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아파트 한 평에 1억 원 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대형 부동산 개발회사 간부를 지낸 한 전문가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서초ㆍ강남ㆍ송파구를 가리키는 강남은 교육, 교통, 커뮤니티 등 가시적인 프리미엄도 있지만 무엇보다 "강남에 산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계속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값이 많이 오른 것 같지만 진입을 노리는 발길은 계속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최근 서초구 잠원동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재건축 절차가 꽤 진행돼 올해 말 이주가 예정된 반포 한신6차 35평의 호가는 9억 원 선이었다. 입주 시 운이 좋아 43평을 받게 되면 2억 원 남짓한 추가 부담과 완공 때까지의 금융비용까지 더해 12억 원은 투자해야 한다. 이 중개업자는 입주 무렵 이 아파트 가격은 18억 원쯤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삼성 본관이 근처로 이전하고 지하철 9호선도 곧 뚫리면 여기도 도곡동, 대치동만큼 오릅니다. 금융비용이니 뭐니 이것저것 따지고 재는 사람들은 항상 뒤처집니다. 부동산은 '내질러야' 하는 겁니다."
***강남 중심권은 이미 평당 5000만 원선**
정부의 부동산 안정대책에도 불구하고 강남 중심권 아파트의 매매호가는 계속 올라 평당 5000만 원을 넘나들고 있다. 삼성동 아이파크 63평과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63평의 매매호가는 30억~35억 원선이다. 올 들어 6억~7억 원 오른 가격이다. 이런 '랜드마크'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강남구의 아파트 평당 평균 매매가격은 2680만 원으로 1년 동안 559만 원이 올랐다.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이 평당 1000만 원을 넘어선 것은 2000년 2월이었다. 그 뒤 3년5개월 만인 2003년 7월에 평당 2000만 원을 돌파했고, 다시 3년여 만에 평당 3000만 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며 여의도, 목동, 분당, 용인 등으로 평당 3000만 원이 넘는 아파트가 확산되는 추세다. 이러다 보니 '아파트 한 평에 1억 원'이란 말을 부동산 업자의 '허풍'으로만 듣고 넘기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항상 가격상승의 '진앙'이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은 이달 말로 예정된 정부의 대책 발표를 지켜보자며 숨을 죽이고 있지만, 가격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들은 말한다. "좋은 입지가 어디 갑니까." "정권 바뀌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강남 불패'의 신화가 한층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값이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만큼 무모한 것도 없다. '나스닥 1만' 전망이 정보기술(IT) 버블의 꼭짓점이었고, "삼성전자 100만 원 간다"는 얘기가 나올 때가 주식을 팔 시점인 적이 많았다. 현재 강남 등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값은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를 빼고는 설명이 어려운 수준이라는 전문가도 많다. 아파트가 이미 주거용이 아니라 '머니 게임'의 대상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면, 시가 20억 원인 50평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은 은행 이자로 쳐서 한 달에 500여만 원을 주거비에 지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종부세, 재산세 등을 합하면 1년에 약 1억 원, 하루 30만 원씩이니 호텔 숙박비에 버금가는 비용을 지출하고 살아가는 셈이다. 이런 집은 연봉 1억 원, 실수령액 7000만 원 남짓인 9만6000명의 선택받은 직장인들조차 지탱할 수 없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을 봐도 주택구입 능력을 보여주는 근로자 평균 가구소득 대비 평균 주택가격(PIR)이 강남의 경우 13.5로 서울의 장기 평균치인 11.4보다 높아 고평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외에서는 집값 하락세 완연**
집값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금리가 오르면서 세계 각국의 집값은 최근 하락세가 완연하다. 전미부동산협회(NAR) 조사를 보면 1월 현재 미국의 기존주택 판매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2% 감소했다. 호주나 영국의 집값도 금리인상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0월부터 3차례 콜 금리가 올랐고,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도 강화됐다. 연말부터 강화된 종부세나 재산세가 피부로 느껴지고 2주택 양도세 강화 유예기간도 올해 연말이면 끝나는 것을 감안할 때, 부동산시장이 시간이 흐를수록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시장으로 변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집값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20평대 복도식 아파트는 잘 팔리지 않아 큰 평형으로의 연쇄이동이 어려워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를 볼 때 집값이 그간 마냥 올랐던 것은 아니다. 5대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1991~98년의 8년 간 전국의 아파트 가격은 실질가격(물가상승률 고려) 기준으로 46.7% 하락했다. 강남의 경우는 1987~91년에 73% 오른 뒤 1991~98년에는 49.6% 하락했다. 주택공사 산하 주택도시연구원 지규현 책임연구원은 "강남의 장점이 이미 상당부분 반영됐는데도 강남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르는 것은 내재적 가치보다 고평가되는 것"이라며 "과거의 경험상 가격이 하향조정될 경우 하락폭은 그 전에 많이 오른 만큼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격이 오르는 데는 관성이 작용하는 데에다 이를 합리화하는 논리가 있고,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오기까지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다. 강남 아파트 값 강세의 원천적인 에너지는 고급주택 수요에 비해 그 공급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부동산 컨설턴트인 닥스클럽 봉준호 사장은 "서울의 경우 25%의 가구주가 50평형대를 원하는 반면 새 아파트 가운데 대형 평형은 6%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강남권은 20% 정도 고평가된 듯하지만 수급불균형이 계속되는 한 아파트 가격의 강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강남권 아파트 가격에 가장 큰 위협은 재건축 정책 등 공급에 대한 정부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일지 모른다. 지금은 집값을 자극할까봐 정부가 꽁꽁 묶고 덮는 데 치중하고 있지만, 적당한 이익환수 장치와 함께 규제를 풀게 된다면 집값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주택경제학'의 권위자인 에드워드 글래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 일부 지역의 집값 폭등은 규제로 주택공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며 "맨해튼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가격이 폭등한다면 30층이 아니라 50층 아파트를 지어 공급을 늘리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황제 튤립'의 말로가 위안 될까?**
3월 하순에는 판교 지역 청약이 시작되고 재건축 종합대책도 나올 예정이다. 날뛰는 집값으로 마음이 어수선하다면, 유명한 튤립 투기의 역사를 상기하고 거품의 속성을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을 꽃의 색깔에 따라 최상급에는 '황제', 그 아래 등급에는 '총독', '제독', '장군' 등의 이름을 붙였다. 노동자의 1년 수입이 200~400길더 일 때 '황제 튤립'은 한 뿌리에 1000~6000길더나 됐다고 한다. 당시의 한 정보지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튤립 한 뿌리를 위해 지불한 2500길더로 27톤의 밀과 50톤의 호밀, 살찐 황소 4마리, 돼지 8마리, 양 12마리, 포도주 2드럼, 맥주 2큰통, 버터 10톤, 치즈 3톤, 린넨 2필, 장롱 하나에 가득한 옷가지, 은컵 1개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1637년 튤립 거래의 중심지인 하를렘에서는 더 이상 살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갑작스런 시장붕괴의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 (bonghyun.lee@reut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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