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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만큼이나 한국 혼란시킬 '간접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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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줄기세포'만큼이나 한국 혼란시킬 '간접수용'

[한미FTA 뜯어보기 214 : 갈림길에 선 FTA 협상(4)] 최경림 FTA국장과 투자자-국가 소송제(Ⅱ)

최경림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FTA) 국장은 <한겨레> 기고문에서 "정부가 환경·건강·안전을 포함해 정당한 정책목표를 위해 내외국민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규제조처를 시행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배상 책임이 없다는 규정을 포함할 것"이라며 "(이 규정은) 그간 국제분쟁해결센터를 비롯한 투자분쟁에서 일관되게 받아들여진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너무도 중요하다. 이 말은 2000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에 따른 메탈클래드(Metalclad) 소송 이후 국제투자법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른바 '간접수용(indirect expropriation)'의 개념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들은 법률가에게도 이 난해한 법률용어가 불쑥 한국사회에 나타나 우리들을 혼란하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과거에 '줄기세포'란 용어가 그러했듯.

'극단적으로 넓은 개념'이었던 간접수용

'간접수용'이란 무엇인가? 나프타는 "국가가 투자자의 투자에 대해 ①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국유화하거나 ②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수용하거나 ③국유화 혹은 '수용과 동등한(tantamount) 조치'를 취할 경우에는 투자자에게 현금으로 보상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 멕시코 과달카사르 마을 담장에 '메탈클래드는 물러가라'고 적혀 있다. ⓒ 프레시안

그런데 미국 회사인 메탈클래드가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나프타 중재인단은 놀라운 판례를 남겼다. 투자자가 합리적으로 기대했던 경제적 이익을 국가 조치로 인해 실현하지 못한 경우도 '수용과 동등한 조치'로 인정해 보상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아직 이 판례에 놀라지 않았을 독자들은 위해 단순하게 이 판례를 설명하자면, 국가가 토지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원 지역으로 지정만 한 경우에도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법원이 2001년 메탈클래드 소송에 대한 판정은 수용을 '극단적으로 넓은 개념(extremely broad definition)'으로 해석한 것이라 평가하고, 이런 해석에 따를 경우 국가가 합법적으로 지역·지구 계획을 수정·변경(rezoning)하는 경우에도 투자자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고 본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판결문 99절).

그러므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006년 9월 국회 한미 FTA 특위에서 "제가 그래서 나프타 판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자세히 읽어 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13개가 결정이 돼 있는데, 13개 판례를 다 보면 적어도 직접수용까지는 가는, 투자자의 가치가 거의 없어져야 된다는 이런 차원까지 가는 겁니다"라고 주장한 것은 요점을 벗어난 것이다.

미국은 왜 간접수용 개념을 재정의했나

국가 공공정책의 자율성과 신축성을 제약하는 나프타에 대한 반발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미국의 사법부,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서 터져 나왔다.

그 직접적 동기는 1998년 캐나다 회사 로웬(Loewen)이 '미국 미시시피 주 법원의 배심원 평결이 나프타의 투자자 보호 조항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미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한 것이었다.

이어 1999년에는 캐나다 회사 몬데브(Mondev)와 메타넥스(Methanex)가 차례로 미국 매사추세츠 대법원의 판결과 캘리포니아 주의 휘발유 첨가제 판매 금지조치가 나프타의 투자자 보호 조항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미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했다.

당시 미국 법률가들의 고민은 '단순한 재산가치의 감소(mere diminution of value)'는 수용(takings)이 아니라는 미국 수용법(takings law) 질서와 어긋나지 않도록 FTA를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미국 법률가들은 오랜 격론과 내부 토론 결과를 모아 나프타식 수용 개념을 수정하기로 했다. 이들은 진통 끝에 세 가지 유형으로 정의된 기존의 수용 개념을 버리고, 대신 직접수용과 간접수용이라는 두 개의 범주로 수용의 개념을 재정립했다.

미국은 또 △정부 조치가 투자의 경제면에 미친 충격도 △정부 조치가 투자자의 명백하고 합리적인 투자 기대를 침해한 정도 △정부 조치의 성격 등 세 가지의 간접수용 판단기준을 만들었다.

이밖에 미국 법률가들은 국제중재 절차에서 투자자의 기업비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제중재에 제출된 중재신청서 등이 공개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국제중재의 본질인 '비밀주의'와 '밀행성'에 대한 비판에 대응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FTA를 미국 수용법(takings law)에 맞추는 작업이었다. 미국은 이처럼 FTA에서 간접수용의 개념을 재정의함으로써, FTA를 미국 대법원의 수용법 판례들(1978년의 Penn Cent. Transp. Co, 케이스, 1992년의 Lucas 케이스, 1999년의 College Sav. Bank 케이스)에 일치시켰다.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이 FTA에 들어간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개혁하기 위해 제출한 FTA 수정법률안(Kerry amendment)도 이와 같은 흐름이었다.

수정된 '간접수용' 개념, 미-싱가포르 FTA에 최초로 반영돼

이런 내용의 미국 개정판이 처음으로 협상에서 등장한 것은 바로 미국이 2003년 5월 싱가포르와 체결한 FTA에서였다.

싱가포르는 이미 2000년 11월 고척동 싱가포르 총리와 클린턴 미국 대통령 사이의 골프 회동에서 FTA 협상 개시에 합의했지만,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미국 내부의 토론과 작업이 종료되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미국-싱가포르 FTA 협상의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랄프 이브(Ralph V. Ives)는 이렇게 회상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새로운 투자 챕터의 핵심 내용들, 그러니까 개인 기업이 국가를 중재에 회부하는 것과 같은 제도에 관한 정책을 채택할 수 없었다. 부시 행정부에서 이 투자 조항 문제를 해결하는 데 18개월이 걸렸다(The US Singapore FTA: Highlights and Insights, 26면)."

