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브리핑은 노 대통령이 서울에 도착하기 직전인 17일 오전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진보적 가치 실현 위해선 유연성과 책임성 중요'라는 글을 게재했다.
자신이 유럽 순방을 떠나기 전에 직접 작성한 200자 원고지 35매 분량의 이 글에서 노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을 반박하며 "우리나라가 진보진영만 사는 나라냐"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려운 처지의 저와 참여정부를 흔들고 깎아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역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저는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서 자신을 진보진영의 일원으로 포함시켰다.
노 대통령의 이번 글은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 일부 진보지식인에 대한 직접적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나도 사구체 논쟁, '국독자' '식반봉' 다 안다"
"나도 80년대 초 변호사 시절에 종속이론, 사회구성체이론, 민족경제론을 접하고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젊은 대학교수들을 모셔서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이니,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이니 하는 이론적 조류에 대한 강연을 듣기도 했다"고 강조한 노 대통령은 진보진영의 자신에 대한 비판, 비전 2030 같은 장기적 국정과제에 대한 무관심,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 운동, 한미FTA 반대 등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진보진영은 (개방과 노동유연성을 수용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며 "유럽의 진보진영은 진작부터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노선은 이런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유연한 진보'라고 붙이고 싶다. '교조적 진보'에 대응하는 개념이라 생각하고 붙인 이름"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한국의 진보진영은 교조적이지만 자신과 현 정부는 유럽처럼 유연한 진보라는 주장인 셈.
특히 노 대통령은 "저 때문에 진보진영이 다음 정권을 놓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지금 정권에 대한 지지가 다음 정권을 결정한다면, 지난번에도 정권은 한나라당에 넘어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율도 낮았지만 자신은 정권을 창출하지 않았느냐는 반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저는 다음 정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일도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장집 교수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
청와대브리핑은 이 글의 작성배경에 대해 "최근 진보진영 내에서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글은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 정체성에 대한 논쟁'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논쟁' '진보진영 평가를 둘러싼 논쟁' 등을 보고 솔직한 생각과 의견을 정리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특히 현 정부의 책임과 차기 정부의 성격 등에 대한 최장집-손호철-조희연 세 교수의 최근 논쟁이 노 대통령의 관심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넓게 볼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의 논쟁을 겨냥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특히 그 가운에서도 고려대 최장집 교수에 대한 반론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앞에 언급된 관계자는 "(최 교수가 우리가 못해서)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학자라서 대응하기도 그렇고 해서, 아무도 말 못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나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실 최 교수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각종 언론 기고, 인터뷰 등을 통해 현 정부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최 교수를 향해 청와대 참모들은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현실을 잘 모르는 학자가 말하는데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다"는 반응으로부터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 "말은 누가 못하냐"는 등의 볼멘소리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은 다양했지만 불만은 공통적이었다.
노 대통령의 이날 글에서도 특히 "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여 '지역주의가 별 문제 아니다'거나 '일부 언론권력, 정치언론의 횡포가 별 것 아니다'는 논리까지 나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거나 "참여정부는 지금도 지역주의, 언론권력과 싸우고 있을 뿐, 책임모면이나 '알리바이'를 위해 지역주의나 언론 이야기를 한 일은 없다"는 부분 등은 최 교수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으로 읽힌다.
최 교수는 지난해 9월 <프레시안> 창립 5주년 기념 특별강연에서 "물론 조중동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조중동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기보다 현 정권의 민주주의의 부족이 조중동의 성가를 높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권력을 갖고도 '조중동' 탓을 하는 것은 알리바이일 뿐"이라고 현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최 교수의 이같은 논리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 교수는 최근에는 "정부가 잘못한 일이 많고 투표에서 지면 한나라당이라도 집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한나라당이라서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한편 '진보진영의 논쟁은 대선시기까지 쭉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청와대도 이 논쟁에 적극적으로 계속 참여할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봐도 되냐'는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는 "그런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래도 꼭 할 말이 있으면 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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