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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와 기업가를 대변하는 언론들, 사회가 썩고 있다"

[해외시각] 머독 언론사 도청 파문과 한진중공업 보도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의 타블로이드 주간지 <뉴스오브더월드>가 지난 10일 폐간했다. 수년 전부터 정치인나 연예인의 통화 기록을 해킹하면서 비난에 시달린 이 신문은 최근 범죄 피해자나 미성년자의 휴대전화까지 해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태는 주간지 하나를 '꼬리자르기' 식으로 폐간한다고 해서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뉴스오브더월드>가 경찰관에게 뇌물을 주고 왕실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아내는가 하면, <선데이타임스> 등이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의 개인 정보를 추적했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이제는 머독의 언론 운영 방식, 나아가 영국 언론의 신뢰성 자체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전세계 700여개의 매체를 거느리고 있고, 영국에서도 인기있는 정론지를 인수해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머독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머독과 같은 사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론이 불법 행위와 편파 보도를 자행하는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가디언>의 유명 칼럼니스트 조지 몬비오(George Monbiot)는 11일 칼럼에서 기자들을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권력을 감시해야할 언론이 스스로 권력과 야합하고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독자들이 나서서 그들에게 본연의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지 몬비오의 통렬한 비판은 비단 영국의 일부 언론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 듯하다. 권력과 협잡하고 부정을 저지르는 방식만 다를 뿐, 정치·경제적 특권층의 이익을 '공익'으로 둔갑시키는 본질적인 문제는 세계의 많은 언론들이 가지고 있다.


한국의 언론도 해외 언론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최근 한국에서도 <KBS>가 민주당 비공개 회의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 9일 정리해고 갈등을 빚고 있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은 시민들이 경찰에 강제 진압당한 소식은 국내 언론보다 외국 언론이 더 자세히 보도했을 정도다.

<CNN>은 11일 한진중공업 사태를 전하면서 시민들이 쇼셜미디어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의 언론은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이제 한국 언론에 각성을 촉구하기보다 <르몽드>나 <알자지라> 같은 세계적인 언론에 소개되는 소식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사주의 이익이나 광고주와의 이해관계, 특수 이익에 대한 옹호에 매몰돼 독자를 외면하는 매체가 잃은 신뢰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밖에 없다. 이제 시작된 머독의 위기가 한국 언론에 타산지석이 될지 관심이 모인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원문 보기)

▲ 지난 10일을 끝으로 폐간한 영국 타블로이드 주간지 <뉴스오브더월드> 마지막 호. ⓒ로이터=뉴시스

썩은 언론, 기자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필요하다

머독은 이제 영국에서 끝장났나? <선데이타임스>와 <더 선>이 고든 브라운 전 총리의 통화마저 해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해킹 스캔들은 그 늙은이[머독]가 거느리는 왕국의 새로운 곳으로 퍼지고 있고, 마치 베를린 장벽 붕괴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장애인 아들의 의료 기록 해킹을 포함해 어떻게든 브라운 전 총리를 파멸시키려는 노골적인 시도는 이 사건이 일으킨 파문의 끝이 어딘지를 의심케 한다.

이 스캔들은 정치가 돌아가는 과정, 기업의 힘이 민주주의에 가하는 위험, 너무 깊게 끌려들어가 마치 머독의 사병처럼 보이기 시작한 런던의 경찰을 언론이 어떻게 더럽히고 부패시켰는지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이 스캔들은 멍청한 의회에 타격을 가했고, 책임은 거의 지지 않으면서 가장 부패한 직업군인 영국의 언론계가 뒤늦게 대중들의 철저한 조사를 받도록 했다.

그 균열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일 <텔레그래프>의 우파 칼럼니스트 자네트 데일리의 고백은 주목할만 하다.

"영국의 정치 저널리즘은 기본적으로 정치인과 기자가 함께 소속된 클럽이다. 이 친근함과 친밀감, 독점적 지위의 공유가 바로 정치 부패의 진정한 원인이다.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에 대한 자체적인 검열, 특수한 기득권이 정면으로 맞서기에 너무 강력하다고 인정하는 자기강화적(self-reinforcing) 비겁함…이러한 모든 것들은 민주주의에 끊임없는 위험이다."

전국적인 문제를 다루는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그들이 견제(hold to account)하도록 되어 있는 이들의 신념과 문화 속에 깊이 연루되어 있고 빠져 있다. 그들은 엘리트들의 권력투쟁에만 시선을 두고 있고, 엘리트와 피지배계층 사이의 갈등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그들은 권력자들을 칭송하고 권력이 없는 자들을 무시한다.

