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조합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노골적으로 말해, 공영방송 조합원들의 투쟁은 아무리 길어지더라도 정권이 바뀐다면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정은 다르다. 한국 개신교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조용기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목사 일가를 상대로 싸우기 때문이다. 어느덧 파업 100일을 향해 질주하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조합원들의 기도회가 예정된 목요일 저녁, 국민일보 조합원들을 찾았다. 석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해직 조합원(노조위원장)의 복직은 난망하고, 경영진이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조합원들은 여전히 뚝심을 잃지 않고 파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하루를 돌아봤다. <편집자>
▲국민일보 노조도 <제대로 뉴스데스크>, <Reset KBS 9뉴스>처럼 파업 언론을 만든다. 주간웹진은 종교기사를 통해 국민일보 노조만의 색깔을 보여줄 예정이다. 웹진 제작팀이 종교면 편집회의를 갖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OOO교수라고 있어요. 종교개혁 주장하고, 교회 세습 비판하는 분이라 당시 '킬(기사화 하지 않음)'했거든요. 웹진에서 다루면 어떨까 싶어요."
"음, 맞아. 좋네."
"'아, 이거 얘기가 안 돼서 킬한다' 그러면 할 말 없었죠."
"어차피 종교면이 시기를 타는 건 아니니까, 기존에 우리가 왜곡해서 썼던 기사, 다른 데는 다 났는데 우린 입도 벙긋 못했던 기사를 다시 써서 내는 건 어때요?"
"리스트를 뽑잔 말이지?"
"네. 그거죠. 우리가 대형교회 위주로만 쓴 기사 뽑아보는 거죠. 칼럼도 냈으면 좋겠어요."
22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CCMM빌딩 5층의 국민일보사 회의실이 열기로 후끈거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국민일보·씨티에스지부(위원장 조상운) 조합원 다섯 명이 기사 발제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기자들이 신문을 제작하고 있었고, 바로 옆에는 이날도 어김없이 출근한 '해직자' 조상운 노조위원장이 노조 사무실에서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의실은 노조 사무실에 조금 더 가깝다.
국민일보 조합원들은 국민일보판 파업뉴스 웹진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다음 주 중 첫 호가 발행될 주간 웹진 제작팀은 크게 3개 팀으로 나뉘어 있다. 1, 2팀이 정치·경제·사회 기사를 다룬다면, 3팀은 종교기사 제작에 집중한다. 편집조합원 3명을 포함해 스무 명이 약간 되지 않는 이들이 새로운 <국민일보> 제작에 나섰다.
회의실에서 만난 이들은 종교팀이다. <국민일보> 지면에서 가장 큰 비판을 받아왔던 종교면에 대한 반성을 웹진에 가득 담을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서만 약 8건의 아이템이 선정됐다. 그 중에는 조용기 원로목사 일가에 치중했던 <국민일보> 지면을 비판하는 기사도 준비돼 있다.
▲국민일보 노조는 조사무엘민제 사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킨 국민문화재단 이사회의 결정을 '조용기 일가 국민일보 사유화 인정'으로 규정, 진정한 목회자의 신문으로 거듭나도록 조합의 요구를 들어주길 요구하고 있다. 반대편에는 노조의 파업을 규탄하는 국민문화재단과 논설위원들의 성명서가 걸려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국민일보판 '제대로 뉴스' 나온다
<국민일보>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목회자들의 헌금으로 창간한 신문이다. 다른 종합일간지와 달리 종교면 '미션라이프'가 따로 제작된다. 경영-편집으로 이원화되기 마련인 다른 매체와 달리 편집국에 독립된 종교국이 종교 지면을 제작한다.
노조 웹진의 종교팀을 이끄는 전병선 조합원(종교국 아이미션라이프)은 "<국민일보>의 종교국은 제대로 된 기독 언론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며 "비록 우리가 (파업으로 인해) 편집국 밖에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기독언론의 참모습을 웹진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민일보>의 종교면은 노조가 파업 과정에서 강조한 '편집권 독립'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 지나치게 대형교회를 소개하는 기사로 치우쳤고, 조 원로목사 일가 우상화와 대형교회 광고 기사에 매몰됐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노조가 파업(2011년 12월 23일)에 돌입하기 전인 지난해 11월 10일 <국민일보> 공정보도위원회가 낸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7월 8일부터 같은 해 11월 8일까지 4개월간 조 원로목사와 관련한 행사 동정 기사는 총 24회 게재됐다. 신문이 발행된 날(104일)을 따져보면, 나흘에 한 번 꼴로 조 목사가 <국민일보> 지면에 등장한 셈이다. 그 24회의 등장 중 13번이 '미션라이프' 지면 톱이었다.
특히 '미션라이프'의 조 원로목사 찬양 논조, 교회 부패의 비판기능 약화는 이승한 종교국장이 취임한 이후 더 짙어졌다고 노조는 지적한다. 공정위 보고서에 따르면 이 국장은 조 원로목사의 지방 집회를 자주 따라다녔고, 그가 쫓아간 지방 집회는 "예외없이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교회의 세속화를 비판하는 아이템이 기사화에 실패한 사례도 잦았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실행위의 개혁 정관 폐기 사태를 비판하는 기사는 지면에 실리지 못했고, 목회자의 세속화를 비판한 강연 게재는 발제 과정에서 기사화에 실패했다.
