 나다니엘 데이비스. 이들은 피노체트가 73년 9월11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사망한 찰스 호먼이라는 한 미국시민의 죽음에 대한 질문에 응답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현재 85세인 피노체트는 90년까지 칠레를 통치했다. 그는 98년 런던에서 인권침해 혐의로 스페인 체포영장에 의해 구속됐는데 16개월간의 구류생활을 보낸 후 건강악화로 영국정부에 의해 풀려났다. 피노체트는 2000년 다시 구속됐지만 법정에서 진술하기에는 정신적 상태로 보아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제작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호먼씨의 죽음은 82년 개봉된 영화 미싱(Missing:실종)의 소재이기도 했다.
호먼씨의 미망인인 조이스 호먼씨가 미국에서 제기한 민사소송은 그녀가 미국 정부의 개입사실을 증명하는 중요 증거들을 제출하지 못해 기각됐다. 그러나 피노체트와 비공개시한이 지난 미국 문서들에 대해 칠레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적투쟁은 호먼씨가 15개월 전 새로운 민사소송을 내도록 이끌었다.
지난해 가을 피노체트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후앙 구즈만 판사는 칠레 대법원의 승인을 얻어 호먼씨 사건에 대한 17개의 질문이 담긴 질의서를 미국 행정부에 전달했다. 한 미국 대사관 관리는 '질의서'로 알려진 칠레 법원의 서류가 워싱턴에 도착했음을 확인해주었다.
키신저의 변호사인 윌리엄 로저스는 "키신저가 미국의 전 국무장관이라는 자격 때문에라도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 대한 답변은 미 국무부가 해야 할 것"이라고 한 편지에서 밝힌 바 있다. 그는 그러나 키신저가 "그렇게 오래된 사건들에 대해서도 기억할 수 있는 한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 발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70년 다른 장교들에 의해 학살된 레네 쉬나이더 전 칠레 육군장관의 친척들은 호먼씨의 미망인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즉결 사형집행, 학살,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지난해 가을 워싱턴에서 키신저와 리차드 M. 헬름스 전 CIA(중앙정보국) 국장, 그리고 군사쿠데타로 인한 알렌드씨의 권력축출 당시 연루된 닉슨 행정부 관리들을 상대로 3백만 달러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키신저, 발뺌만 계속**
키신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가 70년 가을 닉슨 전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군사쿠데타를 조직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키신저는 또한 한달 뒤 이를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문서들은 CIA가 쿠데타를 계속 지원했으며 레네 쉬나이더 장군을 죽음으로 이끈 군 장교들에게 자금까지 지원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쉬나이더 장군의 아들은 "아버지는 알렌드에 대해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입장이었으며 선거의 승자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법치주의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그러한 태도가 키신저와 닉슨 행정부에 장애가 됐다. 그래서 그들은 칠레의 군 장교들과 공모해 아버지를 공격하고 쿠데타 시도를 모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인권변호사들은 키신저와 미국 관리들을 남미 지역의 정치적 억압을 위해 '콘도르 작전(Operation Condor)'이라고 불린 비밀 프로그램의 조직을 지원한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이 작전의 일부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파라과이 우루과이의 우익 독재정권들이 70년대 망명중이었던 그들의 정적 수백명을 납치해 살해하는 데 공조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키신저 개입 수사중**
아르헨티나 또한 콘도르 작전과 관련된 미국의 지원과 개입사실을 수사중이다.
로돌포 카시오바 코랄 판사는 키신저를 유력한 "피고인 또는 용의자"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외국 법정이 전 미국 관리들을 불러 진술하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키신저의 프랑스 방문중 한 판사가 호텔에 경찰을 보내 칠레의 쿠데타와 관련한 미국의 개입문제에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칠레 쿠데타 당시 프랑스 시민들도 실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신저는 소환장에 응하기를 거부하고 그 문제는 국무부에 조회하라며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인권 변호사 위원회의 국제정의 프로그램 감독관인 브루스 브룸홀씨는 "키신저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두 번 생각해야만 하는 많은 관리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이제는 분명해졌다"며 "미국의 장관이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됐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겠지만 (피노체트 사건의 결과로) 시대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키신저, 남미 여행 취소**
이같은 소동은 키신저로 하여금 예정된 브라질 여행을 취소케 했다.
그는 지난 13일 상파울로에서 강의가 예정돼있었고 정부 메달을 수여받기로 돼 있었으나, 상파울로의 좌익그룹이 그의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를 계획하고 판사와 검사들에게 콘도르 작전에 대한 질의를 위해 그를 구류할 것을 요구하자 방문을 취소한 것이다.
뉴육에 있는 키신저 협회 대변인은 방문계획의 변경이 "스케줄상의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키신저 방문행사를 기획했던 소벨은 "키신저나 그를 초대한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정치적으로 불편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키신저에게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했고 그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이 방법이 그를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발생가능한 문제를 피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화인터뷰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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