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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의 다섯번째 선결조건을 아십니까?

[한미FTA 뜯어보기 217 : 갈림길에 선 FTA 협상(5)] 최경림 FTA국장과 투자자-국가 소송제(Ⅲ)

다시 최경림 자유무역협정(FTA) 국장의 <한겨레> 기고문으로 돌아가 보자. 최 국장이 기고문에서 언급한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중 건강, 안전 그리고 환경과 같은 적법한 공공복지 목적을 수호할 목적으로 구상되고 시행되는 비차별적 규제 정책은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을 두면, 정부가 환경정책이나 보건정책을 실행하는 제약이 없을까?

필자는 변호사로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이라는 규정이 두루뭉술해서만은 아니다. 국제통상법에서 말하는 '차별(discrimination)' 또는 '비차별(non-discrimination)'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쉽게 덤빌 용어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 판례에 따르면 '사실상의(de facto) 차별'도 차별에 해당한다. 즉, 한 국가가 어떤 조치를 취한 결과 그 국가의 기업과 다른 국가의 기업에 서로 다른 경쟁 환경이 조성되는 경우도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Malt Beverage 사건, 캐나다 Alcoholic Drink 사건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의 마이어스(Myers) 판례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정부가 환경호르몬물질(PCB) 반출을 금지한 조치는 미국 기업과 캐나다 기업 모두에 비차별적으로 적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프타 중재인단은 이 조치로 인해 나타난 실제적인 효과를 따졌을 때 미국 기업과 캐나다 기업 사이의 이익이 서로 균형이 맞지 않는 결과가 발생했으므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한국이 외견상으로는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 보건 정책이나 환경 정책을 시행한다고 해도, 중재인단이 그 정책이 낳은 효과가 차별적이라고 판결할 경우 한국 정부는 미국 기업에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투자자의 공격 루트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차별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면 안심해도 좋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투자자의 공격 루트는 널리 열려 있다. 투자자는 한국의 환경 정책이 적법절차 준수조항 등 FTA의 다른 보호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FTA의 간접수용은 줄기세포만큼 복잡한 개념이다. 지면관계상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한미 FTA는 간접수용을 해석할 권한을 양국 행정부 관료들로 구성된 '자유무역위원회'에 부여하고 있다. 이들의 해석이 국제중재기관을 구속한다(나프타 1131.2조, 2001조).

이는 양국 행정부 각료들에게 주어진 해석 권한이 국제중재기관의 그것보다 더 상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법률 해석권한을 법관에게만 부여하는 한국 헌법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행정부 관료들의 FTA해석은 한국 헌법 체계에서는 사법부보다 우월할 수 없다.

게다가 대법원의 판결 그 자체도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대상이 된다. 투자자는 소송 과정에서의 변론이나 심리 절차가 국제법 기준가 위반된다고 생각할 경우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이는 나프타의 일관된 판례다(로엔 사건 결정문 123항, 몬데브 사건 결정문 92항). 이는 한국의 3심제 구조와 양립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짚어 봐야 한다.

WTO도 아직 도입하지 못한 투자자-국가 소송제

헌법만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투기자본에 대한 정당한 통제 수단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의 문제를 재론하지 않더라도,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한국이 종래 국가 성장 전략으로 채택해 왔던 산업정책을 근본적으로 제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점은 캐나다 정부가 자국 우체국의 택배사업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미국 유피에스(UPS)에 제소당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한미 FTA에 포함된다는 사실이 지닌 또 하나의 중대한 의미는 한국이 국제 중재에서 패소할 경우 투자자에게 보상을 해 주지 않으면 미국이 합법적으로 관세 보복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국내 산업을 육성해 그 산업 분야의 대미수출을 확대하는 방식을 주요한 경제성장 경로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도입되면, 이처럼 국내 산업을 키우기 위해 도입된 산업정책 자체가 이 소송제의 적용 대상이 되고, 나아가 미국의 무역 보복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전에는 미국 행정부만 신경 쓰면 됐지만, 이제는 이 땅에 들어와 있는 모든 미국인 투자자를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이를 소홀히 해도 한국의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는 국제중재에 회부당할 수 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아직까지 WTO에 도입되지 않은 것도 이같은 놀라운 파괴력 때문이다.

"이렇게 결함 있는 제도를 채택할 이유가 없다"

필자는 최경림 국장에게 이런 여러 가지 헌법적인 문제나 정책적인 문제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미국이 던진 '간접수용에 대한 보상'이라는 헌법적인 도전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그런데 김종훈 한미 FTA 우리 측 협상 수석대표는 2006년 11월 국회 '한미FTA 특위'에서 "이것이 헌법논쟁으로 가서 법리적이 논쟁이 되면 끝까지 해법을 찾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라고만 말한 것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말은 한국은 간접수용, 나아가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위헌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필자는 <녹색평론> 2006년 5/6월호에서부터 졸저 <한미 FTA의 마지노선>에 이르기까지 한미 FTA에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수용 보상 조항은 소송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 왔다.

호주가 미국과 FTA를 준비하면서 2001년 8월 모나시 대학에서 제출받은 용역보고서인 <미국과의 FTA: 그 쟁점과 시사점>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견해는 필자의 생각과 같다. "미국과 FTA를 체결할 때, 이렇게 결함 있는 제도를 채택할 이유가 없다."

호주 정부는 이 보고서를 기초로 협상전략을 수립했고, 이 보고서가 나온 후 약 1년 7개월 후에야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 미국과 FTA 협상을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호주는 미국이 애써 만들어낸 '수정판' 투자자-국가 소송제마저 거부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 FTA 특위에서 호주가 미국과의 FTA에서 이 제도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호주와 미국이 모두 영미법에 기반을 둔 유사한 법률 체계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호주 빅토리아 주 변호사협회, 호주 연방변호사협회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허용할 경우 미국 투자자들은 호주 정부가 공공이익을 위해 추진하는 정당한 정책도 수용으로 간주해 호주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것"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나프타에서 처음으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도입한 이유는 미국이 멕시코 사법부를 불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국제통상법에서는 공지의 사실이다.

문제의 본질은 한국 사법제도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미국인 투자자도 미국법과 동일한 수준의 보호를 받게 해주려는 미국의 의도다. 그러므로 김현종 본부장은 한미 FTA 협상에서, 호주의 통상장관이 그랬듯, '한국의 사법부는 결코 미국인 투자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과 '한국 사법제도가 건전하고 우수하다'는 점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해 토론해야

사회적 제도는 한 번 도입되면 쉽게 바꾸거나 없애기 어렵다.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일단 도입되면, 이는 한국 기업보다는 미국 기업이 더 많이 이용할 것이다. 나프타에서 발생한 45개의 소송 가운데 멕시코 기업이 미국을 중재에 회부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열심히 협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협상 당사자들은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없는 상태에서 우리 측 협상단이 미국과의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이 제도를 수용하겠다고 미국에 제의한 것은 결정적 패착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한미 FTA의 다섯 번째 선결조건'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 사회는 이제라도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해 토론하고 이로부터 이 제도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적어도 이 제도에 관한 한 법무부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법률가들이 지금처럼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침묵한다면, 법률시장 전면 개방을 한미 FTA로부터 제외하기 위한 흥정 결과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토론의 출발은 이 제도에 대한 조문 초안을 공개하는 것이다. 직접 조문을 보지 않고서는 이 제도에 대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경림 국장은 <한겨레>에 기고한 원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조문 초안을 공개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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