전 조합원은 웹진 제작 회의에서 "<국민일보>는 (개신교의) 좋은 것만 다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한기총의 실제 모습도 보도하지 못했다"며 "실제 한기총의 모습을 (웹진이) 가감 없이 다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의는 한 시간이 넘도록 진행됐다.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한 파업 언론인의 말과는 달리, 전 조합원은 회의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2년차 양민경 조합원은 농담 섞인 발제를 연신 해댔고, 5년차 박유리 조합원은 "종교는 잘 모른다"고 손사레를 치며 칼럼란을 담당하겠다고 했다. 이 조합원들은 오랜만에 닫아놓았던 노트북을 펴게 될 것이다.
▲국민일보 노조조합원들이 촛불기도회를 갖고 있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기도회를 열어 결속을 다지고, 하나님이 노조의 파업에 힘을 실어주길 기원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정의에 굶주린 기자들
저녁 7시가 다가오는 시각, 노조 집행부가 구입한 인근 건설회사 식권으로 저녁을 해결한 조합원들이 편집국 앞 복도에 현수막을 붙이고 있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식사 한 끼도 조합원들에겐 큰 부담이 됐다(하단 상자기사 참고). "한국 교회 갱신을 위한 부르심, 국민일보가 먼저 변하겠습니다"는 글귀가 씌여진 현수막은 파업 돌입 이후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조합원들이 여는 촛불기도회를 위해 마련됐다.
현수막을 붙이는 전 조합원의 뒤로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선배 기자가 지나갔다. "한국 교회 갱신을…." 어색한 인사를 뒤로 하고 전 조합원은 기도회 준비를 서둘렀고, 선배는 퇴근길을 서둘렀다. 이성규 노조 사무국장이 스피커 장비를 설치했다. 조합원들이 속속 기도회를 찾았다.
이날 기도회는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의 참여로 이어졌다. 매주 다양한 이들이 노조를 찾는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기자들을 '위로방문'했고, 시민단체 관계자, 종교인들이 이들을 위로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정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낭독한 후 기도회가 시작됐다. 한기연의 이인건 학생은 "국민일보의 파업은 우리 사회에 기독교가 낸 상처가 결국 터진 것"이라며 "한국 사회의 기독교 문제를 해결하는데 공헌한 파업으로 기억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을 찾았다.
온국민 기도 네트워크의 정진훈 목사는 금식 기도를 한 경험을 전해주며 끝 모를 파업을 이어가는 조합원들을 위로했다. 정 목사는 "여러분은 의(정의)에 주린 게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고 있다"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복이 있다. 여러분은 복된 길을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도회를 마친 조합원들은 사옥을 나가 촛불을 밝혔다. 정의에 굶주린 기자들이 어둑해진 밤을 환히 밝혔다. 91일째 파업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종료시간 없는 축구경기 어느새 파업 100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 사이 가정이 있는 조합원 일부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고, 일부 조합원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 사이 변한 건 조민제 사장이 회장으로 승진한 것뿐이다. 아직 파업이 성공적으로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5년차 기자인 박유리 조합원(특집기획부)은 "돈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크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종료시간조차 없는 축구경기에서 그라운드를 누비는 축구선수들"이라고 말했다. 기자생활 2년차인 이사야 조합원(종교국)은 최근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다. 아직은 그간의 저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서서히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 이 조합원의 동기도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는 부양가족이 없어 그나마 부담이 덜한 편이다. 이 조합원은 "(파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생각이 바뀐다"면서도 파업에서 얻는 게 없이는 업무에 복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만약 이대로 파업을 접고 들어갔을 때, 그 후 상황을 견디면서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때문"이라는 게다. 당장은 지출을 줄이게 됐다. 대중교통이 부담스러워졌고, 밥값도 걱정스럽다. 2년차 기자 양민경 조합원(종교국)은 "당장 일할 때의 생활 흐름이 바뀔 수밖에 없다. 나이가 있으니 부모님께 손 벌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아르바이트를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세 조합원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직장생활에서 으레 그렇듯, 선배인 박 조합원이 두 후배의 저녁을 샀다. "괜찮겠느냐"며 거절하는 후배들은 거절했었단다. 파업의 여파는 노동자의 삶에 서서히 스며든다. "파업을 80일이 아니라 1000일을 해서도 얻어진 결과가 '도로 조용기 목사'라면 승리한 것도, 회복된 것도 아니다"라는 이진오 인천 더함공동체 교회 목사의 독려가 무색하게, 파업에 나선 조합원들은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힘든 싸움을 하는 이들이지만, 아직 파업 이탈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을 여태껏 버티게 하는 힘은 주위의 격려다. 그간 '미션라이프'에 보도되기 힘들었던 '블랙리스트' 목회자들이 조합원들을 돕는다. 지난 파업 대부흥회에서 확인했듯, 개신교의 변화를 바라는 많은 이들이 파업에 나선 조합원들을 힘껏 격려한다. 노조는 파업을 이어가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는 팀을 꾸렸다. 한국 교회를 바꾸자는 기대가 파업 노동자들의 어깨에 앉았다. 이들이 한국판 '종교개혁'의 선봉에 선 셈이다. 이 조합원은 "MBC 노조가 장충체육관에서 연 파업콘서트를 보고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외롭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면서도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훨씬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파업 대부흥회 때도 큰 격려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새로 얻는 깨달음도 있다. 박 조합원은 "우리가 이 정도로 힘든데, (언론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자들은 얼마나 힘들겠느냐. 그나마 우리는 빌딩 내부의 복도에서 농성할 수 있고, 의사결정자들과 전화 통화라도 할 수 있다"며 "그 사이에 재능교육 노동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투쟁을 하고 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노동자의 현실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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