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 국장은 올해 1월 두 차례의 <한겨레> 기고에서 FTA에 들어간 이 제도를 "우리 투자기업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라고 평가했다. 그가 그렇게 평가한 근거로 미국에 투자한 현대자동차의 예를 들었을 때, 필자는 새해 연휴 때 읽었던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My Life)>(빈티지 북스 펴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클린턴은 1982년 11월 서른여섯의 나이에 아칸서스 주지사로 재당선됐다. 그가 주지사로 취임한 후 처음으로 공식 방문한 외국 도시는 일본 오사카였다. 일본 산요(Sanyo)가 아칸서스 주에 있는 텔레비전 조립공장을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그가 직접 오사카로 날아가 산요의 사토시 이우에 회장을 만난 것이다. 클린턴은 산요의 미국 공장 폐쇄로 인한 실업을 감당할 수 없으니 공장을 계속 가동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그 대신 미국의 월마트(Wal-Mart)가 산요 텔레비전을 팔도록 해 보겠다고 제안했다. 산요의 동의를 얻은 클린턴은 다시 미국으로 날아 가 월마트에게 도움을 청했다. 클린턴은 성공했다. 클린턴의 자서전에 따르면 월마트가 2003년 가을까지 판매한 산요 텔레비전은 2000만 대가 넘었다.
건전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해외에서 차별은커녕 오히려 우대를 받고 있다. 도대체 어떤 나라가 자기네 나라에서 공장을 짓고 주민을 고용하는 건전한 외국 기업을 홀대할 것인가? 문제는 론스타 같은 투기자본이다. FTA에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투자의 개념이 워낙 넓기 때문에, 론스타도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해 보상을 요구할 자격을 갖게 된다.
미-싱가포르 FTA에서의 투기자본 규제 조항
최경림 국장도 잘 알겠지만, 싱가포르는 미국과 2000년 12월부터 2002년 11월까지 모두 11차례의 공식 FTA 협상을 진행했다. 그런데 양국 사이에 협상 막판까지 쟁점이 됐던 것이 바로 최 국장이 맡고 있는 투자 조항이었다.
당시 이 협상을 담당했던 싱가포르의 라비 메논(Ravi Menon)의 기록에 따르면, 미국과 싱가포르의 협상이 타결된 것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예정된 2002년 11월 19일 아침까지도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를 둘러싼 양국 간 대립은 해소되지 않았다(The US Singapore FTA: Highlights and Insights).
미국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free transfer)'을 요구했으나, 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는 싱가포르는 '통상적인 통화정책(conventional monetary policy)'이 한계에 봉착한 위기상황에서는 국가가 자본 유출입을 통제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결국 두 나라는 타협했다. 싱가포르는 미국인 직접투자(FDI)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자본통제도 하지 않기로 하는 대신, 외환위기 때에는 투기자본이나 단기자본에 대해 조세나 부담금(levy)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자본통제를 할 권한을 확보했다.
투기자본의 '이동을 실질적으로 방해하지 않은(do not substantially impede transfers)' 조치에 대해서는 미국의 투기자본이 싱가포르를 제소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미국-싱가포르 FTA 부속서 15A의 1(d)항).
이밖에도 싱가포르는 이 협정문에 또 다른 안전장치를 심어놓았다. 무엇보다도 싱가포르는 투기자본의 '이동을 실질적으로 방해한 경우에도' 이 투기자본의 손실을 '전부 다' 보상해야 할 필요는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보상금에서 투기자본이 싱가포르에서 번 돈을 일정 부분 제외한다. 또 싱가포르의 자본통제가 없었다면 투기자본이 그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해 벌 수 있었던 기회비용을 보상할 필요도 없다. 나아가 보상을 할 때는 싱가포르 달러화도 사용할 수 있다.
한미 FTA에는 외환위기에 대비한 투기자본 통제조항이 있는가?
그러므로 최경림 국장의 기고문이 좀 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의 촉매가 되려면, 최 국장이 담당하고 있는 투자 분과 협상에서는 △미국의 투기자본이 한국의 정당한 자본통제 조치마저 국제중재에 끌고 갈 위협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외환위기에 대비한 투기자본 통제조항이 있는지 △투기자본 통제조항이 있다면 싱가포르와 어떻게 다른지를 소상히 밝혀주는 게 좋았을 것이다.
최 국장이 <한겨레> 지면 제약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 곳 <프레시안>에 자세한 내용을 기고해 주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최 국장의 기고문에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더 중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계속>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