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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대 민주주의'…盧 지지해서 행복해졌나?

최장집 "무능한 '노무현당',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과연 '양극화'를 부채질했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정부를 운영하는 데 '무능'했는가?

이런 질문에 일관되게 '그렇다'고 단언해 온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과) 등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반박하고 나선 것을 계기로 이른바 '진보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 교수가 노 대통령의 주장을 조목조목 재반박하는 글 두 편을 거의 동시에 발표했다. 최 교수는 본인이 공언한 대로 노 대통령의 글에 직접 대응하는 대신 학자답게 '민주주의'에 대한 글로 답했다.

최장집의 민주주의 vs 노무현의 민주주의

최장집 교수는 곧 출간될 <비평> 2007년 봄호(제14호)에 기고한 '정치적 민주화 :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와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펴낸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후마니타스 펴냄)에 실린 글('민주주의 실천이 진보 출발점')을 통해 최근 노 대통령의 개입으로 촉발된 이른바 '진보 논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이 두 편의 글은 모두 노 대통령이 진보·개혁 세력을 비판하기 전에 작성된 글이다. 그러나 최 교수의 한 지인은 "한국 민주주의를 화두로 최 교수의 최근 생각을 정리한 이 두 편의 글은 노 대통령의 편협한 민주주의관에 대한 최 교수의 비판으로 읽혀도 손색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 교수는 <비평>에 실린 글을 "민주주의란 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 자체가 갈등이 되고 투쟁이 되는 논쟁적 성격을 갖는 정치체제라 정의할 수 있다"는 말로 시작했다. 최 교수가 "노무현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말할 때의 그 '민주주의'가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최 교수가 보기에 한국 사회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두 가지 상(像)이 있다.

한 가지는 제도적 수준에서 권위주의로부터 탈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민주주의다. 최 교수는 이것을 "민주주의란 사회경제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권위주의 산업화로부터 비롯된 성장주의를 추수하면 된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이런 민주주의에서 선출된 정부의 역할이란 "경제정책의 기본노선으로서 성장지상주의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또 다른 상은 "선출된 민주정부가 권위주의 시기의 성장지상주의와는 다른 형태, 다른 내용의 경제 정책을 만들고 이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선거 경쟁을 통해 다수의 지지에 의해 선출된 정부는 그 지지자들의 요구와 이익을 담을 수 있는 "균형성장, 사회복지 및 배분적 가치를 결합한 '민주적으로 조율된 시장경제'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의 민주주의, 재벌중심-노동배제 성장주의 추종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노무현 정부는 후자보다는 전자를 선택했다. 최장집 교수는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민주정부는 전자의 방향을 선택했다"며 "그 결과 사회의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증대함으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은 권위주의 시기보다 더 악화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요컨대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에 있어서는 재벌중심-노동배제를 핵심으로 했던 권위주의와 다른 커다란 변화가 없다"고 단언했다. 최 교수는 "흥미로운 점은 민주정부의 집권 세력 스스로가 그들의 정당성이 약화되고 있는 것처럼 인식하면서 성장주의 기치를 더욱 높게 들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만약 한국 사회가 반부패·탈권위 수준의 민주주의에 만족할 경우, 제도적 수준의 민주주의마저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갖는 불평등 효과를 정치적으로 완화하는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소수의 엘리트 집단, 소수 강자의 이익과 요구를 실현하는 체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를 "민주주의라는 이유만으로 체제가 스스로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라며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의 사회경제적 권익을 대표하고 이를 지켜주지 못할 때, 그 체제는 언제든지 (히틀러와 같은) 데마고그(선동가)에 의해 지배되면서 타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최 교수의 지적은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 심화가 노무현 정부의 책임은 아니다"고 반발한 데 대한 비판으로도 들린다. 즉 노무현 정부도 김대중 정부 등 앞선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 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데 대해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재벌중심-노동배제-개방맹신의 성장지상주의를 추수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무능한 노무현의 민주주의…관료 통제 못 해

이어 최장집 교수는 자신이 노무현 정부를 왜 무능하고 실패한 정부로 평가하는지를 꼼꼼히 설명했다.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권위주의 시기 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국가기구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대면하게 됐다"며 "그러나 민주정부는 이 문제를 다루는데 결코 효과적이고 유능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민주 정부는 방대한 관료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리더십과 능력을 갖지 못했다"며 "권위주의 하에서 장기간 정부 운영과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던 야당 정치인과 민주화 운동권 인사들은 민주화로 인하여 그들이 집권했을 때 방대한 국가기구를 운영할 학습 경험을 갖지 못했고, 그것은 민주 정부의 무능력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민주 정부는 구 권위주의 시기와 상이한 정책 목표를 천명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레토릭(수사)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며 "그러는 동안 실제의 정책 결정과 수행은 관료에 의존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결과 정책의 목표와 정치적 레토릭은 개혁적이나, 실제 정책은 야당이 집권했을 때와 차이가 없는 보수적이라는 모순이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 교수는 이렇게 민주정부의 관료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면서 관료 기구가 "자신의 영역에서 각자의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강한 이익집단과 결탁하는 상황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민주화가 관료 기구의 민주화를 그대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관료 기구와 같은 국가 기구의 민주적 통제에 대한 관심을 특별히 촉구했다.

