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의 대법원 전북 급식조례 관련 판결문과 소송기록을 전체적으로 해석할 때, 대법원은 학교급식에 우리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이를 지키는 학교를 "선별하여 지원하는" 방식에 대해 가트(GATT)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보다 구체적인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정책을 개발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게 됐다. 미국의 연방급식프로그램(National School Lunch Program)과 같이 중앙 정부, 특히 농림부가 주관하는 우리농산물 급식프로그램을 법률적 근거 아래 체계적으로 시행해서 지금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인해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지원 정책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전북 이외의 다른 지역의 우리농산물 조례가 바로 무효화 되는 것도 아니다.
<프레시안>은 이번 학교급식조례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을 긴급 분석키로 하고, 우선 다소 전문적인 통상법적 쟁점을 먼저 소개한다. 왜냐하면 대법원의 판결은 단지 우리 농산물 급식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이른바 수출로 먹고 산다는 한국사회 모두에 큰 파장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번 판결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정책은 과연 WTO체제와 양립불가능한가, 그리고 정부와 자치단체가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의 통상법적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편집자>
***각국 '줄 소송' 불러들인 우리농산물 판결**
한국의 대법원이 국내 법령을 가트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무효로 선언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박정희 정권이 가트에 가입한 1967년부터 지금까지 35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라는 얘기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가트는 헌법에 의해 국내법령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조례가 이에 위반되는 경우는 그 효력이 없다"고 명시적으로 설시했다.
이로써 대법원은 통상법학의 오랜 쟁점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직접 효력(direct effect)'을 보다 명확히 인정했다. 이는 무엇이고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설명하자. '유에스 비프'라는 미국 쇠고기 수출회사의 한국 지사가 한국 정부로부터 쇠고기 수입 금지조치를 받았다고 하자. 한국 정부의 금지 조치는 명백히 WTO 위생검역협정을 위반했다고 하자. 이때 '유에스 비프'는 한국 정부의 조치가 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행정법원에 제소해 한국 정부의 조치를 무효로 만들 수 있을까.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바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트 회원국 정부가 아닌 사적 주체가 각 국의 법원에서 가트 협정을 원용할 수 있는가'라는, 가트 협정의 직접 효력의 문제는 세계 통상법학의 오랜 쟁점이었다. 미국은 1994년 WTO에 가입하면서 'UR이행법'(Uruguay Round Agreement Act of 1994)을 제정해 미국 정부가 아닌 그 누구도 WTO 협정 위반을 이유로 미국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바 있다.
그 의미를 예를 들어 풀이하면 이렇다. 만일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덤핑 판정을 당했다고 하자. 그런데 미국 정부의 판정은 명백히 WTO 반덤핑 협정을 위반한 부당한 것이었다고 하자. 그러나 삼성전자는 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
유럽에서는 어떤가. 유럽연합(EU)은 1994년 WTO에 가입하면서 WTO 협정은 '그 본질상(by its nature)' EU나 회원국의 사법부가 직접 원용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므로 유럽에서 삼성은 WTO 협정 위반의 조치를 당하더라도 WTO 협정 위반을 이유로 유럽재판소에 제소할 수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990년 가트위반에 대한 구제조치는 GATT 제23조에 규정한 분쟁해결절차에 따라야 하고, 위반이 있으면 일본은 기타 가입국으로부터 위반을 추궁 받게 되기 때문에 GATT 위반을 이유로 당시 문제가 된 일본의 견사가격안정법이 국내법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한 하급심 판례들을 긍정했다. 중국의 판사들도 WTO 협정 위반을 이유로 중국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아무런 입법적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WTO 협정의 직접효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앞으로 한국 정부가 미국의 GE, 유럽의 노키아, 일본의 미쓰비시, 중국의 하이얼 등으로부터 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법원에 제소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세계화 앞에 선 우리의 선택과 대응 물을 때**
한국사회는 이러한 불균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 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첫 번째 질문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국회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 협정의 이행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애초 법률안 원안에 있던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은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을 두거나 개별 국내법을 개정하지 않은 사항에 관해 국내법의 효력을 상실 또는 배제하지 못한다"라는 제3조를 최종 심의과정에서 삭제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와 달리 UR 협정이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에 지나지 않은 미국에서조차 UR이행법에서 UR 협정이 미국의 법에 저촉될 경우 무효라고 규정할 때 한국의 국회는 이 조항을 삭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오히려 시종일관 화를 자초하고 있었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2003년 9월 6일 전북도교육감에게 보낸 공문에서 '전북 급식조례가 WTO 협정에 위반되니 계획대로 조치해 주기 바란다'고 통보했다.
나아가 행정자치부는 다른 광역자치단체에게 제소를 직접 지시했다. WTO 협정을 담당하는 외교통상부조차 WTO 협정 위반을 이유로 한 제소 행위가 WTO 협정의 직접 효력이라는 심각한 쟁점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가 대법원 판결문 전문과 소송기록을 소송 당사자에게 구해서 검토한 결과 이러한 직접 효력의 쟁점과 의미는 이번 소송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 그러므로 대법원이 아직 대법원에 제소 중인 다른 급식조례사건에서는 이 문제를 충분히 다뤄주길 기대한다.
그리고 입법적 해결을 위해 국회는 속히 앞에서 본 WTO 이행법을 개정해 WTO 협정의 직접 효력을 부인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한 WTO 협정 위반을 이유로 대한민국 법원에 제소할 수 없도록 규정해야 할 것이다.
알다시피 전북급식조례 판결에는 그 어떠한 외국 국적의 주체도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출연진은 모두 한국인이다. 이처럼 세계화의 문제는 결코 한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 내부의 갈등구조에 온전히 편입된 국내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세계화 구조의 기득권 세력만이 세계화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움직일 수 없는 외부문제라고 강변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화는 우리 내부의 선택과 대응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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