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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공약 사기' 기획 알면서 국민 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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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공약 사기' 기획 알면서 국민 속였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약집 등으로 되짚은 기초연금 사기 사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공약을 대폭 수정했다. 국가 운영권을 국민에게서 위임받는 대통령 선거에서 내놓은, 노후 복지의 핵심인 기초연금 공약을 이렇게 뒤집을 수 있다는 게 놀랍고 황당하다. 현재 20~50대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나중에 현행 기초노령연금 제도보다도 삭감된 금액을 받게 될 것이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준다는 대선 공약이 이렇게 되돌아올 줄,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일까? 국민들? 연금 전문가들? 아니다. 이 기초연금 공약을 만든 박근혜 대통령과 캠프 사람들이다.

오늘의 기초연금 '사건'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들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지만 "세계 경제 침체와 맞물려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세수 부족과 재정 건전성의 고삐를 쥐어야 하는 현실에서 불가피했다"고.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경제 상황이 악화돼서 불가피하게 공약을 수정했다는 설명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캠프 사람들은 애초 기초연금 공약을 지킬 의사가 없었다. 기초연금 공약 수정은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사전에 준비된 기획 '사건'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지난 1월 9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약 소요액 131조 원에 기초연금 재정은 포함되어 있을까?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선거를 8일 앞두고 발표한 최종 공약집에는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증증 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A값의 10%) 지급"이라고 명시되어 있다(2013년 기준 금액 20만 원). 이 공약을 이행하려면 얼마를 준비해야 할까?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추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4-2017년 전체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할 때 필요한 돈이 총 60.3조 원이다. 같은 기간 현행 기초노령연금을 유지할 때 드는 재정은 26.9조 원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 공약대로 기초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돈이 33.4조 원이다. 이 중 중앙정부 몫이 약 75%이므로 박근혜 후보가 공약 이행을 위해 마련해야 할 재정은 25.1조 원이 된다(장애인연금 2배 인상에 따른 추가 소요액을 포함하면 최대 30조 원에 이르나, 이 글에선 25조 원을 기준으로 서술하겠음).

박근혜 후보는 최종 공약집에서 공약 이행을 위해 임기 중 필요한 재정 규모를 131.4조 원으로 밝혔다(올해 5월 발표한 공약가계부에서 135조 원으로 조정). 그렇다면 기초연금 공약 이행을 위한 돈 25조 원이 전체 필요 재정 131.4조 원에 온전히 포함되어 있을까?

아니다. 박근혜 후보가 최종 공약집을 발표하고 새누리당 홈페이지에 공개한 공약 항목별 재정 소요액을 보면 임기 중 기초연금 공약 이행을 위한 추가 재정으로 14.7조 원만 책정되어 있다. 최소 25조 원이어야 할 필요재정이 14.7조 원만 계산되어 있는 것이다. 공약을 이행하는 데 약 10조 원이 부족하다.

▲ <표> 박근혜 후보의 복지 공약별 재정 소요액 (단위: 억 원). 출처 : 박근혜 후보, "대선 공약 자료" (2012년 12월 11일)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음부터 기초연금 공약을 '공약대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60% 수준만 실행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기초연금 공약을 지킬 의사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국민들은 모두 20만 원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건만 정작 공약을 만든 사람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기획된 '사건'이었다.

그들만 아는 '암호',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 운영'

박근혜 후보와 캠프 사람들은 어떻게 최소 25조 원이 필요한 기초연금 공약을 15조 원으로 감당하려 했을까? 이들은 자신들만이 아는 '암호'를 공약집에 표시해 두었다. 바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 운영'이라는 문구이다. 나중에 왜 공약을 지키지 않느냐 비판하면, 이 문구를 근거로 우리 기초연금 공약은 국민연금와 연계해 기초연금을 20만 원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고, 즉 국민연금 가입자는 차등 지급하는 내용이라고 말하겠다는 것이다.

출처 : 박근혜 후보의 공약 자료집 (2012년 12월 10일)

국민연금 급여 산식을 보면, 연금액은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균등연금액'과 가입자 소득에 비례해 산출되는 '비례연금액'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월 소득 200만 원 소득자가 국민연금에 20년 가입해 40만 원의 연금액을 받는다면, 이 금액은 균등연금액 20만 원과 비례연금액 20만 원으로 나눌 수 있다.

박근혜 후보 캠프는 기초연금 20만 원을 '통합 운영' 방식으로 주겠다고 설계했다. 현재 기초노령연금 10만 원을 20만 원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기초노령연금 10만 원과 국민연금의 균등연금액을 합하여 20만 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연금 가입자는 이미 자신이 받을 예정인 국민연금의 균등액만큼 기초연금 20만 원에서 차감당하게 된다.

박근혜 후보는 이 암호의 내용을 몰랐을까? 알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 3일 전인 지난해 12월 16일에 열린 3차 TV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을 약속하면서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 체제에 포함시켜서 그렇게 되면 비용도 줄일 수 있고"라고 덧붙인다. 일반 국민들로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지만, 박 후보는 내용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박근혜, 당선되고 나서야 기초연금 공약 실체 공개

박근혜 대통령이 이 암호의 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한 것은 '당선 이후'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올해 1월 28일 인수위 고용·복지 분과 국정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기초연금 공약의 실체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국민연금에 가입되지 않아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들이 문제인데, 이분들에게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깔아 주고, 그 다음에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는 분들에 대해선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기초(균등연금액을 의미. <필자>) 부분에다가, 국민연금에 기초연금적인 성격이 있지 않나. 기초연금 부분에다가, 그게 20만 원이 안 되니까 20만 원이 안 되는 부분만큼 재정으로 채워주는 방식으로 하면 국민연금 기금의 장기 안정성에도 변함이 없고, 연금 가입자들도 추가적인 보험료 부담 없이 현행 수준 이상의 연금 합계액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손해 보는 게 전혀 아니다. 지금 기초 부분이 20만 원이 안 된다. 기초 부분에 10만 원 정도를 더 얹게 되는 거다. 그런데 그것을 20만 원을 다 하게 되면 중복이 되니까 그렇다."

이제야 국민들은 박근혜 후보의 기초연금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온 나라가 기초연금 공약 파기 논란으로 홍역을 겪고 있다.

언제까지 국민 우롱할 건가

이게 내가 파악한 박근혜 후보 기초연금 '사건'의 전모다.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치고 공약집에 나온 '통합 운영'이라는 문구를 보고 이것을 기초연금 차등 지급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두 기초연금을 20만 원 받는 것으로 생각했고, 거리마다 걸린 새누리당 현수막도 그렇게 적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와 캠프 사람들은 자신의 '암호'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국민들이 모두 기초노령연금만으로 20만 원 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대통령 후보가 선거 이전에는 자신들만이 아는 '암호'로 유권자들을 속인 후, 당선되고 나서야 그 내용을 알린다면 이러한 행위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공약 사기'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말한다. 세계 경제 침체와 세수 부족으로 불가피한 수정이었다고, "공약을 포기한 것이 아니고, 국민과 약속인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 변함이 없다"고. 이 국민 우롱이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 지난주 내만복 칼럼은 영상으로 제작된 '내만복 보이는 칼럼'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 바로 가기 http://mywelfare.or.kr/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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