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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쌀수입 관세화' 수용으로 가자

[기고] 여당인 우리당은 통상관료들의 미국편승을 극복해야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의 염색체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영국 토양협회 회장인 크레이그 샘스가 2003년에 펴낸 자신의 저서 <작은 음식책(The Little Food Book)>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사상은 샘스가 말한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1460년(세조 4년)에 어의 전순의는 자신의 저서 <식료찬요>에서 "어찌 마른 풀과 죽은 나무의 뿌리에 치료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며 '먼저 바른 먹을거리로 병을 치료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必以食療爲先)'는 견해를 명확하게 밝혔다.

그러나 전순의의 후예인 우리는 그의 견해를 이어가는 데 실패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중국산 수입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된 사실을 신속히 발표한 조치는 정당했다. 이는 식품에 기생충 알과 같은 이물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우리 식품위생법과 식품공전에 따른 적법한 조치였다. 아울러 식품안전법의 세계적 흐름인 위험정보전달(risk communication)의 기본원칙과 세계무역기구(WTO)의 위생검역협정에 충실한 조치이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이 WTO의 기본원칙을 어겨가며 이를 통상분쟁 거리로 삼으려고 달려들자 매우 놀라운 일이 생겼다. 한국의 주류세력은 중국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식약청이 마치 섣불리 행동해 분쟁을 자초한 것처럼 눈을 부라렸다. 이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에서만의 매우 독특한 반응이다. 이는 주류세력의 이해관계가 더 이상 국내 농업의 이해관계와 양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조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쌀협상 비준안은 미국과 중국의 이익을 반영한 것**

다른 사건도 있었다. 사상 처음으로 개혁세력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는 사상 처음으로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상임위원회에서 쌀협상 비준동의안을 의결했다. 농업의 자리는 이제 '국익'의 안이 아니라 그 변두리나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굳어지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인가?

미국으로서는 농업 분야가 무역적자를 축소하는 데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중요한 분야다. 이런 미국이 왜 한국 정부가 쌀 수입 자유화(관세화) 대신 관세화 유예를 선택하는 것을 수용했을까? 미국은 1995년에 WTO가 출범한 뒤 6년 동안 중국과 태국에 밀려 한국에 쌀 한 톨 수출하지 못했다. 한국이 입찰규격을 바꿔준 후에야 비로소 미국은 한국 쌀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쌀협상에서는 앞으로 10년간 쌀 50만t을 한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아예 미국 몫의 쿼터로 배정받았다(비준안 제3조).

덧붙여 미국은 한국에 대해 수입쌀 공개입찰 제도를 관철시켰다. 지난달 27일 국회 공청회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과 합의한 수입쌀 '공매' 제도가 원문에는 'auction'으로 돼 있다고 진술했다. 이로써 수입쌀을 수의계약 형식으로 가공업체에게 가공용으로 배정하던 지난 10년 간의 관리제도는 무너지고 공개입찰 제도가 들어서게 됐다.

그러면 중국은 왜 한국 정부가 쌀 수입을 관세화하는 대신 관세화 유예를 하는 데 동의해주었는가? 중국에게는 태생적 약점이 있다. 중국은 2001년에 WTO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가트 제1조의 최혜국대우 원칙을 일부 포기하는 양보를 해야만 했다. 그 결과 중국산 상품의 수입 증가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나라가 중국과 일정한 협의 절차만 거쳐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더라도 중국은 이를 2013년까지는 이를 감수해야 한다(Protocol on the Access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제16조 Transitional Product-Specific Mechanism). 그리고 중국산 상품의 저가 수입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나라가 가트의 원칙보다 더 높은 수준의 반덤핑 관세를 매기더라도 중국은 이를 2016년까지는 용인해야 한다(Protocol 제15조 Price Comparability in Determining Subsidies and Dumping).

이러한 태생적 약점을 지닌 중국으로서는 한국이 쌀 수입을 관세화하기보다 중국에 앞으로 10년 간 116만t의 쌀 쿼터를 보장해주는 관세화 유예가 더 유리하다. 게다가 중국은 중국산 사과와 배에 대한 신속한 검역 의무까지 한국에 부과하는 데 성공했다. 놀라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중국산 과일의 한국시장 장악은 시간의 문제다.

