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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와 한국민주주의를 버리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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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와 한국민주주의를 버리려는가"

[한미FTA 뜯어보기 38]최장집 "한미FTA 충격, IMF 못잖게 클것"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미친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IMF 금융위기였다. 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현재 논의되는 방향에서 타결된다면 그 충격효과가 IMF 금융위기 못지않게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가 한미 FTA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최 교수는 최근 3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쓴 글을 묶어 펴낸 <민주주의의 민주화>(박상훈 엮음, 후마니타스 펴냄) 중 한미 FTA에 대한 새로운 글('한미 자유무역협정 정책 비판과 대안적 발전모델')에서 노무현 정부의 FTA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미 FTA의 충격효과, IMF 위기 못지않게 크다"

최장집 교수는 한미 FTA에 대한 지식인, 언론의 나태한 대응을 질타라도 하듯 글의 첫 머리를 "현재 한국사회의 최대 이슈는 한미 FTA 추진을 둘러싼 문제라 할 수 있다"로 시작했다. 최 교수는 "한미 FTA가 우리 사회에 미칠 충격효과가 IMF 금융위기 못지않게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고 토로했다. 도대체 왜 그는 한미 FTA에 대해서 이렇게 위기감을 갖는가? 그는 글 마무리에 따로 붙인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그 체제는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 즉 외부로부터 다른 강력한 정치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행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영토 밖 행위자들의 승인 없이는 정책결정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미 FTA 정책 추진에서 느끼는 필자의 두려움은 그 충격효과가 경제적이고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이라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기초를 두어야 할 정책결정의 자율성은 치명적으로 제한받게 될 것이며, 우리 사회가 가진 제도·문화·인적 조건의 비교우위에 바탕을 둔 자체적인 생산체제의 유지와 발전이 어렵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한미 FTA 정책이 가져올 가장 위험한 결과로 본다. 나는 한미 FTA가 현재 논의되는 방향에서 타결된다면 그 충격효과가 IMF 금융위기 못지않게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

이런 최장집 교수의 우려는 한미 FTA가 결국 한국사회 전체를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고착시킬 수 있다는 강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민주정부에서 왜 사회복지 친화적인 생산 및 분배 체계가 발전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집중해왔다. 최 교수가 보기에 한미 FTA는 이런 고민마저도 무력화시키는, 즉 한국사회에서 영영 '민주주의, 평등, 노동의 권익 신장'같은 것을 말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다시 말해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온전한 민주주의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길에 들어서는 것과 다름아니다.

"경제의 불균등과 사회 양극화, 더욱 악화될 것"
▲ <민주주의의 민주화>(최장집 지음, 박상훈 엮음, 후마니타스, 2006). ⓒ프레시안

최장집 교수는 "성장잠재력 저하, 사회 양극화 등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할 근거로 동원된다"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을 불러들이는' 이 쉬운 방법을 모르고 그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고 한국적 조건에 부합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괜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 된다"고 꼬집은 뒤 본격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정책을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와 같은 정부의 논리는 '개방이 안 돼서 문제이고 한미 FTA로 개방이 이뤄진다면 생산성 향상과 경제발전 등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매우 단순한 인과구조를 특징으로 한다"며 "(이런 논리는) 더 많은 시장원리와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추구했던 그 동안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최종적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그간 추구했던 정책노선이 가져온 가장 분명한 문제는 경제의 불균등 심화 내지 사회 양극화이고 노동배제적 생산체제의 지속이었다"며 "한미 FTA 정책은 기존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보다 공고히하고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정부가 성장과 동시에 양극화 해소를 말하고, 한미 FTA 추진의 근거 중 하나로 그것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고 홍보함에도 불구하고 그 인과논리는 그저 상정된 것일 뿐 현실화될 가능성이나 설득력을 전혀 갖지 못한다"며 "다른 변수가 없다면 한미 FTA는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적 미국경제에 전면적으로 개방 내지 통합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장이 계속되더라도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

최장집 교수가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성장 중심론'이다. 최 교수는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성장의 둔화를 걱정하고 그 원인을 따지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충격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동안, 제조업이 급격히 약화된 산업구조와 분절화된 노동시장 체제(정규직-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빈부격차 및 양극화가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그들에게 양극화 문제는 성장둔화의 결과물일 뿐 그 인과관계가 역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약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과 주요 정책결정자들은 성장의 분배효과(성장이 가져다주는 '넘쳐흐르는 효과', '윗목-아랫목'론)에 대해 일방적으로 과신하고 있다"며 "하지만 성장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최고소득 집단은 언제나 제일 앞서고, 중간은 언제나 중간이고, 제일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은 언제나 맨 뒷줄에 서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더 나쁜 경우는 성장이 계속되면서 최고소득 집단만 소득이 크게 높아지고 중간과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은 비슷해지거나 더 적어지는 경우"라며 "(이 경우)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환경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고용은 증대시키지 못한 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오늘날 경제지표들은 이런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비스업 개방되면, 미국의 '사회적 붕괴' 전철 밟을 것"

