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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에 의해 국제기구에 제소당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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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에 의해 국제기구에 제소당하려고?

[한미FTA 뜯어보기 36] 외통부의 기이한 '표준'론

1788년 1월 수백 명의 죄수와 이들을 감시할 군인을 태운 영국 군함들이 지금은 호주 시드니 항이라 불리는 땅에 도착하였다. 유럽인이 지배하는 호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오랫동안 호주의 역사 교과서는 이를 유럽인의 정착(settlement)이라 불렀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과서들이 이를 유럽인의 침략(invasion)이라고 고쳐 부른다. 이처럼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전혀 다른 평가를 하는 것이 역사학에서는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일본도 독도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일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지난 22일 <프레시안>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국제법상 이단'이라는 글을 기고한 다음날 외교통상부는 보도자료를 내 이 제도는 "일부의 주장"과 같이 이단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표준적인 절차"라고 반박했다. 대중에게 낯선 국제통상법의 한 제도가 지금 '이단'과 '표준'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셈이다. 종교나 역사학과는 성격을 확연히 달리하는 법학의 영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보기)

론스타, 기자회견 여는 대신 직접 한국정부 제소했을 것

필자는 이 문제가 보도자료를 통한 반박이 아니라 정식 논쟁으로 전개되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이 사안은 한국의 법치주의와 사법제도와 직결된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론스타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론스타의 존 그레이켄 회장은 23일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 국회가 지난 2일 조세회피지역을 이용하는 외국계 펀드에 대해 국내 세법에 따라 세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국제조세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법치주의와 국제규범에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만일 한미 FTA가 체결된 상태였다면 그레이켄 회장은 이런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 아니라 국제중재기구에 대한민국 정부를 제소하려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미 FTA 안에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investor-state claims)가 관철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론스타(정확히는 벨기에 국적의 LSF-KEB 홀딩스)가 한국에 투자할 당시에는 없었던 법률을 만들고 그 법을 근거로 론스타에게 세금을 징수한다면 이는 미국식 FTA에 규정된 '수용(expropriation)에 대한 보상 의무'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미국식 FTA는 정당한 보상(fair compensation), 적법 절차(due process), 비차별, 명백한 공익 목적 등과 같은 요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투자자의 투자를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수용하거나, '수용과 마찬가지인 조치'를 취하는 것을 FTA 위반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수용과 마찬가지인 조치'는 정통적 개념인 '공적 수용(regulatory takings)'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수용과 마찬가지인 조치'에는 투자자가 자신의 자산을 이용하는 데 있어 잠재적이고 우발적인 장애가 발생해 투자자가 투자로부터 합리적으로 기대할만 했던 수익을 박탈당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를 포함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계 기업인 메탈클래드가 멕시코 지방정부를 제소해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또한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서는 투자 자체를 매우 넓은 개념으로 해석한다. 사업체(enterprise), 주식, 회사채, 부동산에의 투자뿐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고 취득한 유·무형의 자산 혹은 투자유치국 내에서 자본이나 기타 생산요소를 경제적으로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모두 투자에 포함된다. 투자자가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투자는 모두 '투자자의 투자(investment of an investor)'로 인정된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미국식 FTA의 핵심은 외국인 투자자와 투자유치국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때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내 사법부에 의한 구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국제중재절차에 회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필자는 만약 현재 한미 FTA가 발효된 상태라면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절차에 회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론스타의 내부 자금관계나 통제관계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위와 같은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의 포괄성에 비춰볼 때 만약 이 제도가 한미 FTA에 포함돼 발효 중이라면 론스타는 어떻게든 적격자를 내세워 대한민국의 입법권 행사가 FTA 규정에 대한 위반이라며 직접 국제중재절차에 제소했을 것이다.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는 사회는 "법률가의 무덤"

정부는 지난 19일 한미 FTA의 우리 측 협정문 초안을 미국정부에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협정문에 들어간 조항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법조문 자체가 공개되지 않는 사회는 법률가의 무덤이 될 것이다. 물론 한미 FTA가 체결된 후에는 정부가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협정문의 조항들을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협정 체결이 다 끝난 후에 협정문이 공개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 사회는 아직도 2004년의 쌀 협상의 비극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시중에 팔리지 않는 미국 칼로스 쌀을 국가가 의무적으로, 그것도 시판용으로 수입해야 한다는 내용의 쌀 협상 결과가 공개된 것은 이미 모든 협상이 끝난 후였다. 쌀 협상의 결과에 대한 그 어떠한 문제제기도 '이미 협상이 끝난 문제'라거나 '국제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거부됐었다. 필자는 쌀 협상 중에 '협상 중'이라며 내용 공개를 거부하였던 관료들의 입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작년 겨울 경상북도 성주군의 농민 오추옥 씨가 소중한 생명을 바쳐가며 우리 사회와 소통하고자 했던 것은 정녕 무엇이었을까?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한국의 국회,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실행하고 있는, 혹은 실행하고자 하는 공공정책의 독립성을 위협할 것이다. 미국인 투자자의 이익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는 공공정책의 입법과 행정이 제소당할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동호 변호사가 2월 28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문화·환경·보건·복지'를 외국자본 손에 넘길 건가'라는 글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환경, 보건 등의 정책조차 이 독소조항의 영향권 안에 놓일 것이다. 미국인 투자자의 투자활동에 영향을 미칠 공공정책의 경우, 미국 투자자의 국제법정 선택에 따라 행정부와 입법부는 그 정책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권한을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관련기사 보기)

