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최장집 "헌법 바꾸면 민주주의 발전? 성급한 주장"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최장집 "헌법 바꾸면 민주주의 발전? 성급한 주장"

[심포지엄] "법 강조할수록 민주주의 협소화"-"엘리트 편향 낳을 수도"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발언으로 촉발된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이어 진보진영 학자들까지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흐름에 대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 겸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이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헌법 바꾸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성급한 주장"**

최장집 교수는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비와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라는 공동 심포지엄의 종합토론에 참여해 개헌 논의가 갖고 있는 한계와 우려스러운 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다뤄지는 개헌과 관련된 내용은 그 동안 민주 개혁과 민주 정치의 작동에 실망감이 고조되어 온 진보진영 지식인들의 대응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며 "정치를 정치인들에게 맡겨두었더니 안 되겠다. 그러니 헌법의 문제를 시민사회로 되찾아와 시민헌법을 만들어 이 헌법을 통해 다시 꺼져가는 민주 개혁의 불씨를 되살리고 민주주의를 활성화하자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정치가 문제다'라는 인식은 보수와 진보진영을 막론하고 지배적인 담론으로 자리 잡은 셈"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것은 그간 민주화 운동 세력이 민주적 제도의 기본 틀과 규범으로서의 헌법에 대해 큰 중요성을 느끼지 않아 온 것과 대조된다"며 "헌법에 대한 무관심이 갑자기 '헌법이 문제다'라는 주장으로 상징되듯 헌법에 대한 중요성의 발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지금 헌법, 헌정주의는 보수적 관점과 진보적 관점이 우위를 점하고자 경쟁하는 장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2004년 탄핵 사태 때 보수진영이 헌법 내지는 헌정주의에 대한 강조를 통해 민주주의를 공격, 비판했던 것처럼 이제 진보진영이 정반대 방향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핵심이 헌법, 헌정주의에 있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민주적 정치 과정의 발전은 많은 노력과 인내심, 상당한 시간을 통한 실천과 그 과정에서의 경험의 축적을 요구한다"며 "전국적 정치 제도의 수준에서 아무리 제도와 절차가 민주적인 법으로 규정된다고 하더라도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 단위에서 그것이 민주적으로 재생산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개인의 실천 수준에서 그 규범의 내면화 과정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헌법이 문제다'라는 상황 인식은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의 창안 내지는 도입을 통해 일거에 정치가 못 하던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성급함과 급진성 또 권위주의적 방법에 의존하고자 하는 민주화 운동의 문화 속에 내재한 부정적 요소의 표출로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헌법 강조하면 '엘리트 편향'으로 귀결돼 민주주의 근본 훼손"**

최장집 교수는 이어서 헌법을 강조하는 것이 자칫 보통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정치에 참여해 그들의 역할이 커지는 것을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헌법을 민주주의 발전의 첩경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정치를 우회하거나 뛰어넘어 정치 외부의 어떤 과정, 절차, 힘에 의해 정치가 해결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그들의 권익을 실현할 기회와 절차를 제공하는 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을 가능성까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장(場)인 정치를 폄하하거나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헌법을 불러들이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정치 밖으로 끌고 가 해결하는 것"이라며 "외부에서 만들어진 규범, 가치, 이념, 제도 등을 밖으로부터 사회에 부과하는 이런 방식은 민주주의를 제외한 다른 정치 체제들, 즉 권위주의, 귀족주의, 후견주의(guardianship)의 특징"이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1987년 이래 절차적인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야기되고 민주화와 사회발전이 정체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정치를 바로 세워 민주화로 나아가는 길과 헌법을 바로 세우는 길 두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화는 보통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이들의 역할이 커지는 과정"이라면서 "이에 반해 헌법을 통한 과정은 보통 사람들이 아닌 엘리트들(헌정 질서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커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엘리트 편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법 강조할수록 민주주의 협소화…헌법이 민주주의에 복무케 해야"**

최 교수는 헌법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다른 방향에서 찾아 극복할 길을 모색할 것을 주문했다.

최 교수는 "한국의 헌법이 그 이론적, 실천적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은 미국 헌법"이라며 "미국 헌법에 대한 오랜 논쟁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헌정주의와 민주주의는 많건 적건 긴장 내지는 갈등 관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헌법, 헌정주의의 강화는 사법부와 법관의 역할 강화와 비대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며 "이것은 민주주의를 제도의 틀 속에 가두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미국의 정치철학자 셀던 월린의 주장을 인용해 지적했다. 법을 강조할수록 민주주의의 범위는 더 협소해지는 대신 비민주적이고 경직적인 법의 영역에서 전문가 집단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헌법이 문제다'는 식의 상황 인식 하에서 헌법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그렇지 않아도 강한 헌정주의를 더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조차 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헌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은 미국 헌법에서 따온, 우리 헌법의 핵심을 이루는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역할을 민주적 규범과 원리에 더 가깝게 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헌법은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을 구현하는 기본권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 범위를 한정해 간결하고 분명하고 짧은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미 최 교수는 2004년에 출간된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박상훈ㆍ박수형 옮김, 후마니타스)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의 주장을 편 바 있다. 당시 최 교수는 "거의 모든 정치적ㆍ공적 결정을 포괄하는 것들이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때 민주주의 정치의 영역은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며 "사회의 민중적 동력이 이슈를 제기하고 갈등을 전국화하며 그것이 정당으로 조직되고 대표되는 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해지지 않으면 우리나라 역시 미국처럼 민주주의 실패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었다.

***"민주주의 발전 위해선 '정치'가 중요"-"정치의 경계 확장도 필요"**

최장집 교수는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현실주의가 중요하다"며 "그것은 바로 정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정치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정책과 프로그램들을 형성하고 이를 실천하는 권력을 창출하고, 이들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차이가 정치적으로 협상되면서 합의의 영역을 넓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치의 경계를 넓히고 그럼으로써 정치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은 민주주의의 규범과 원리에 가깝게 문자 그대로 민주주의에 복무하는 법적 기제가 될 수 있도록 하면 족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런 최 교수의 비판은 심포지엄에서 진보적인 방향의 개헌을 주장한 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심포지엄의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서 '시민헌법'으로의 개헌을 주장했던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는 "불완전한 헌법을 이용한 질 나쁜 정치가 계속되고 이 헌법을 재판관 등 사법 관료들이 독점ㆍ남용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개인의 일상까지 지배하고 있다"며 "시민헌법에 대한 논의는 헌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아니라 21세기 헌법이 가져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시민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이를 통해 더 좋은 정치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