미-싱가포르 FTA에서는 미국이 새로 정의한 '간접수용'의 개념은 "공식적인 소유권 이전이나 혹은 직접적 몰수가 없이, 국가의 어떤 행위 혹은 일련의 행위가 직접 수용과 등가적인 효과를 갖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등장했다(2003년 5월 6일 미국-싱가포르 간 수용에 관한 서한 4(a)항).

미-싱가포르 FTA에서는 또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중보건, 안전 그리고 환경과 같은 적법한 공공복지 목적을 수호할 목적으로 구상되고 시행되는 비차별적 규제 정책은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아니한다(위 서한 4(b)항)"는 조항을 삽입해 간접수용의 개념을 줄여보고자 했다.

바로 이 문장이 최경림 국장이 <한겨레> 기고문에서 언급한 바로 그 문구다. 미국이 이 조항을 미-싱가포르 FTA에 처음으로 집어넣은 것은 메탈클래드 사건이 상징하듯이 간접수용에 대한 지나치게 광범위한 해석으로 인해 국가의 환경정책과 공중보건정책이 위축된다는 미국 내부의 강력한 반발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은 바로 이 조항을 단 한 개의 알파벳을 고치지 않고, 미-칠레 FTA(부속서 10-D), 미국-호주 FTA(부속서 11-B), 미국-중미 FTA(부속서 10-C), 그리고 가장 최근의 미국-페루 FTA(PTA 부속서 10-B)에 삽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국 사정에 맞춰 변경된 FTA, 우리 헌법에 맞을까?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최경림 국장이 미국 법률가들이 1999년 이후 오랜 기간 작업해 만든 새로운 문구를 가리켜 "그간 국제분쟁해결센터를 비롯한 투자분쟁에서 일관되게 받아들여진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한겨레> 기고문에서 주장한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국제분쟁해결센터(ICSID)는 그런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공중보건, 안전, 환경과 같은 적법한 공공정책을 비차별적으로 시행하는 경우도 '수용'으로 봤던 것이다. 메탈클래드 사건에서 멕시코는 ICSID에서 패소했지만, 미국 기업과 멕시코 기업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한국이다. 미국은 자국의 사법체제에 맞게 자국이 추구하는 FTA 양식을 바꾼 다음, 그 결과 새로 정의된 '수용'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미국 측 FTA 양식이 한국을 위한 것이고, 한국의 헌법질서에 맞는 것일까?

한국의 헌법질서와 FTA의 간접수용 사이에는 너무나 깊은 간극이 놓여 있다. 한국 헌법은 미국 헌법과 달리 국토의 이용과 보존을 위해 토지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122조). 또 한국 헌법은 미국 헌법과 달리 국민의 주거생활을 위한 주택개발정책을 국가의 의무로 부과하고 있다(35조).

그 이유는 한국 헌법이 인구에 비해 가용토지면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 맞춰 토지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재산권보다 훨씬 강력하게 공동체의 이익을 관철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2005년 헌법재판소 판례).

특히 한국 헌법은 국가가 국민의 재산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수용'하거나 '제한'하는 경우에는 '법률'에 의해 '보상'하도록 함으로써(23조 3항), 국가에 의한 국민 재산권 침해를 사적 분쟁이 아니라 공법 질서를 통해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즉, 국가가 법률에 의거해 국민의 재산권을 수용하거나 제한하더라도, 그 보상 규정이 법률에 규정돼 있지 않으면 국민은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헌법질서다. 가령, 정부가 한 개인의 땅을 그린벨트로 설정한 결과 그가 자신의 토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이를 직접 보상해야 한다고 명령할 수 없다.

한국 부동산 기득권자와 미국 투자자가 힘을 합치면?

미국식 FTA는 한국의 헌법질서 속에서는 하나의 이물질일 수밖에 없다. 미국식 FTA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인 투자자의 재산을 '간접수용'한 경우에도 이를 보상해야 한다. 이 보상에 대한 근거 조항이 우리 법률에 없더라도 보상해야 한다.

한국 헌법 23조에 들어간 '보상 법률'이 지닌 의미는 수용의 근거가 된 개별 법률을 의미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통상협정인 FTA에 들어 있는 수용 보상 조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설령 FTA 수용 보상 조항이 조약의 일부로서 형식상 법률의 지위를 갖는다 치더라도, 한국인에게는 해당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긴다. 외국인은 보상을 받아도 한국인은 보상을 못 받는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도 간접수용을 보상해 주는 내용의 법률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고? 재정경제부 관계자도 'ISD 점검 태스크포스' 2차 회의에서 "간접수용을 국내법에서 인정하면 재정부담 문제가 매우 크다"고 말한 바 있다(<프레시안> 2월 1일자 '통상교섭본부, 盧心 앞세워 투자자-국가 소송제 독주' 기사 참조).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법체계에서 간접수용을 허용하면 토지 재산권에 대한 공동체적 제약을 인정하는 헌법질서의 위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즉, 간접수용이 인정되면 한국의 국토정책은 근본적으로 수정돼야 한다. 우리 정부의 국토정책은 도시계획, 투기지역 지정 등 직접적인 제한 정책을 뼈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FTA의 수용 보상 문제는 사회적 합의 없이 FTA의 부속물로 쉽게 처리되어선 안 되는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국내 부동산 기득권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부동산 기득권자들은 미국 투자자들과 합작하는 방법으로 한국 정부의 규제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과연 누가 이들에 맞설 수 있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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