국제투자분쟁처리기구(ICSID)의 중재절차에서는 국제법이 국내법보다 우월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협약 제42조). 또 이 중재절차에서 사용되는 공식 언어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다.

가령 국내에 곡물판매 회사를 설립한 미국인 투자자가 전라남도 나주시가 학교 급식에는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례를 제정했다는 이유로 나주시를 국제중재절차에 회부했을 때 나주시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는 결코 나주시라는 특정 자치단체를 폄하하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2004년 출판한 <WTO 시대의 농업통상법>이란 책에서 나주시의 학교 급식 조례를 소개하며 이 시를 지방자치단체의 모범으로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런 나주시조차도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의 위험에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필자는 외교통상부에 조언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협정문 초안의 문항을 공개해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가 어떤 구조로 돼 있는지, 이 제도에서 협정적용의 예외분야, 즉 네거티브(negative) 방식의 규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설명해 주기 바란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공공정책의 독립성을 훼손하면서까지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를 수용할 것인지, 그리고 과연 이 제도가 미국인들의 투자를 유인할 것이라는 추정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평가와 검증을 할 수 있다.

'미국'식 FTA를 '세계' 표준이라고 우기는 대한민국 정부

글을 마치기 전에 외교통상부의 '표준론'에 대해 몇 가지 첨언하고자 한다. 미국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연구원인 허프바우어와 쇼트는 작년에 출판된 <나프타에 대한 재검토(NAFTA Revisited)>라는 책에서 이 제도를 "대단한 새 제도(a big NAFTA innovation)"라고 평가했다. 샌디에이고 법대의 폴솜 교수도 2004년 출판된 <미국에서의 나프타와 자유무역(NAFTA and Free Trade in the America)>이라는 책에서 이를 "새 영역의 여명(the dawn of a new area)"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본디 국제통상법에서 외국인투자자가 직접 투자유치국을 국제분쟁 처리기관에 제소하는 것은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의 구제절차를 모두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국가의 구제절차가 불공정해 적합한 구제를 받지 못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나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국내 구제절차 소진의 원칙(exhaustion of local remedies rule)'). 대한민국 법무부가 지난 2001년 자신의 이름으로 펴내고 서울대 법대의 장승화 교수가 집필한 <양자간 투자협정 연구>도 이 원칙에 대해 "국제관습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점에서 필자는 지난 22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국제법상 이단'이라는 글에서 나프타에 도입된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 즉 투자자로 하여금 국내 사법적 구제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투자유치국을 국제중재법정에 제소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이단"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현재 국제통상법의 근본이 되는 WTO 협정문에는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다.

외교통상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가 세계 143개 국가들이 가입한 국제투자분쟁처리기구(ICSID) 협약에 규정돼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필자가 위에서 지적한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이 협약의 어디에도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를 의무로 규정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협약은 제42조 3항에서 협약 체결국의 동의가 없으면 ICSID의 관할권조차 발생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외교통상부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FTA의 표준도 아니다. 유럽연합(EU)의 FTA 협정문에는 이 제도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미국은 호주와의 FTA에서는 이 제도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호주는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고자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 이 제도의 도입에 대해 추후에 협의한다(미국-호주 FTA 11.16)'는 조항을 집어넣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했다.

허프바우어와 쇼트, 그리고 폴솜 교수 등이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를 '대단한 새 제도'로 부르는 것은 그들의 입장, 즉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다. 이는 유럽인이 호주 시드니 항에 상륙해 원주민의 땅을 점거하는 과정을 유럽인의 입장에서 '정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가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를 FTA의 '표준'이라고 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의 외교통상부가 이 제도를 '표준'이라고 부르며 한미 FTA의 초안에 삽입해 놓고 그 구조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허프바우어와 쇼트의 지적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에 따른 제소가 모두 39건이었고 이 중 16건이 종결됐다. 이 가운데 일방 당사자의 승리로 소송이 종결이 된 사건이 6건이었는데, 이 중 미국 투자자가 패소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미국 정부가 패소한 사건도 역시 단 한 건도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외교통상부는 협정문의 초안을 공개하고, 한미 FTA 협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이 길만이 쌀 협상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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