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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건드리면 한미 FTA를 깨겠다고?

[한미 FTA 뜯어보기 167 : 기고] 오히려 쌀 전면개방 일정과 대책 필요

2004년 겨울 밤, 서울 광화문에서였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여성 농민들의 농성장에 머물렀다. 농민들은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매서운 바람을 무릅쓰고 쌀 개방 협상에 반대하는 농성을 하고 있었다. 농성장 안에 남자라곤 필자밖에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진솔했고, 표정은 밝았다. 천막을 나오면서, 도시의 남자는 자신이 농성장의 여성들로부터 힘을 얻고 돌아감을 알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로부터 1년 후인 작년 겨울에, 참으로 불행히도 성주군의 여성농민 오추옥 씨가 쌀 협상에 항의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비극을 전해 들어들었을 때 눈물이 앞을 가리기에 앞서 농성장 천막에서 보았던 여성들이 떠올랐다. 시골 남정네들의 그늘에서 묵묵히 농촌을 껴안고 온 품과 손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겨울에 보령군의 전용철 씨가 쌀 협상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다가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용철 씨를 죽게 한 진압의 사실관계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중산층이 무너지는 시대에 우리의 삶은 이웃의 억울한 죽음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쫓기고 있다.

농민들의 죽음을 뒤로 한 채, 쌀은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단단히 편입되어 있다. 세계무역기구는 2005년 4월 한국의 쌀 양허표(쌀 협상에서 한국이 약속한 개방 일정표)에 대해 149개 회원국의 검증이 완료되었다고 한국에 통지해 왔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국회의 동의를 받아 쌀 양허표를 비준했다. 이로써 한국의 쌀 양허표는 세계무역기구의 법규범으로 편입됐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은 늦어도 2015년부터는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를 지고 있다. 그리고 그때까지 쌀 시장의 전면 개방을 미루려면 모두 2278만석의 외국 쌀을 수입해야 한다.

미국이 쌀을 건드린다고?

미국이 쌀을 건드리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깨겠다는 어느 공무원의 최근 발언은 다소 자극적일 뿐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장관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월에 한미 FTA를 깨고 싶으면 쌀을 포함시키라고 미국에 얘기했다고 발언했다. 올해 1년 동안 한국의 관료들이 쌀은 지키겠다고 발언한 것을 모두 다 적으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또 말했다. 그 결과 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한국이 사수해야 할 안시성이나 행주산성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관료들은 미국이 쌀에 대해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침묵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된 이후 벌써 다섯 차례나 공식 협상이 진행됐고 이제 곧 해도 바뀌는데, 미국의 요구사항은 왜 여태 드러나지 않는 것일까?

미국은 한국 쌀 시장의 조기 전면개방(관세화)을 요구하는 것인가? 이는 한국의 쌀 관세율을 정하기 위한 세계무역기구 149여 회원국들의 검증과 협상 절차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재 세계무역기구 규범 상 한국의 쌀 관세율은 공란으로 되어 있다. 한국이 쌀을 조기에 전면 개방해야 한다면, 쌀에 매길 관세율에 대한 세계무역기구의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연구기관의 계산대로 이를 433%로 할지, 아니면 달리 할지에 대한 세계무역기구 규범이 있어야 한다. 149개의 회원국은 이를 위한 검증과 협상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차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한국 쌀 시장의 조기 전면 개방이 미국에 득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현재 한국의 쌀 무역은 농수산물유통공사라고 하는 기관을 통한 국가 독점무역 체제다. 지난 쌀 협상의 결과 한국의 농수산물유통공사는 매년 최소 34만 석의 미국 쌀을 구입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국영 무역체제의 종식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면 미국은 쌀 쿼터를 잃게 된다.

미국은 미국 쌀이 중국 쌀, 태국 쌀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1995년에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한 때부터 6년 동안 미국 쌀은 한국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국제입찰에서 중국 쌀과 태국 쌀에 밀려 계속 탈락했다. 한국이 2001년에 미국 칼로스 쌀을 위해 별도로 중립종(medium) 쌀 규격을 마련해준 뒤에야 비로소 미국 쌀이 낙찰될 수 있었다. 한국의 쌀 국영무역 체제가 조기에 해체된다면 그 이익은 미국 쌀보다는 중국 쌀이나 태국 쌀에 돌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여태 쌀에 대한 요구사항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다.

쌀시장 전면개방을 위한 내부협상 시작해야

문제는 미국 협상단의 치마폭 뒤에 숨어서 쌀은 지키겠다고 합창할 여유가 한국에는 없다는 점이다. 한국이 쌀 시장 개방을 2015년 쪽으로 미루면 미룰수록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외국 쌀은 해마다 마구 늘어난다. 만약 한국이 2015년까지 쌀 전면 개방을 미룰 경우 한국이 2014년에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외국 쌀은 270만여 석이다. 이는 그 해의 소비 예측량의 11.8%나 되는 물량이다.

국제통상법적으로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는 한국이 그때에 가서 최소한 쌀 시장의 약 12%를 한꺼번에 외국에 내어주어야 하는 국제법적 의무를 지게 됨을 의미한다. 1998년 말에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은 지금도 쌀 자급률 95%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2015년에 가서 일시에 쌀 시장을 열어젖혀야 한다면 아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쌀 시장을 조기에 전면 개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는 물론 전적으로 잘못된 쌀 협상의 결과다.

그러니 한미 FTA에서 쌀을 지키겠다고 말하지 말라. 쌀을 지킬 곳은 한미 FTA가 아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의무수입량이 더 늘어나기 전에 쌀 시장 전면 개방의 일정을 놓고 농업계와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왜 외국과는 협상하면서 국내 농업계와는 협상을 하지 않는가? 일본 정부는 해낸 일을 왜 한국 정부는 못하는가?

더 늦기 전에 정부는 농업계와 마주 앉아야 한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의 충격을 어떻게 견디고 극복할 것인지를 놓고 협의하고 협상해야 한다. 지금 준비하여 시작하더라도 합의에 이르려면 수년이 걸릴 것이다. 쌀 전면 개방을 위한 세계무역기구 협상을 언제 개시하는 것이 유리한지, 쌀 관세율을 얼마로 제안할 것인지, 농업의 내부개혁을 위한 농민과 정부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농업계와 협의하고 협상해야 한다.

마치 쌀을 계속 지킬 수 있는 것인 양, 마치 한미 FTA에서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쌀을 사수하려는 것인 양 농업계 앞에서 행세하지 말라. 더 큰 슬픔과 분노를 부를 것이다. 고 오추옥 농민과 전용철 농민의 경우와 같은 희생과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쌀은 지키겠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라. 그 대신 정부는 쌀 시장의 조기 전면 개방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자고 농업계에 제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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