그러나 이건 단지 문제의 일부다. 데일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거론하지 않고 펜을 멈췄다. 언론사주와 그가 속한 계급의 이익을 말하지는 않은 것이다. 언론사주는 편집인을 뽑을 때 기자들에게 자신의 관점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을 지명한다. [하지만] 머독의 편집자들은 [머독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은 머독의 편집자들이 일치된 관점을 가졌다는 사실로 볼 때 거짓말이다. (머독의 뉴스코프가 가지고 있는 언론사에 소속된 247명의 편집인들 전원이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지 않았나?) 또한 그런 주장은 2008년 앤드류 닐 <선데이타임스>의 전 편집장이 머독의 편집 개입 행태를 폭로하면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머독이 소유한] 신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백만장자의 관심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밝힐 수는 없다. 그들은 대중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더 선>, <더 메일>, <더 익스프레스>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은 사주의 이익과 동일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우파 신문들은 영국 의원들의 주택수당 부당 청구 문제를 끝없이 보도하지만 기업들의 탈세에 대해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동조합과 <BBC>를 맹비난한다. 기업의 힘을 제한하는 규제를 비판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권력과 돈, 이미지와 명성에 대한 숭배 같은 외적 가치를 끊임없이 가르친다. 광고주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만, 그로 인해 영국은 천박하고 이기적인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우파 언론들의 대부분은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해 독자를 기만한다. 노동자들의 목표가 아니다. 신문을 소유한 백만장자가 신문에 명령한 목표다.

미디어 기업은 거대한 여론조작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엘리트의 이익에 봉무하는 가짜 풀뿌리 운동가다. 이 점에서 미디어 기업들은 미국의 우파 시민운동 티파티(Tea Party)와 유사하다. 티파티는 엘리트에 저항하는 미국 노동자 계층의 자발적인 궐기라고 주장하지만 억만장자 코치 형제[티파티에 많은 자금을 지원하는 석유화학업체 코치인터스트리스의 찰스 코치와 데이비드 코치]의 도움으로 세워졌고 머독이 소유한 <폭스뉴스>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저널리즘의 최우선 목표는 권력 견제다. 이 목표는 완벽하게 뒤집혔다. 칼럼니스트와 블로거들은 기업 권력의 집행자로 고용되고, 그러한 이해관계에 비판적인 이들을 공격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짓밟고, 힘없는 자들을 겁박한다. 언론 귀족들은 때때로 정부가 저소득층의 이익을 꾀하는 걸 허용하지만 결코 부유층의 이익을 막도록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또한 다른 미디어를 길들이려고 한다.

<BBC>는 지난 30년간 배짱 있는 방송이었지만 지금은 대기업에 알랑방구를 낀다. 매일 아침 6시15분에 방영되는 <오늘>의 기업 보도는 경영자들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허락한다. 프로그램의 나머지 부분은 논쟁거리를 찾아 찬반을 논하지만, 경영자들이 직접 비판자들과 대면하지는 않게 한다.

무엇을 할 수 있나? 미디어 기업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 기업 내 다수파의 이익을 분산시키고, 하원 의회가 지명한 이사회로 하여금 주주들의 사업적 이해관계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러기까지는 까마득한 이야기다. 현재로서 가장 큰 희망은 독자들을 동원해 기자들이 언론사주가 아닌 독자들의 물음에 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저널리스트들이 일종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음은 그 선서의 초안이다. 다른 이들이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기자협회 빌딩에 이 선서가 걸리고, 회원들이 서명하도록 하는 모습을 봤으면 한다.

"우리의 1차적인 임무는 권력 견제다. 우리는 권력의 이해관계를 폭로하는 기사와 이슈를 우선시할 것이다. 우리는 부자 및 권력자와의 관계를 경계하고 그들과 연루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치가나 기업 등 지배 세력에 대한 밀착 취재를 포기한다거나 그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기사를 왜곡함으로써 그들에게 아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일하고 있는 기업과 광고주들의 이해관계에 맞설 것이다. 우리는 결코 특정 의견을 퍼트려 돈을 취하지 않고 한쪽 의견을 받아들라고 강요하는 시도에 저항할 것이다.

우리가 행사하는 힘과 그 힘의 원천을 인식하고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큼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세계관에 대해 자문할 것이다. 우리가 잘못되었다면, 잘못됐다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선서가 신문을 지배하는 권력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선서는 기자들이 독립성의 척도를 확고히 하고 독자들이 그들로 하여금 그 기준에 따르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유권자들이 의원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대표하라고 하지 당 수뇌부를 대변하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독자들도 기자들을 편집자의 요구로부터 떨어트리려 애써야 한다. 그 선서는 독자의 힘을 강화하는 도구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라. 뭔가는 바뀌어야 한다. 다시는 한 줌의 과두집단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부패하게 해서는 안 된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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