그런데 쌀 한 가마의 값이 16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폭락한 지금도 과연 관세화 유예가 관세화보다 우리에게 더 나은가? 지금 중국의 쌀값은 4만 원 정도다. 정부산하 기관인 농촌경제연구원의 계산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쌀을 관세화할 경우 433%의 관세율을 중국 쌀에 매길 수 있다. 이는 이미 10년 전에 성립된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문에 나와있는 계산방법을 적용한 결과다. 중국 쌀에 300%의 관세율을 매긴다 하더라도 한국시장에 들어온 중국 쌀의 원가는 이미 16만 원(4만 원+관세율 300%에 해당하는 12만 원)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앞으로 10년 간 약 2200만 석의 외국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대가로 얻은 10년 간의 관세화 유예가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 것인가? 국회는 비준동의안을 표결할 것이 아니라 관세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쌀협상 결과를 합리화하려는 정부와 언론의 태도**

정부는 우선 쌀협상안을 비준한 뒤에 관세화하자고 한다. 그러나 농업계가 이에 동의하지 않은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첫째, 지금 비준하면 올해부터 당장 의무수입량이 늘어나고 WTO 체제가 존속하는 한 100년이든 1000년이든 그것을 떠안고 가야 한다. 둘째, 일단 비준을 해주면 중국과의 사과ㆍ배 관련 합의, 미국과의 수입쌀 공개입찰 합의, 아르헨티나와의 쇠고기 합의를 돌이킬 수 없다.

정부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우리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 쌀을 지금 관세화할 경우 2007년이나 2008년부터는 100%나 150%의 관세상한(tariff cap)이 적용될 위험이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일본의 쌀 관세율은 지금 490% 정도에 이른다. 쌀과 같은 민감한 품목에는 정부가 주장하는 수치 정도의 관세상한이 설정될 가능성이 낮다.

<매일경제>는 2005년 10월 21일자에서 쌀 수입을 관세화할 경우 '75%'의 관세율이 적용된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나는 농업에 관한 오보는 오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우리 언론의 일상화된 태도에 일일이 분노를 표시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러한 오보를 은근히 조장하며 쌀협상 결과를 합리화하려는 자들에게는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쌀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농산물과 관련되는 DDA 협상에서 정녕 75%의 관세율 상한이 결정된다면 이는 우리 농업에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은 이미 비준동의안에 2015년 관세화 의무가 들어있다는 점이다(비준동의안 제2조). 지금 관세화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2015년에는 지금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서 관세화를 할 수밖에 없게 돼 있는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

흔히 농업인들을 개방에 반대하는 낡은 집단이라고 무시한다. 그러나 농업인들의 요구는 진정 무엇인가? 관세화 유예 그 자체가 아니다. 농업인들의 요구는 우리 농업의 존속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농업인들은 도시민들이 그렇듯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WTO에 반대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농업인들도 조건만 맞으면 관세화를 수용할 수 있다.

144명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진정 묻고 싶다. 열린우리당은 개혁적 자유주의와 시장주의 정당인가? 그렇다면 통상행정의 낡은 질서가 어떻게 미국에 편승하고 있는지 통찰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여 개방질서와 사회통합을 함께 추구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주기 바란다. 지금 이 상태에서 쌀협상안 비준을 강행하면 적어도 농촌지역에서는 회복하기 어려운 정치적 손실을 입을 정당은 이 땅에 오로지 열린우리당밖에 없지 않은가?

지난해 쌀협상 당시 필자는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이철우 의원실 관계자를 만나 국회가 쌀협상 과정을 제대로 보고받고 관여하기 위한 방안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철우 의원실과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무르익기도 전에 이 의원은 의원 신분을 상실했다. 마찬가지로 학교급식법 개혁입법 발의를 주도하던 복기왕 의원도 의원회관을 떠나야만 했다. 두 의원이 떠난 후 열린우리당이 쌀협상 문제에서 보여준 자세는 개혁적 자유주의의 덕목에 입각한 것이 아니었다.

쌀협상에 대한 국정조사의 열린우리당 간사였던 신중식 의원은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144명의 열린우리당 의원들 가운데 2004년 12월 30일, 즉 통상관료들이 이면합의(부가합의)를 한 상태에서 WTO에 협상결과를 통보한 그날에 이면합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의원이 있는가? 지금 부가합의 사항은 비준동의안에서 아예 빠져 있다. 부가합의 사항은 국가기밀로 분류되어 국회의원조차 자유로이 열람할 수 없게 돼 있다.

열린우리당이 진정한 개혁적 자유주의 및 시장주의 정당이라면 합의문 내용을 다 제출받아 읽어 본 후에 쌀 관세화가 더 나은지, 비준동의가 더 나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심의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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