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와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가 한국사회 양극화의 원인과 그 해소방안을 놓고 29일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모임에서 '진검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이정우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ㆍ사회 정책을 입안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반면 최장집 교수는 이 정부의 경제ㆍ사회 정책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혹평을 해 온 터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사전에 공개된 두 사람의 발제문은 예상대로 양극화에 대한 현상인식은 같지만 그 해소방안에 대해서는 전혀 상반된 의견을 피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이정우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성장과 분배 양쪽 모두에 초점을 맞춰 일관되게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최장집 교수는 사실상 노무현 정부를 양극화를 심화시킨 장본인으로 지목했다.
***"노무현정부 양극화 해소에 주력" vs "경제사회 정책 부재…양극화 심화"**
두 사람 모두 우리나라는 '박정희 모델'로 불리는 국가 주도의 발전전략을 대신할 대안적인 경제발전 모델을 갖추지 못한 사이에 영미식 시장주의가 급속히 확대되는 과정에 있다고 진단했다. 두 사람은 한국이 전형적인 '시장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 결과 "정치에서는 민주화가 이뤄졌으나 경제에서는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데에도 인식을 같이 했다. 특히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그 과정에서 "'노동 배제'와 같은 '배제의 관행'도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양극화 해소의 방향과 노무현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이정우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소외되고 배제된 사회구성원들을 통합하고 포용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한편 단기적인 개인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도록 게임의 규칙을 바꾸기 위해 양극화 현상을 중심에 놓고 종합적 경제ㆍ사회 정책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경제와 정치의 체질을 고치는 데 주력해 왔다"고 현 정부의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박정희 모델'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가 전력질주 해 왔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최장집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제대로 된 사회ㆍ경제 정책을 실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켜온 '집권엘리트-경제관료-재벌'의 '3각동맹'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최 교수는 "현 정부는 국가기구와 경제관료를 통제하기는커녕 거꾸로 그에 의존해 왔으며 자신의 정책노선과 그것을 집행할 경제장관을 갖추지 못했다"며 "그 결과 '친재벌, 반노동', 즉 '박정희 모델'과 같은 구체제와 정책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어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데에도 나중에서야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아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엇인지 갈팡질팡하게 됐다"며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언론에서 무언가를 비판하면 그때야 대통령의 보좌관ㆍ측근들이 변명하고 나서는 구조가 현재의 집권엘리트와 경제관료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대통령은 공허한 담론을 좋아한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를 꼬집었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가 경제ㆍ사회 정책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 양극화를 심화시켜 왔다는 것이다.
***"노사정 사회협약 못할 것 없다" vs "'노동 배제' 고수…노동운동 무력화 시도"**
이정우 교수가 양극화 해소대책으로 노무현 정부에 제시한 각종 방안에 대해서도 최장집 교수는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노동정책과 관련해서는 두 사람 사이에 극심한 시각차가 드러났다.
이 교수는 "국내에 세계 최대 규모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개선하고 그들이 겪는 엄청난 노동조건상의 격차와 비인간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1982년 네덜란드, 1987년 아일랜드에서와 같은 노사정 사회협약이 필요하다"며 "한국에서 사회협약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1920~30년대에 유럽의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협약이 이미 성공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노사관계나 대화문화가 80년 전의 유럽에도 못 미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자기비하"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그 동안에도 일관되게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과 같은 사회협약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최장집 교수는 이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최 교수는 "우리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이미 미국을 능가하는 수준임에도 노무현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비정규직법의 관철을 시도했다"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성장과 고용확대를 가져온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시장의 효율성을 실현하고 성장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면 노동조합의 힘이 더 통제돼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일면적으로 수용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종하는 노동정책에서 노동자는 고용의 가치와 공동체에 소속된 일원이 아니라 시장으로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게 허용돼야 할 생산요소로 이해될 뿐"이라며 "시장이 사회의 하위영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결여한 이런 관점은 결국 사회해체의 위기를 불러오게 될 것이고 이미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지표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이 교수가 언급하고 있는 사회협약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유럽의 사회협약들은 무엇보다도 노동의 파트너십이 인정된 조건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네덜란드의 협약 당시 노조 조직률은 40%에 가까웠지만 현재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1%에 불과할 뿐 아니라 정부와 재벌이 '노동 배제'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의 파트너십이 인정되지 않고 노동운동이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노사정 사회협약이 노동운동의 기반 자체를 약화시키고 해체하는 효과를 갖는 내용만을 담게 되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는 사실상 노동운동의 무력화를 위한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vs "알아서 잘해보라'는 식"**
이밖에 이정우 교수는 "최근 심화되고 있는 산업과 기업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무현 정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특히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협력 협약을 맺고 새로운 거래관행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장집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하면서 '정부가 시장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역할을 포기했다"며 "그러다보니 시장의 요구인 노동시장 유연화는 정부가 나서서 관철시키면서도 산업정책은 부재하고 중소기업 정책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알아서 잘해보라'는 식이 됐다"고 혹평했다.
최 교수는 이어 "현재 소수 재벌 대기업들의 성공은 사회적 양극화를 대가로 실현된 것"이라며 "중저 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경기회복이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기업 고용의 80%를 흡수하는 중소기업의 발전과 같은 산업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와 같은 대기업 중심의 고용확대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이 아닌 중소기업 중심의 새로운 생산체제의 발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소득재분배 정책은 '복지병' 우려" vs. "'노동' 인정하는 근본 처방 필요"**
이정우 교수는 결론적으로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장논리를 넘어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혁신적인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도 전통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에는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이 교수는 대신 "부동산, 주식, 인적자본 등 자산의 재분배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 확대정책, 우리사주 제도의 활성화, 공교육의 강화 등은 그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장집 교수는 분배의 정의를 강조하는 새로운 발전모델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좀더 근본적인 처방으로 '큰 개혁'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큰 개혁'의 예로 1977년 스페인 민주화 시기에 체결됐던 몽클로아 협약을 하나의 모델로 제시했다. 몽클로아 협약은 정당들과 노조 사이에 맺어진 협약으로 임금동결, 조세증가, 누진세 개혁, 사회보장의 효율성 제고 등 시장원리의 확대와 사회보장 원리를 결합한 내용을 담았다.
최 교수는 "한국의 상황에서 '큰 개혁'을 위한 협약은 정부, 정당, 재벌, 노동 사이에 이루어지는 넓은 범위의 협약을 의미한다"며 "만약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 '지역감정 해소'라는 잘못된 개혁목표 설정이 아니라 넓은 범위의 정치적ㆍ사회적 세력 간 타협이었다면 나도 그를 지지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장집 교수는 지난 3월에 발간된 책 <위기의 노동>(후마니타스, 2005)의 서문에서 "정부가 견인해야 할 사회적 협약은 재벌 기업의 오너십 보호와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시민권 획득과 같은 핵심적인 의제를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며 "더불어 이것은 기업과 노동 사이의 협약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이익추구, 시장경쟁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시장의 가치를 한편으로 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누리고 또 누려야 할 사회적 보장과 평등의 가치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상이한 두 개의 가치 간의 협약을 말한다"고 설명했었다.
이번 모임은 대화아카데미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두 사람과 함께 박세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법경제학)가 발제를 맡았다. 당일 저녁에는 각계 지식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세 사람의 발제에 이어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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