최 교수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어떻게 국가의 행정 관료 체제를 민주적으로 통제·관리하며 이를 통해 국민의 보편적 시민권을 실현하고 사회경제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또 다른 민주주의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런 강조는 "탈권위주의를 실현했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이 안고 있는 한계를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요컨대, 최 교수가 보기에 민주주의에서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은 자신을 선출한 보통 사람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정책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그런 정책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관료 기구를 통제·관리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이런 역할은 방기한 채 말로만 개혁을 외쳐 왔다는 얘기가 된다.

'노무현의 민주주의',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아

최장집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 관료기구에 대한 통제와 더불어 사회의 중심적 균열과 갈등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대중 당', '김영삼 당', '노무현 당'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삶의 조건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서로 경쟁하는 체제가 성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두 경쟁하는 정당은 모두 경제 성장을 최우선의 정책 목표로 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경제 정책의 기조로 하면서, 과거 권위주의적 성장 정책과 동일하게 재벌기업을 성장의 중심동력으로 삼고, 노동자·농민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정책을 추구하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똑같은 두 정당이 왜 죽기 살기로 갈등을 하는 것일까? 최 교수는 "두 정당이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갈등'에 집착하고 있는 탓"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한국 사회는 한미관계, 대북관계, 한일관계 등 이데올로기,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처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갈등'에 치중해 왔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만(Albert O. Hirschman)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갈등을 크게 '나누는 것이 가능한 갈등'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갈등'으로 구분했다.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나누는 것이 가능한 갈등'인 반면에 인종, 언어, 종교, 이데올로기는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갈등'이기 때문에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특성을 갖는다.

최 교수는 "민주화, 산업화의 결과로 발생하는 노동, 복지문제와 같은 사회경제적 갈등은 협상과 조정이 가능하고 타협의 예술이 효과를 갖는 영역"이라며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런 갈등마저도 '자본주의/사회주의', '국가/시장', '기업/반기업', '세계화/반세계화'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내세우며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갈등'으로 증폭시켰다"고 꼬집었다. 이런 소모전의 한 가운데에 바로 노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런 상황이 계속될 때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 제도는 선출된 공직자와 그를 선출하는 투표자 간의 관계, 즉 정부는 정당을 매개로 그를 선출해 준 지지 세력을 대표하고 선출된 후 그들에게 그의 공직 수행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핵심축으로 한다"며 정당과 의회를 배제한 채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은 항상 권위주의로 발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과연 지금 행복한가?

결론적으로 최장집 교수는 한 번 더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자신의 민주주의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오늘의 관심은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 효과를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로 옮겨져야 한다"며 "만약 이 체제를 통하여 보통 사람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장점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입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강조하더라도 정작 그를 2002년에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던 보통 사람들이 더 불행해졌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실패한 민주주의'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는 가난한 보통 사람의 이익과 관심을 통합해 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한 번 더 강조했다.
진보·개혁 세력, 언제까지 '운동' 타령만 할 건가?

최장집 교수는 최근 "다시 운동에 나서자"며 시민사회의 사회운동 역량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이와는 다른 대안적 실천을 강조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정당 정치의 제도화'에 방점을 찍는 최 교수를 비판해 왔다.

최 교수는 <열광과 절망>에 실린 글('민주주의 실천이 진보 출발점')에서 "민주주의를 좀 더 실질화하고 제도적으로 실천 가능하게 만드는 문제를 부정하면서 '다시 운동에 나서자'는 관성화된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 글은 애초 <경향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최 교수가 책을 위해 다시 고쳐 쓴 것이다.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경험을 통해 우리는 시민사회에서의 운동이 (기성 체제의 헤게모니에) 대항해 대안적 비전이나 가치를 구체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매우 큰 한계가 있음을 보게 됐다"며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그간의 시민운동은 주변에서 새로운 형태의 엘리트주의를 실현했던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이후 시민운동은 그들의 중산층적 비전이나 가치와 동떨어진 노동 문제나 사회 저변층 및 소외 계층의 삶의 문제를 절박하게 인식하고 이를 정치와 민주주의의 방법으로 개선해 가려는 관심과 의지를 강하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비판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더 나아가 "그들이 운동의 도덕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했던 반정치-반정당 이데올로기가 미친 부정적 영향 역시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라며 "갈등의 범위가 큰 사회 균열(사회경제적 의제)이 정당의 형태로 조직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방법론을 둘러싼 논란이 국가 권력을 향한 정치 경쟁의 중심 이슈로 부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운동성의 복원을 그 어떤 급진적 언어로 강조한다 해도, 이 문제를 경시한다면 기성 체제의 헤게모니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또 "정당 발전이 지체되고 있는 것을 사회·경제적 토대나 하부 구조의 문제로 환원해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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