최장집 교수는 '한미 FTA를 통해 대외개방이 생산성을 제고하고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노무현 정부의 논리도 강하게 비판했다. 최 교수는 "제조업은 완전히 개방돼 생산성이 높고, 서비스 산업은 개방되지 않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식의 논리는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신빙성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한미 FTA와 관련해 정책결정자들이 사용하는 '서비스 산업'이라는 말은 서비스업 전체를 지칭하기보다는 금융, 컨설팅, 의료, 법률, 기술정보 등 서비스업의 최상층 부분을 의미하고, 일자리 규모로 보자면 서비스업 가운데서도 아주 일부분만을 포함하는 것"이라며 "전체 서비스업은 이들 소수의 상층 부분으로 대표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런 정부 주장의 허구성을 '사회적 붕괴' 상태인 미국의 예를 통해 반박했다. 그는 "미국 역시 상층 서비스업 종사자는 가장 높은 소득층인 반면, 노동집약적 하층 서비스업 부문은 소득 및 계층 구조에서 최하층을 구성하고 있다"며 "최근 미국 경제의 소득 불평등은 매우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를 통해 미국처럼 서비스업이 재편될 경우 '저학력, 저기술, 저임금, 저소득층들이 집결돼 있는 한국의 대다수 자영업과 영세소기업, 기타 서비스 직종' 역시 파탄을 면치 못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최 교수는 또 "제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의 기반이 이미 허물어진 상황에서 확실한 근거도 없이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함으로써 중소기업에 대한 무대책을 또 한 번 합리화하고 있다"며 "서비스업의 개방되면 덩달아 제조업 부분과 중소기업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정부의 발상은 막연한 기대효과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서비스업이 경제성장의 출로라니, 무모한 발상이다"

최장집 교수는 더 나아가 "서비스업이 결코 한국경제 성장의 출로가 될 수 없다"며 "미국에 대한 개방을 통해 세계적인 서비스업을 만들겠다는 주장은 다소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서비스업은 노동 그 자체가 소비대상이고 제조업 부문에 있던 낮은 질의 노동력이 서비스업으로 이동해오기 때문에 낮은 질-낮은 임금-낮은 생산성의 악순환 구조에 빠져들게 된다"며 "한국의 서비스업의 생산성 데이터는 이런 주장을 완벽하게 뒷받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정책결정자들은 금융, 의료, 교육, 법률, 회계 등 고부가가치형 지식기반 서비스업은 미국이 세계최고 강국이므로 한미 FTA를 통해 미국에 대한 개방이라는 충격에 노출되면 이 분야가 발전하고 그것이 한국경제 전체에 연쇄적 촉매효과를 미친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주장이야말로 논리비약이 아닐 수 없고, 그런 인과관계가 어떤 이론적 근거에서 도출될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그런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세계 최고의 자본력, 세계의 인재들을 흡입하는 대학교육,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과 기술 수준, 세계 언어로서의 영어와 그 문화의 힘, 그리고 세계시장의 규칙을 정하고 이를 부과할 수 있는 경제외적 힘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우리가 그와 유사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고 조만간 그런 조건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한미 FTA는) 양국 간의 격차가 극히 심한 조건에서 한국의 개방업종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거나 위계적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나아가 한국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결집돼 있는 이 분야의 종사자들을 미국 체제에 통합시킴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이미 깊숙이 진행된 사고와 가치체계의 미국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또 "미국에 개방, 통합된 서비스업이 가져올 경제 전체에 대한 효과 또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 분야는 일류대학, 외국유학, 영어사용과 같은 높은 수준의 지적자원을 갖는 사람들만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높은 소득수준의 계층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고용증대나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설사 정부 의도대로 한미 FTA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는 한국경제를 미국시장에 더 깊숙이 통합시키는 것으로, 그에 따른 결과는 IMF 위기 이후 현재까지 증폭돼온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세계화와 양극화 해소는 선진 한국으로 가는 양날개'라고 강조했다 해도 그 말이 한낱 공허한 수사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비스업 중심의 개방경제, 잘못된 선택의 연장일 뿐"

최장집 교수는 "제조업 중심의 권위주의 산업화에서 이제 금융, 정보기술(IT), 서비스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개방경제로 발전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민주정부들이 잘못된 선택을 계속해온 결과"라며 "IMF 경제위기 직후 재벌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적 경로를 개척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를 외면했고 결국 정부여당-야당-관료-재계-주류 언론-지식인 전문가 등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주요 엘리트 집단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전 동맹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형성된 신자유주의적 발전 동맹이 재벌이 주도하는 지식정보·금융·서비스업 중심의 개방경제를 밀어붙이면서 "어떤 대안적 이념이나 프로그램의 형성을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런 사정은) 대통령과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한미 FTA 추진을 천명했을 때 한국의 여야 양대 정당 어디로부터도 이렇다 할 비판이나 대안이 제기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최장집 교수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최 교수는 글의 후반부에서 한미 FTA로 대표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의 대안으로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 육성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 사이의 공동연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경제성장의 동력이 국내 생산체제로부터 나오고 그에 기반을 두는 '내발적' 발전 전략 즉 "성장정책과 산업정책, 노동 및 복지를 위한 사회정책이 만날 수 있는 발전의 틀, 그 속에서 성장과 고용증대가 병행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양극화 해소 내지는 완화에 기여하고, 또 반대로 양극화 해소가 성장에 기여하는 산업발전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미 FTA,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

최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라는 외적 제약이 크다 하더라도 모든 나라가 동일한 발전 경로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회적·정치적 계기들의 응집을 통해 미국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모델이 고착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생산체제를 향한 적절한 모델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희망을 피력하면서도 "현재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방향의 대안이 개척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현 정부에 대한 강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한미 FTA 추진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글을 맺었다.

"분명한 현실은 (한미 FTA가) 한국경제를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수직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을 가속시키고 악화일로에 있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한미 FTA의 추진을 통해 일방적 신자유주의 모델로 달려 나가는 것은 단순히 노무현 정부만의 실패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한국경제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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